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어린이문학_일간지_연재_칼럼_모음
동시문학사 스케치 #3 <윤석중>

윤석중 

 

#공부할겸해서쓰는동시문학스케치 #윤석중선생님멋져욤 #코리아레전더리동시인  #내가조금만빨리윤석중을알았더라면

 

 

 

 

_

1911년. 서울출생. 외할머 밑에서 자람. 이름 석중은 ‘돌처럼 무거워 날아가지 말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함. 뒤늦게(10세) 교동초등학교 입학. (교동초등학교는 서울 삼청동 근처에 있음. 교동초등학교 맞은편에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있었는데...지금도 있나 몰라.) 

 

_13세 

잡지 <신소년>에 ‘봄’을 발표. 

 

 

 

따뜻한 봄이오니 

울긋불긋 꽃봉오리 

파릇파릇 풀잎사귀 

 

 

 

_1925년, 15세 

<어린이> 잡지 공모전에서 윤석중의 <오뚜기>가  당선. 

 

오뚜기 

 

책상 위에 오뚜기 우습구나야 

검은 눈은 성내어 뒤룩거리고 

배는 불룩 내민 꼴 우습구나야 

 

책상 위에 오뚜기 우습구나야 

술이 취해 얼굴이 빨개가지고 

비틀 비틀 하는 꼴 우습구나야 

 

책상 위에 오뚜기 우습구나야 

주정하다 아래로 떨어져서도 

안아픈 체 하는 꼴 우습구나야 

 

 

_1926년 ‘조선물산장려회’ 주최 글짓기대회에서 당선 

(전문을 찾을 수가 없네...) 

 

 

조선의 동포들아 

이천만민아 

두 발 벗고 두 팔 걷고 

나아오너라 

우리 것 우리 힘 

우리 재주로 

우리가 만들어서 

우리가 쓰자 

-조선물산장려가 부분

 

_<굴렁쇠> 회람잡지 

서울의 윤석중-> 진주의 소용수-> 마산의 이원수-> 언양의 신고송-> 울산의 서덕출 -> 수원의 최순애... 이렇게 각자가 읽은 글과 자신이 쓴 글을 돌려서 읽음. (이런 멋진 우정이 다있나! 대박!) 나중에는 남북으로 굴러다녔다고 전해짐. 

_1927년 여름방학 

 

울산의 서덕출을 만나러 감. 서덕출은 척추장애가 있는 소년이었음. 서울에서 윤석중이 내려온 것은 안 ‘굴렁쇠’ 동인들(언양의 신고송, 대구의 윤복진)이 울산에 모여 한 소절씩 시를 쓰게 되는데 

 

슬픈 밤 

 

 

오동나무 비바람에 

잎 떠는 이 밤 

그립던 네 동무가 

모였습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날이 밝으면 

네 동무도 흩어져 

떠나갑니다 

 

오늘 밤엔 귀뚜라미 

우는 소리도 

마디마디 비에 젖어 

눈물 납니다 

문풍지 비바람에 스치는 이 밤 

그리운 네 동무가 

모였습니다 

 

-서덕출, 신고송, 윤석중, 윤복진 공동창작 

 

 

(이런 이야기는 지나치게 아름다워서 거짓말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정도로 아름다운 이야기라며 거짓말이라도 믿을래요) 

 

 

 

_1929년 광주학생운동이 발발. 윤석중은 동참하지 못하고 졸업장을 받는게 죄스러워 <중외일보>에 ‘자퇴생의 수기’를 쓰고 졸업 며칠 앞두고 자퇴. (보통 인간이 아니야...) 

(이것이 원문인데...중외일보 원본인데...알아보질 못하겠음...)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etId=1&itemId=npjo&synonym=off&chinessChar=on&page=1&pre_page=1&brokerPagingInfo=&position=0&levelId=npjo_1930_02_27_x0003_1390

(원문링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주제분류문화,학술 > 예술/문학 > 문학 > 수필-감상문

db.history.go.kr

 


 

_1932년 <윤석중 동요집, 신구서림, 1932> 출간. 총 40편이 실릴 예정이었으나 5편은 조선총독부에 의해서 검열받아 총 35편이 실림. 우리나라 최초의 동요집. (이거 어디서 구할 수 없나?) 아래는 1932년 윤석중 동요집에 실린 동요작품들. 

