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13_ 정선율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13 

 

너무 뜨거운 곳에선 바람을 기다리면 돼 

바다가 남겨 둔 꿈을 

 

엄마, 작게 흔들리는 저 바다가 어른이 되면 바다는 무슨 꿈을 꾸어요 

 

엄마, 저 바다가 어른이 되면 흰 돛단배 함께 타고 놀던 물고기들은 모두 어디로 헤엄쳐 가요 

 

새들이 물고 떠나간 파란 바람을 

새들은 기억해 주어요? 

 

저 바다가 앞니 빠진 할머니가 되면 내 퉁퉁한 볼 부드러이 감싸며 괜찮다 괜찮다 해 주던 엄마는 무슨 꿈을 꾸어요

 

엄마, 바다는 무슨 꿈을 꾸어요* 

 

 

*위 전 곡은 각 음원 사이트에서 "엄마, 바다는 무슨 꿈을 꾸어요"곡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정선율,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13, 동시마중56호> 


#세계의 첫 번째 질문 #시의 질량과 동시의 질량 

 

1

이 세계에 처음으로 내려온 질문들을 마주한다. 첫 번째로 내려온 질문은 세계를 미묘하게 뒤틀어놓는다. 시인의 언어는 이 가당치도 않은  은 질문을 내려놓는다. "바다는 무슨 꿈을 꾸"는지. 작은 아기 바다가 어른 바다가 되어가면서 "함께 타고 놀던 물고기들은 모두 어디로 헤엄쳐" 가는지. 새들은 파란 바람을 기억하는지, 엄마는 무슨 꿈을 꾸게 될지. 이 모든 질문의 시작에는 '호기심으로 가득찬 아이의 마음'이 있다. 

 

2

혁명가는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으로서 세계를 전복하려 들고, 아이는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으로서 세계에 질문을 내어놓는다. '호기심'이란 사랑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첫 번째 질문인지도 모른다. 

 

3

얼마전 김창완 선생님의 북토크 영상을 보다가 "시가 촘촘한 그물로 언어를 낚는 것이라면 동시는 성긴 그물로 언어를 낚는 것이죠." 라는 말이 떠나지 않는다. "성긴 그물로 대어를 낚을지 누가 알겠어요." 라는 유-우-머까지. 요즘 자주 고민하고 있는 대중성과 인간성. 단순함과 치밀함. 이것에 대해서 한 번 떠올려 보게 되는 작품. 

 

 

 

 

 

 

<정선율,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동시마중56호> 

윤복진_ 석중과 목월과 나 (김제곤의 자료로 읽는 동시사 44)

 


1

"나도 석중처럼 '문학의 음악'을 좋아한다. 그리면서도 나는 동요에서 '시'를 발견하려고 했고 '시의 품격'을 갖추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그러한지 나의 동요 가운데는 소곡적 동요가 있으냐 하면 동요적 소곡이 있다. 또 민요적 동요도 있다. 그러나 나는 '동요'를 버리고 '시'로 달아나지는 않았다. 내가 '시'를 찾으려 하고 '시의 품격'을 갖추려는 것은 '문학으로서의 동요'를 창작하자는 것이다. '동요'도 '문학'이고 '예술'인 바에야 문학으로서 예술로서의 품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189쪽, 동시마중 56호)  

 

 

"다른 하나의 석중이가 되어 보자꾸나. 다른 하나의 목월이가 되어 보자꾸나! 다른 하나의 내가 되어 보자꾸나! (192쪽, 동시마중 56호) 

 

 

 

 

#기록해둘 만한 문장 #시의 격, 문학의 격에 대한 생각들이 드리치는 #김제곤 선생님 감사감사  


<동시마중 56호, 김제곤의 자료로 읽는 동시사 44> 

없는 개_ 송진권

없는 개 

 

개가 죽고 

감나무 밑에 빈 개집 

빈 개집 앞에 개밥 그릇만 놓였습니다 

바닥이 반질반질한 

개밥 그릇만 놓였습니다 

 

빈 개집을 들여다보던 할머니가 

개밥 그릇에 떨어진 땡감을 주워 듭니다 

할머니가 빈 개집 안을 들여다봅니다 

 

꼭 꼬리 치며 나올 것 같아서 

컹컹 짖으며 드러누울 것 같아서 

 

 

없는 개는 

없는 개지만 

없는 채로도 

아직 개집 안에 삽니다 

 

 

<송진권, 어떤 것, 문학동네, 2019> 

 

 


#예감의 영역 #예감으로서의 부재 

 

1

이 작품의 앵글은 정확하게 한 곳에 집중하면서 롱테이크(long-take)로 담아낸 풍경이다. 한 곳에 서서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는 그 자리까지도 느껴지는 작품이다. 1연은 개집과 개밥 그릇이 놓여있는 풍경을 묘사한다. “감나무 밑 빈빈 개집” 이미지는 작품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바닥이 반질반질한 개밥 그릇”은 이미지의 해상도를 높여준다. 2연에서 할머니가 등장한다. 할머니는 빈 개집을 두 번을 들여다본다. 한 번이었으면 그냥 지나는 길에 눈길이 스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할머니는 “개밥 그릇에 떨어진 땡감”을 주워들어 “빈 개집 안을” 다시금 들여다봄으로서 “빈 개집 안”의 정서를 담아낸다. 3연에서 할머니의 마음 속 말이 툭, 툭 2행으로 간결하게 진술된다. 할머니가 빈 개집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없는 개”가 나올 것 같고, 드러누울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없는 개”가 있을 것 같은 예감 속에 “없는 개”는 있다. 3차원 속에 “없는 개”는 존재하지 않지만 예감 속에서 “없는 개”는 존재한다. 꼭,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의 방식으로 말이다. 4연의 마지막 진술은 “예감의 존재론”을 잘 보여준다. “없는 채로도/ 아직 개집 안에 삽니다” 없는 개는 있을 것만 같은 예감 속에서 희미하게 살아있다. 예감은 도래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감각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앎’이 될 수 없고 오직 ‘감’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할머니의 예감 속에 없는 개는 있다. 자신에게도 다가오는 죽음(없는 개)의 예감을 느끼며, 빈 개집을 들여다본다. 오래토록. 

 

 

 

 

 

<송진권, 어떤 것, 문학동네, 2019> 

너도 올라오겠어? _ 김개미

 


너도 올라오겠어? 

 

 

 

집에 있으면서 없는 척 

자유를 만끽하려면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로 올라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게 

사다리를 멀리 밀어 버려 

 

방 정리하란 엄마 잔소리도 

칼싸움하자고 귀찮게 구는 동생도 

여기까지 따라오진 못해 

여긴 온통 잠자리 날개뿐이야 

 

나를 좀 봐, 벌렁 드러누워 

바람의 안마를 받고 있어 

노을 영화관에 앉아 

구름 감상을 하고 있어 

 

별이 발등에서 깜빡대기 시작하면 

온 식구가 허둥대며 

나를 찾아 헤매겠지 

 

가만, 그런데 어떻게 내려간담?

 

 

<김개미, 어이없는 놈, 문학동네, 2013> 

 

 

 


#김개미론 스케치 #주체의 궁핍과 쪼그라든 주체의 전략

 

1

혼자인 아이. 혼자 남겨진 아이. 혼자 버려진 아이가 여기 있다. 그래서 어떤 아이A는 장롱 속으로 들어간다. “한낮에도 깜깜한/ 밤이 필요해서/ 장롱 속으로 들어간다”(장롱 속으로 들어간다) 또 어떤 아이B는 지붕으로 올라간다. “집에 있으면서 없는 척”하면서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게/ 사다리를 멀리 밀어 버”(너도 올라오겠어?)리고 혼자가 된다. 어떤 아이C는 그림 속으로 숨는다. “내가 그린 코뿔소는/ 귀를 틀어막은 소/ 눈을 꼭 감은 소”(누굴 닮아서)가 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김개미 시인은 혼자인 아이가 하고 있는 놀이를 담아낸다. 