 


도리도리 짝짝궁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에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해님 보면서 짝짜꿍 

도리도리 짝짜꿍 

우리 엄마가 웃는다 

우리 아빠가 웃는다 

 


퐁당퐁당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누나 몰래돌을 던지자 

냇물아 퍼져라 널리 널리 퍼져라 

건너편에 앉아서 나물을 씻는 

우리누나 손등을 간질여 주어라 

 

 


맴맴

 

 

아버지는 나귀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우산 셋이 나란히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우산 셋이 나란히 

걸어갑니다 

 

파랑 우산 검정 우산 

찢어진 우산 

 

좁다란 학교 길에 

우산 세 개가 

 

이마를 마주대고 걸어갑니다 

 

그 밖에도 온갖 명작들이 가득한 동요집!으로 동요문학사의 이정표가 되고 있음! 낮에 나온 반달 /휘파람 /산바람 강바람 /달 따러 가자 /오뚜기 /밤 한톨이 땍때굴 /저녁놀 /우리집 콩나물 죽 /우리가 크거들랑 

 


_1933년 <잃어버린 댕기> 출간. 한국최초의 동시집으로 기록. 창작동시 20편. 번역 동시 10편. 동화시 5편으로 구성. 창작동시 20편은 기존의  3. 4조, 4. 4조, 7, 5조의 음수율을 벗어나 자유동시의 내재율을 시도한 작품들. 

 

<잃어버린 댕기, 윤석중, 느티나무사, 1933> 


 

저 바다 

 

 

저 바다 

저 바다 

저 바다가 울언니를 잡아갔대요. 

 

고기잡이 배 타고 저 바다로 나간 지 

열 달이 되어도 안 돌아오는 울 언니. 

 

저 바다 

저 바다 

저 바다가 울언니를 잡아갔대요. 

 

울언니 내노라고 돌을 집어 때리면 

싱글싱글 웃고 내빼는 저 바다. 

 

저 바다 

저 바다 

저 바다를, 내, 메워 버릴테야. 

 

울언니 잡아간 저 바다를 

흙으로 흙으로 메워 버릴테야.....

 


 

기러기 떼 

 

달밤에 기러기 떼 

글씨 공부 하지요. 

 

아까 쓴 건 시옷자, 

시방 쓴 건 한 일자. 

 

기럭아 기럭아

내 이름도 써봐라. 

 

언니의 언니 

 

난 밤낮 울 언니 입고 난 

헌털뱅이 찌꺼기 옷만 입는답니다. 

 

아, 이거 조끼두 그렇죠 

아, 이 바지두 그렇죠 . 

그리구, 이 책두 언니 다 배우고 난 책이죠. 

이 모자두 언니가 작아 못 쓰게된 모자죠. 

 

어떻게, 언니의 언니가 될 순 없나요? 

 

 


 

담 모퉁이 

 

담모퉁일 돌아가다가 

수남이하고 이쁜이하고 마주쳤습니다. 

꽝! 

이마를 맞부딪고 눈물이 핑......

 

울 줄 알았더니 하 하 하. 

얼굴을 가리고 하 하 하. 

울상이 되어서 하 하 하. 

 

 

 

 

_1933년. <어린이> 주간.  “1934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들어가『소년중앙』,『중앙』등을 맡아 보았고, 1937년에는 조선일보사로 자리를 옮겨『소년조선일보』,『소년』,『유년』등을 맡아서 아동문학 발전과 아동문화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고려문화사>에서『어린이신문』을 창간하였고, 그해 12월에는 <을유문화사>에서 ‘아동문화협회’를 창설하여『주간소학생』과『소학생』을 주간하면서 아동도서 출판을 하기도 했다. 1947년에는 윤극영ㆍ정순철ㆍ한인현 등과 ‘노래 동무회’를 만들어 동요 창작과 노래 보급에도 앞장섰다.” 