 이는 앨리스 증후군(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을 앓고 있는 주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대상이 작아 보이거나(쪼그라들거나), 크게 보이거나(과장되거나), 왜곡되어 보이는 증상을 말하는데, 주ㅡ           ㅡ 관 적인 이미지의 변용을 일으키는 증후군(김영도, 2006)이다. 이를 두고 “주체의 궁핍”(destitution of subject)에 의한 증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허기진 주체들의 놀이가 김개미의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쪼그라든 시적 주체는 타자와의 교섭이 필요한 현실세계의 바깥,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 미지의 세계에는 엄마 잔소리도, 떠들지 말라는 담임선생님도 없다. 현실의 중력이 사라진 곳으로 간다. <너도 올라오겠어?>에서 화자는 1연에서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로 올라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게/ 사다리를 멀리 밀어 버”린다. 사다리를 밀어버림으로서 지붕의 공간은 타자의 침입을 허용되지 않는 미지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2연에서 “방 정리하란 엄마 잔소리도/ 칼싸움 하자고 귀찮게 구는 동생도/ 여기까진 따라오진 못”하게 한다. 말의 중력을 지워낸다. 이제 원더랜드로 진입한다. 3연에 “바람의 안마를 받고 있어/ 노을 영화관에 앉아/ 구름 감상”한다. 원더랜드 속에서 시적 주체는 4연에 들어서면서 “온 식구가 허둥대며/ 나를 찾아 헤매겠지”라며 자신을 찾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을 찾아주길 원한다. 쪼그라든 주체의 자기 전략은 자신을 조금씩 지워냄(주체의 부재)으로서 타자를 끌어들인다. 작품의 마지막 연에서 시적 주체는 깨닫는다. 지붕으로 올라올 수 있는 사다리를 밀어버렸다는 것을. 타자가 올라 올 수도 없고, 주체가 내려갈 수도 없는 곤경에 빠졌다는 것을. <너도 올라오겠어?>는 쪼그라든 주체들이 처해있는 곤란함에 대한 하나의 보고서로 읽히기도 한다. 

 이에 반해 과장된 시적 주체는 타자와의 교섭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이다. 그들의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언어의 중력을 받아들이면서 과장을 전략으로 삼는다.  <넌 그런 날 없니?>는 이를 잘 보여준다. “누가 말만 걸면/ 몸을 비비 꼬며 낄낄”거리고 “별일 아닌데/ 원숭이처럼 책상을 두드”린다. 과장된 주체가 노리고 있는 것은 의미체계가 아니다.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느낌의 효과다. “누가 부르기만 하면/ 귀청이 떨어지도록 큰 소리로/ 대답”을 하는 것은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느낌을 효과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의미를 원하는 말의 중력에 적극적으로 의미 이전의 느낌의 효과로 개입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번쩍번쩍 손을 들”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쓸데없이”. 쓸모에 따라 의미의 논리가 구성되기 때문에 과장된 시적 주체는 쓸모없는 행동이 된다. <넌 그런 날 없니?>는 쓸모 있어야만 하는 세계에 맞선 별 쓸모없는 시적주체들이 처해있는 곤란함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신경질적 보고서로 읽히기도 한다. 

 

3

 우리시대에 곤경에 처한 시적주체들에 대한 김개미식 보고서에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슬픔이 세공되어 있다. 시대적 곤경에 유머를 잃지 않고 아이들과 “아픈 눈을 뜬 채로” 마주하겠다는 것이 김개미의 윤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개미, 어이없는 놈, 문학동네, 2013> 

2018 올해의 동시선집_ 동시마중

<동시마중 52호, 올해의 동시2018> 

 

 

 

2018 동시선집에서 세 갈래의 동시가 수록되어있다. 