(윤석중의 삶과 동요. 동시의 핵심정서, 노원호,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여름학술대회, 2011, 5쪽) 

 

_<소년 중앙> 창간. 1936년 조선일보사로 옮겨 어린이 잡지 <소년> 주간. 해방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지 <주간 소학생> 창간. 

 

_어린이날 노래, 졸업식 노래 지음. 

 

_1950년 한국전쟁. 부친과 새어머니를 비롯한 이복동생 모두를 잃음. 1951년 11월 11일에 윤석중 아동 연구소 설립. 

 

“전쟁으로 들뜬 마음을 달래면서 나는 다시금 어린이에게로 생각을 쏟았다.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정부가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참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부서진 서울에서 나 혼자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무어란 말인가? 

머리 속에 지어 쌓으면 된느 동요 짓기가 아니게쓴ㄴ가. 언제 휴전이 될는지, 언제 정전이 될는지, 언제 통일이 될는지 아득하기만 했지만, 피난 간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아 할 수 있는 일은 ‘아동 연구소’ 였다. (중략) 내가 나에게 다짐하여 빈 집에 차린 것이 ‘윤석중 아동 연구소’였다. (중량) 연구소를 차렸노라고 큰소리를 치고 나서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전쟁을 겪은 어린이들의 글을 모아 책으로 낼 작정을 한 것이다.“ (우지현, 1950년대 아시아재단의 원조와 윤석중의 아동 출판물, 한국한연구 제 48집, 2018, 재인용) 

 

(이 책은 반드시 구해서 읽어봐야 겠음) 

 

_1954년 윤석중 아동연구소를-> 새싹회로 다시금 창립. 새싹회 산하에 어린이합창단, 어린이 합주단, 글짓기 교실, 애기회 등을 두었다고. 1,300편의 동시 창작. 그중 800편이 동요로 만들어짐. 우리나라 최초 창작 동요집 <윤석중 도요집>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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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아동문학독본을 엮는 윤석중은 방정환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일본 손아귀에 들었던 시절의 한글 운동이 곧 애국 운동이요 민족 운동이요 해방 운동이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로, 1923년 소파 선생이 나서심으로 제 길로 들어선 우리 나라 아동문학 역시 문학 운동이나 예술 운동이기보다, 소년 운동이요 민족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파 선생이 남기신 동화나 이야기나 소설이나 연극이나 그 밖의 글에서 그 정신만을 이어받으면 그만인 것이며,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서로 사랑하며 도와 갑시다.“고, 우리 나라 어린이를 향하여 줄기차게 외치신 피어린 다짐을 엮어 놓으신 것이 바로 이 책에 담긴 글이다.” -방정환 아동문학동본, 윤석중 엮음, 을유문화사,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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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중 아동문학독본을 엮은 피천득은 윤석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40년 동안 동요를 생활하여 왔다. 동요를 꿈꾸고, 동요를 먹고, 동요로 숨쉬고 살아왔다. 그가 동요를 쓰는 것은 오락이요, 직업이요, 습관이요, 그의 생활이다. 그가 동요를 쓴다는 것은, 힘드는 일이 아니다. 구두직공이 구두를 짓 듯이, 그보다 훨씬 빨리 훨씬 수월하게 동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는 타고난 동요장이요, 숙련공이다. 그러기에 그 수많은 여름의 노래, 그 수많은 자장가가 하나 하나 아름답게 지어지는 것이다. 어떤 한 작가에서 한둘의 아름다운 자장가를 본 일은 있다. 그러나 한 작가에서 이렇게 새록새록 자장가가 나오는 것은 본 일은 없다. 그의 동요의 근원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 할까? 언제나 넘쳐 흐르는 호수인가보다.” -윤석중 아동문학독본, 피천득 엮음, 을유문화사, 1964 

 


 

 

*참고자료들 

-네이버 윤석중 인물 만화 (훌륭함!)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85644&cid=47317&categoryId=47317

 

-윤석중 네이버 연보( 생각보다 정리가 잘 되어있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1971&cid=59019&categoryId=59019

-윤석중의 삶과 동요. 동시의 핵심정서, 노원호,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여름학술대회, 2011

-우지현, 1950년대 아시아재단의 원조와 윤석중의 아동 출판물, 한국학연구 제 48집, 2018

-윤석중의 고등학교 자퇴서 원본 링크: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etId=1&itemId=npjo&synonym=off&chinessChar=on&page=1&pre_page=1&brokerPagingInfo=&position=0&levelId=npjo_1930_02_27_x0003_139

-윤석중 동시에 대한 재인식, 김제곤, 한국학연구 제20집, 2009 

 


*스케치 코멘트 

-근대 동시/동요들을 모아 읽으면서 단연코 내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은 윤석중과 강소천, 권태응의 동시였다. 이 셋 중에서도 연배가 앞선 윤석중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잠깐 스케치 해둔다. 

 

 

동시문학사 스케치 #2 <동요>

1. 동요 정의 

 

 

 

1)국어사전

-문학 장르의 하나로, 어린이들의 생활 감정이나 심리를 표현한 정형시. 형식상 음수율이 강회되어 음악성이 돋보이며 형식과 수사를 중요시한다. 

-어린이를 위하여 동심을 바탕으로 지은 노래 

 

2)시기상으로 정의 

-1920년대 이전의 동요를 전래동요. 그 이후를 창작동요. 색동회가 기점이 됨. 

 

3)한국민족문화대박과사전 

동요는 형식상 음악성이 강한, 어린이를 위한 정형시로서 그 시원은 노래이며, 외형률, 특히 음수율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불려지는 노래의 내용, 곧 노랫말이다. 

 

4)방정환_어린이 창간사  

새와 같이 꽃과 같이 앵도 같은 어린 입술로 천진난만하게 부르는 노래, 그것은 고대로 자연의 소리이며, 고대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비둘기와 같이 토끼와 같이 부드러운 머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뛰노는 모양 고대로가 자연의 자태이고 고대로가 하늘의 그림자입니다. 거기에는 어른들과 같은 욕심도 아니하고 욕심스런 계획도 있지 아니합니다. 


*마음이 기쁠 때나 슬플 때 우리는 가끔 노래를 부릅니다. 기쁠 때 노래를 부르면 그 기쁜 마음이 더 커지는 것 같고 슬플 때 노래를 부르면 슬픈 마음이 조금은 가시는 것 같지요. 노래는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도 하고 달래 주기도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요? 그 분들 역시 기쁘거나 슬플 때 입에서 입으로 노래를 이어 불렀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고 설ㅇㅁ에 겨워 살던 때에도, 가난하고 고달픈 살림살이를 이어 가던 때에도 어김없이 노래를 불렀지요. 그 노래에 나오는 노랫맛들 대부분 어린이를 아끼는 시인들이 지은 동시였습니다. (밤 한톨이 땍때굴, 방정환 외, 김제곤, 원종찬 엮음, 창비, 2017) 


 

2. 동요의 흐름 

 

 

 

1) 1920년 이전: 전래동요 

-달아달아 밝은 달아/ 강강술래/ 동무동무 씨동무/ 새야새야 파랑새야/  

 

2) 1920년~1930년 중반: 창작동요 

-색동회를 중심으로 윤극영/ 서덕출/ 이언수/ 윤석중/ 방정환 등등 

-지금까지 이어져 부르는 명곡들 대거 창작 

-대표곡: 따오기/ 반달/ 고향의 봄/ 햇볕은 쨍쩅/ 산토끼 

-1932년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집 <윤석중동요집> 발표 

 

3) 1930년 후반~ 1945년: 일제 강점기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서 한국어사용, 문학작품 발표, 신문사 폐간 등으로 동요발표가 되기 어려움

-무수한 작가들이 친일 노래와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함. 희망의 나라로(현제명 곡). 선구자(조두남 곡) 제국주의를 찬양한 대표적인 친일 노래였음.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 퐁당퐁당 돌을 돌지자/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등. 일본의 동요나 민요를 번안한 곡들임. 