1

우선, 오래의 동시, 오래토록 길게 이어지는 클래식들이다. 이는 동시를 두텁게하고 신뢰할 수 있게 한다. 권오삼, 김창완, 윤제림, 함민복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그 중에서도 송진권의 “나는 개구리”는 “잠수해서 본 개구리”를 이미지화하면서 인식론적 전환의 진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손이나 발에도 날개가 돋았”다는 상상력으로의 확장까지. 클래식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2

다음으로, 올해의 동시. 그야말로 현재의 동시가 거느리고 있는 감각, 인식, 차원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들이 그렇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동시를 뽐내고 자랑하고 싶어지게 한다. 송찬호, 김개미, 신민규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그 중에서도 안상학의 “지구를 운전하는 엄마”는 올해의 동시가 거느리고 있는 자장력 안에서 가장 빼어난 은유, 구조를 드러내는 좋은 작품이다. 

 

3

마지막으로, (다가)올 해의 동시. 지금이 아닌 어느 곳에서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들이 있다. 이 작품들은 동시를 예감하게 한다. 김륭, 김철순, 문신, 조정인의 작품들이 그러했다. 그 중에서도 송현섭의 “엄마, 아빠 놀이”는 걸걸한 목소리로 동시를 읇는 이상한 톤이 있는 작품이다. 이미지를 충돌시키면서 시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괴상한 면모가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이 갈래로 포섭되지 않는 작품들도 있는데, 이안의 “참새”와 조정인의 “고양이 루이”가 그러했다. 이 두 작품 모두 시와 동시의 경계에 정확하게 발끝을 모으고 서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차라리, 동시와 시라는 구분이 어색해지는 지점을 찾아 들어가 시적 정전기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은 오묘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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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구 할아버지 커다란 손 

 

 

목수 일로 

우리나라 제일가던

봉구 할아버지는, 

먼 산 큰 절 

대웅전 처마를 고치시고는 

아주아주 하늘로 오르셨대요. 

 

나라 안에 꼽히시던 

그 솜씨 

하늘에서도 뽑히시어서, 

눈 다듬어 내리는 일 

맡으셨대요. 

 

뒷산 언덕에서 

나도 봤어요. 

아름다운 구름숲에서 

결 고운 나무로만 

먹줄 퉁퉁 일일이 금을 그어, 

똑 고르게 켜고 

꼭 알맞게 썰어 

부드러운 눈송이 지어 내리시는 

봉구 할아버지 커다란 손을. 

 

곱게 곱게 내려 쌓이는 

눈발 속엔 

봉구 할아버지 대팻날에 밀려나는 

구름나무 하이얀 속살이 보여요. 

 

저것 봐요, 저기 저 

봉구네 오동나무 가지 끝에서 

우리 집 지붕 언저리로 

하늘 땅 잇고 계시는 

봉구 할아버지 커다란 손을. 

 

봉구에게 물어보셔요. 

올겨울 하늘나라 창고엔 

얼마만큼의 눈송이가 

준비돼 있는지. 

 

 

<윤제림,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 문학동네, 2018> 

 


#시적 인연 #인연의 시 #서사의 가능성

 

1

눈에 보이지 않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 미세혈관처럼 모든 것이 보이지 않게 이어져있다는 불교의 연기설이 그렇고, 존재는 존재자의 우연에 의해 서로 기대어 존재한다는 랑시에르의 철학이 그렇다. 시에는 시적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 인연은 그 자체로 의미를 획득하지 못하고 오직 “사건 관계”(들뢰즈)를 통해서 의미를 확정하기에 시적 인연은 합리적 인과율이 지워져있는 신화, 몽상, 꿈을 근거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오직, 시만이 할 수 있는 인연의 영역이 있다.