 

*경향신문_ 일제찬양 친일파 노래, 제대로 알자. 2010. 08.24.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008242201345

 

“일제찬양 친일파 노래, 제대로 알자”

‘아침바람 찬바람에 울고가는 저 기러기…’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news.khan.co.kr

 

 

 

4) 1940년대 중반: 해방 이후 

-교과서를 중심으로 동요가 퍼져나감 

-밝은 동요들이 대거 창작. 새나라의 어린이/ 우리의 소원/ 어린이날 노래/ 나란히 나란히/ 어머님 은혜 등등 

-1946년 정태병이 조선 동요를 모아 <조선동요전집>을 펴냄 

http://folkency.nfm.go.kr/kr/topic/detail/964(한국민속대백과사전) 

 

조선동요전집

1946년 정태병이 조선 동요를 모아 펴낸 책.

folkency.nfm.go.kr

-1948년 권태응 동요집 <감자꽃>. 1949년. 윤복진의 동요집 <꽃초롱꿈초롱>. 아직까지도 동요계에서는 이 두 작품이 레전드로 불림. 권태응 대박! 

 

 

5)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KBS 방송 동요를 중심으로 동요 보급운동이 시작되고 동요의 전성기를 맞게 됨. 

 

6) 1960년대 

-동요는 동시에 주류자리를 내어주게 됨. 정형시인 동요보다 자유시인 동시에 문학적 역량을 쏟게 되는 시점. 1960년대부터 신춘문예에서 동요를 현상 모집 하지 않게 됨. 이쯤부터 동요는 음악에 예속. 노랫말 역할만 하게 됨. 

 

7)1970년대~1980년대 

-KBS의 누가누가 잘하나. 방송창작동요대회가 나름의 역할을 해주었지만 산업화시대에 TV와 라디오가 대중의 일상을 자리하면서 동요의 자리가 위태로움. 

-문화포털 1980년~2000년대 창작동요 

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code_value=B&vvm_seq=8465&ccm_code=B061&ccm_subcode=B561

 

[문화포털 예술지식백과] ${eo.vvm_title }

문화포털에서는 장르별 예술지식자료은 물론 공연전시, 문화체험, 이벤트 등 다양한 문화예술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www.culture.go.kr

 

8)현재 

-백창우와 굴렁쇠 아이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9376116&memberNo=35633637

 

어린이 문화를 가꾸는 사람들 #01 백창우

[BY 개똥이네 놀이터] [인터뷰] 어린이 문화를 가꾸는 사람들 #01 백창우 - 햇볕 한 줌 같은 노래, 아이...

m.post.naver.com

 

-고승하_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0236936&memberNo=35633637

 

어린이 문화를 가꾸는 사람들 #03 고승하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BY 개똥이네 놀이터] [인터뷰] 어린이 문화를 가꾸는 사람들 #03 고승하(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 “아...

m.post.naver.com

https://youtu.be/T4SX3aPGJsE

 

 

3. 자료들 속에서  

 

 

 

<이동순, 1920년대 동요운동의 전개양상, 한국문학이론과비평 제53집, 2011> 

 

-어린이의 발견은 동요를 탄생시켰으며 동요는 식민지적 상황 하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장르가 되었다. “한글 운동이 곧 애국운동이요, 민족운동이요, 구국 운동이요, 갱생운동이어서 온갖 박해를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라나는 제2세를 위한 어린이 운동 역시 그들 일본인 위정자에게는 식민지 동화 정책의 암이요 가시”였기 때문에 동요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남다른 장르가 되었다. 

이러한 특수한 시기에 탄생한 동요가 동요운동으로 전재된 양상은 여타의 문학 장르에서는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였다고 하더라도 동요처럼 확고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대부분 사멸되었기 때문이다. -73쪽

 

-봉건사회를 유지하고 있던 조선에는 혼란함이었다. 그 혼란 와중에 민족적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문화운동을 선도적으로 이끈 것은 천도교였다. 특히 천도교 소년회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다. 천도교 소년회는 천도교 청년회 산하에 결성된 단체로 그들이 전개한 소년운동은 장유유서를 악용하는 어른들의 부도덕 몰인정을 나무라면서 유년해방은 인격존중에서 시작하고 우선 말버릇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 이후 소년회는 전국적인 조직인 소년운동협회를 결성하여 “압박에 눌이어 말 한 마디, 소리 한 번 자유로 하여 보지 못하던 어린이”를 위하여 “소년 문제를 세상에 널리 선전하는 동시에 이 문제를 성심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물려받은 슈산이 없는 우리나라 소년 운동이나 아동문학은 소년 스스로 제 앞길을 개척”하였다. -74~75쪽 

 

- 동요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 민족적 자부심을 지키기 위한 문화운동을 선도적으로 이끈 것은 천도교 소년회의 활동이 있다. 방정환과 색동회가 <어린이>를 창간하면서 어린이운동을 주도하였고 동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동요는 일제교육제도의 강제적인 이식에 대한 저학적인 측면과, 창가와 개화가사, 기독교의 찬송가 등의 영향을 받아 동요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동요는 동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동요운동이 전개된 양상에는 다양한 층위에서 분석된다. 첫째는 어린이 문예지의 전성시대와 맞물려 많은 작품이 필요했고 소년들이 독자이자 창작자가 될 수 있도록 ‘독자투고란’을 개설한 것이 동요운동의 추동력이 되었다. 

둘째는 언론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동요담론으로 확장되었다. 일제에 저항하는 은밀한 방식으로 어린이를 내세운 것이다. 언론들도 앞 다투어 작품을 공모함으로써 대중들의 어린이들의 관심과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에 ‘소년소녀란’과 ‘어린이란’을 따로 마련하였으며 전래동요를 모집하여 전국의 전래동요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동요담론으로 확장되었다. 각종 동화 동요대회 소식과 소년회 활동 및 재외 소년소녀들의 대회까지 보도함으로써 동요담론을 고취시켰다. 

셋째는 동요와 동시가 혼용, 또는 분화되면서 동요의 음악성은 동시의 문학성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는 동요의 음악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의 일관으로 천편일률적인 7.5 조나 8.5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슬픔의 정조를 띤 동요보다는 기쁨의 정조를 띤 동요여야 한다는 논쟁을 불러 계습성 문제가 대두되는 등 한동안 내부적인 의견들이 오가는 과정에서 동요에 대한 높은 관심은 동시로까지 지평을 넓혀갔다. -91쪽 

 

 

4. 작품들 

 

 

 

반달 

                           -윤극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 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건

샛별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구슬비 

                        -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입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감자꽃 

             -권태응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마나 

하얀 감자. 

 

 

 


 

설 

                         -윤극영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 내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세요. 

 

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노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리 우리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집 저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새신  

                     -윤석중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새 신을 신고 

달려 보자 휙휙. 

단숨에 높은 산도 넘겠네. 

 

 


이 닦는 노래 

               -이원수 

 

싸악싹 닦는다 

웃니, 아랫니 

싸악싹 닦는다 

앞니, 어금니 

이 잘 닦는 아이는 

하얀 이, 이쁜 이 

웃을 때 빤짝빤짝 

보기 좋아요 

 

 


 

 

무얼 먹고 사나 

 

                 -윤동주 

 

바닷가 사람 

물고기 잡아 먹고 살고 

산골엣 사람 

감자 구워 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참고 할 만한 자료들  

-국립극장 네이버 포스트_우리를 키운 노래, 동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요

<윤삼현, 윤극영의 동요세계-일제강점기 창작동요를 중심으로, 한국아동문학회, 2011>

<남지현, 권태응 동요의 형식적 특징과 시적 공간 ‘동네’의 의미, 한국아동청소년문학학회, 2011> 

<이동순, 1920년대 동요운동의 전개양상, 한국문학이론과비평 제53집, 2011>


 

*스케치 코멘트

-연구자료의 대부분이 1920년대~ 1950년대 까지를 주로 연구주제로 삼고 있어서, 이후의 시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해 보임. 

-동요의 현재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백창우 선생님과 고승하 선생님을 제외한 다른 창작가, 창작그룹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 이유는? 

-현재성을 담보한 '동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동시문학사 스케치 #1 <최남선과 김인식>

동시문학사 스케치  

 

 1) 최남선과 <소년>  

#아동문학의시작 #1908년최초의아동지소년창간 #해에게서소년에게 #민족대표48명 #친일파 

 

-1890년 4월. 한성에서 출생

-1904년. 러일전쟁 이후 황실파견 유학생으로 일본유학. 