 2 

윤제림의 시집 속에는 시적 인연을 맺어주고 있는 시편들이 있다. 「우리는 언제커서」 의 “작은 돌멩이”들과 “돌부처들”의 시적 인연을 이어주고, 「섬」의 “금강산 봉우리”와 “어린 섬 하나”의 인연을 만들어준다. 「나팔꽃은 나팔을 불지 않는다」의 “붐붐붐 소리를 내며 피는 꽃”이었던 나팔꽃과 그 “나팔꽃을 사랑한 어떤 청년”과 인연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따로 있을 때에는 그저 “작은 돌멩이”이고, “섬 하나”이고, “나팔꽃”인 대상들이 시적 인연을 맺게 되면서 시적 혈액으로 펄떡인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대상에게 목소리를 주기도 하고(우리는 언제커서), 서사를 부여하기도 하고(섬), 사연을 만들어주기도 한다.(나팔꽃은 나팔을 불지 않는다) 시적 인연을 이어주고자 하는 시인의 시선에는 그냥 놔두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시적 인연의 자장 속에서 화자를 돌보고 있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봉구네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 이다. 

3

 「봉구네 할아버지의 커다란 손」의 1행과 2행은 시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제일가는 목수인 봉구할아버지는 “아주아주 하늘로 오르”셨는데 “그 솜씨/ 하늘에서도 뽑히시어서,/ 눈 다듬어 내리는 일/ 맡으셨대요.”라며 시의 서사를 구축한다. 3행, 4행, 5행은 도입부의 서사를 발판 삼아 이미지를 구축한다. “아름다운 구름숲에서 결 고운 나무”를 “꼭 알맞게 썰어/ 부드러운 눈송이 지어 내리시는” 3행의 눈 이미지. “눈발 속엔/ 봉구 할아버지 대팻날에 밀려나는/ 구름나무 하이얀 속살이 보여요.” 4행의 구름나무 이미지. “하늘 땅 잇고 계시는 봉구 할아버지 커다란 손” 5행의 손 이미지. 이 세 가지 이미지들은 모두 “나도 봤어요(3행), ”속살이 보여요“(4연), ”저것 봐요“(5행)로 모두 시각이미지로 집중하면서 시의 밀도를 높인다. 이렇게 쌓여진 시각 이미지들은 마지막 6행에 가서 이 모든 시적 인연의 중심에 있는 “봉구에게 물어보셔요.”라며 봉구를 불러들인다. 1행과 2행에서 화자는 “오르셨대요”, “맡으셨대요” 라며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임을 드러내는데, 그 누군가가 바로 봉구다. 할아버지를 잃은 봉구. 할아버지를 그냥 떠날 보낼 수 없는 봉구. 영영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슬픔을 받아 안고 있는 봉구. 영영 사라지지 않을 시적인연(할아버지와 눈)을 간신히, 잇고 있는 봉구. 그런 봉구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올겨울 하늘나라 창고엔/ 얼마만큼의 눈송이가/ 준비돼 있는지.” 봉구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의 질량만큼 대답해 줄 것이다. 많이. 아주 많이. 

 

 

 

 

<윤제림, 거북이는 오늘도 지각이다, 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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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_ 안진영

 


첫 만남 

-자기소개 

 

안진영

 

 

나는 낯설어야 

나는 낯설어 옆에 어색해야 

나는 낯설어 옆에 어색해 옆에 솔직히 두려워야 

나는 낯설어 옆에 어색해 옆에 솔직히 두려워 옆에 반가워야 

나는 낯설어 옆에 어색해 옆에 솔직히 두려워 옆에 반가워 옆에 궁금해야 

나는 낯설어 옆에 어색해 옆에 솔직히 두려워 옆에 반가워 옆에 궁금해 옆에 설레어야 

 

낯설고 어색하고 솔직히 두려운 친구들! 

반갑고 궁금하고 설레는 친구들! 

나는 기대되야 

우리, 앞으로 잘 지내자 

 

 

 

<안진영, 난 바위 낼게 넌 기운내, 문학동네, 2019> 

 

 


 

1

자기소개는 두 가지 떨림을 동반한다. 걱정의 떨림과 설레임의 떨림. 이 둘은 언제나 떨림 안에서 함께 있는 것이라 모호하게 뒤 섞여 있다. 낯설면서도 반갑고, 어색하면서도 궁금하고, 두려우면서 설레는 기묘한 떨림이 자기소개에 있다, 그래서 말을 갑자기 더듬기도 하고,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눈길이 방황하기도 한다. 

 

2

안진영의 <첫 만남> 1연에서는 모호하게 뒤 섞여 있는 떨림의 표피세포들을 하나하나 집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안진영 시인은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는 병렬방식이 아니라 줄을 세우는 직렬방식을 택하여 떨림의 직진성과 동시성을 드러낸다. 첫 만남이라는 감정의 질서를 드러내는데 있어 시적 형식을 탁월하게 선택했다. 다소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반복구문들 속에 “나는 ㅇㅇㅇ야”, 명사의 자리에 동사를 명사화시키면서 시적 혈액이 돌게 하면서 반복구문이 마냥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3

오늘 “나는 낯설어 옆에 어색해 옆에 솔직히 두려워 옆에 반가워 옆에 궁금해 옆에 설레어” 옆에서 오랜만에 문우들과 나눠볼 동시 리뷰를 쓰며, “나는 기대되야 / 우리, 앞으로 잘 지내자” 라고 첫 인사를 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혼자 한참을 중얼거려 보았다.      

 

 

 

 

<안진영, 난 바위 낼게 넌 기운내, 문학동네, 2019> 

 

돌사자상에 비가 오면_ 이안

돌사자상에 비가 오면 

 

 

웃는다 

돌사자가 웃는다 

콧등에 떨어진 빗방울이 윗니에 걸렸다가 

툭! 

입 속으로 떨어질 때, 

 

웃는다 

돌사자가 웃는다 

이제 9천6백7십9만 8천9백5십9번만 더 

빗방울을 받으면 

진짜 사자가 된다고 

 

엉덩이에 

1억 번 번개 주사를 맞은 다음 

바위에서 풀려난 

돌사자가 웃는다 

 

 

<이안, 글자 동물원, 문학동네, 2015> 

 


#감각의 서사성 #서사로서의 감각 

1

1연은 빗방울의 감각의 툭! 하고 느껴지는 묘사이죠. “윗니”라는 구체적인 위치가 지정되면서 공감각이 살아나요. 2연에서는 “진짜 사자가” 되고 싶은 “돌사자”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빗방울이 다 내리기를 하염없는 기다리고만 있는 사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빗방울을 받”아내야 하는 돌사자이지요. 3연에서는 이 “돌사자”의 기고한(!) 사연으로 이어집니다. 무려 “1억 번 번개 주사를 맞은” 돌사자에 과거사연이 밝혀지면서 돌사자가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살아나는 듯 해요. 

2

이런 돌사자는 웃습니다. 콧등에 떨어진 빗방울을 입속에 넣으면서도 웃고, 1억 방울까지 이제 겨우 3백2십2만 1천4십1방울 밖에 받아내지 못했는도 웃고, 1억 번의 번개 주사를 맞은 다음에도 웃습니다. 이런 돌사자가 같으니라고. 이런 돌사자는 10년 동안 매일같이 하루 18시간을 연습했다는 발레리나 강수진을 닮았고, 몇 십년을 매일 8시간 동안 글을 썼다는 헤밍웨이를 닮았습니다.  1억방울의 빗방울을 모두 받아냈을 때  돌사자가 진짜 사자가 되는거라고, 진짜 진짜 믿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안, 글자동물원,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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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 반성문 _ 송찬호

소나기 반성문 

 

 

 

구름침대에서 쿵쿵 뛰놀지 않기 

구름베개 서로 집어 던지지 않기 

천둥처럼 문 꽝꽝 닫지 않기 

마른 빨래 후드둑후드룩 밟고 다니지 않기 

애호박 놀라 꼭지 떨어질라, 너른 호박 잎새로 우르르 몰려다니지 않기 

 

그럼, 엄마 

우리가 가랑비야?

가랑비처럼 숨죽여 지내야 해? 

 

<송찬호, 초록 토끼를 만났다, 문학동네, 2017> 

 

 


#동시의 발성법  

1

1연에서는 소나기의 반성이 이어집니다. 이 반성이라는 것이 소나기의 입장에서 쓰이다 보니 무척 흥미진진한데요. “구름침대”라거나 “구름베게”라거나 하는 대상이 등장하면서 소나기들의 놀이를 떠올려 보게 되기도 하고요. 빨래를 “밝고 다니지 않기”와 “몰려다니지 않기” 같은 묘사는 소나기들의 장난이 떠올려지기도 해요. 1연에서 독자들을 장난스런운 소나기를 만나게 하지요. 또 “소나기”의 “나기”는 아기로 읽히기도 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줘요. 

 

2

2연에는 1연을 뒤집어 엎어버리는데요. 나는 소나기인데, 나는 “우르르 몰려다니며” “쿵쿵 뛰”노는 소나기인데, 그렇게 못하면 나는 소나기가 아닌데. 그럼 “우리가 가랑비야?”로 되물으면서 시의 낙차가 발생하지요. “가랑비처럼 숨죽여 지내”면 소나기가 아닌 건데 말이죠. 

 

3

시를 빠져나오고 나니 소나기의 항변이 어른거렸어요. 어른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사회적 규범에 대항하는 정치적 슬로건 같기도 하고요. 천진난만한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질문하니 더 울림이 컸어요. 소나기를 소나기로 내릴 수 있게, 소나기를 소나기로 자랄 수 있게 해야겠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송찬호, 초록 토끼를 만났다, 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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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어머니_ 가네코 미스즈

참새의 어머니 

 

어린애가 

새끼 참새를 

붙잡았다. 

 

그 아이의 

어머니 

웃고 있었다. 

 

참새의 

어머니 

그걸 보고 있었다.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며 

그걸 보고 있었다. 

 


#적막하다는 것 #막막하다는 것 

1

1연과 2연에서는 어린애가 새를 잡고, 새를 잡고서 즐거워하는 어린애를 보고 있는 어린애의 어머니가 웃고 있어요. 여기까지는 평범한 이야기죠. 그런데 3연에 들어오면서부터 시선이 이동하죠. 어린애의 어머니가 아니라 참새의 어머니 시선으로 시가 옮겨가죠. 단지 시선 하나가 이동했을 뿐인데 3연에 들어서면서 부터 웃음이 덜컥 시의 덫에 걸려요. 그것은 어미 참새로 시선이 이동하면서 어미 참새의 상태를 서술하고 있는 “보고 있었다.”라는 덫인데요. 어린애 손에 잡힌 새끼 참새를 그저 “보고 있”는 어미 참새의 참고 있는 울음소리가 다 들리는 듯하죠. 시에서 울음소리를 내는 것보다 울음소리를 참고 있으면서 울림은 증폭돼요. 시를 다 읽고 나니 한없이 적막해졌어요. 

2

얼마전 심보선의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올랐어요. <형>이라는 시였는데요.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게 시니까”라는 구절인데요. 첫 번째로 슬픈 어미 참새를 생각하며 쓴 시이니까요. 

3

또 예전에 읽었던 이성복의 시집<래여야반다라>에서 <아,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라는 시가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숲속 까치가 어린 새끼 오리 모가지를 물어다 제 새끼들에게 피 묻은 살점을 뜯어 넣어주는 이야기가 나와요. 어린 새끼 오리를 잃은 어미 어미를 생각하며 “아, 저 엄마는 어떻게 살까?”로 시를 마무리 짓는데요. 시를 다 읽고 난 뒤에 남는 그 적막함의 기울기가 <참새의 어머니>와 무척 많이 닮아있기도 해요.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자리를 떠올렸어요. 시인은 어디에 있어야 하나. 그 곳에서 시인은 어떻게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았어요.  

 

<가네코 미스즈,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소화,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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