  * “동경부립제일중학교에서 최남선은 주당 31시간의 수업을 받았ㄷ.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하루 평균 다섯 시간 정도의 수업을 받았다. (...) 열 다설 살에 황실 유하생으로 선발되어갔던 이 유학은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끝났다.” (동경삼재, 류시현, 산처럼, 2016, 49쪽) 

 

-1907년. 한일합방. 

-1908년. 일본유학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와 이광수와 함꼐 소년지 <소년>을 창간. 

  *시대의 사조를 하나로 모으는 근본으로 신흥하는 교육계에 구체적인 교과서를 공급하려 함     이 그 제일 먼저 할 기획이었도다. (...) 사회 장래의 중추를 담임할 청년들에게 정당한 자     각과 질실한 풍기를 환기하기 위하여 잡지 <소년>을 발간했도다. (동경삼재, 류시현, 산처럼, 2016, 81쪽) 

-창간호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최남선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서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파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뼉만한 땅을 가지고,
고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짝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조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少年輩)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콱.

 

 

 

*<한국 아동문학 형성과정 연구, 원종찬, 동북아 문화연구 제 15집, 2008>   

1)<소년>의 독자로 상정된 ‘소년’은 곧 ‘청년’이었고, 이들은 근대 계몽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주체로서 인식되었다. 따라서 <소년>이 겨냥하고 있는 대상은 ‘성인문학의 독자’와 대비되는 ‘아동문학의 독자’ 개념하고는 상당한 편차가 있다.” (78쪽) 

2)아동문학의 기점이든 기원이든, 그 형성고정을 논할 때의 ‘아동문학’은 오늘날 우리가 그렇게 여기는 것으로서의 근대적 개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소년>에는 그러한 근대적 개념으로서의 아동문학에 대한 자각이 나타나 있지 않다. ‘성인’과 대비되는 ‘아동’을 발견할 만한 제도적 기반이 매우 취약했기 때문이다.“ (79쪽)   

3)일본근대 아동문학의 용어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확인되는데, 창작이라고 할 만한 의미있는 아동문학 텍스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80쪽) 

 

-1919년 기미독립선언문을 기초한 것으로 알려짐. 민족대표 48명 중 한 사람. 

 

-이후 친일파로 돌아섬. 광복 이후 반민족특별위원회에 기소되었다가 1949년에 병보석으로 풀려남. (친일파였다니...) 

 

-당시 이광수와 최남선은 동시에 옥에 갇혀 참회록 발표.

 

 


 

 

2. 김인식과 <표의> 

 

-<한국 아동문학 기점 연구> 논문을 통해 신정아는 아동문학의 출발로 불려지는 최남선의 <소년>지와 방정환의 <어린이>지를 흔히 들지만 “보통학교 학도용 국어독본”(1908.3)에 실린 창가 <표의>가 한국 동시문학의 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국 아동문학 기점 연구, 신정아, 한국아동문학연구 32호, 2017> 

기존의 아동문학 기원에 관한 논의로는 1923년 3월 방정환이 창간한 「어린이」와 1908년 11월 육당 최남선이 창간한 「소년」이 있다. 이재철, 구인환 등은 「소년」을 아동문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또한 이원수, 석용원은 육당의 「소년」을 아동문학 형성의 계기로, 「어린이」를 아동문학 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되는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이상현, 원종찬은 「어린이」를 근대문학의 효시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렇듯 아동문학의 기점을 두고 「소년」과 「어린이」는 꾸준히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다. 한편, 「한국 근대 아동문학의 형성과정 연구」는 아동문학의 출발을 1920년대로 보는 관점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아동관의 근대적 전환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1900년대로 앞당겨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의 연구가 근대 아동문학의 기원을 방정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렇다면 육당의 「소년」 이후 발간된 「붉은 져고리」(1903. 1~1913. 7)나 「아이들보이」(1913. 9~1914. 8), 「새별」(1913. 9~1915. 1)로 이어지는 잡지의 발간들을 과연 어떻게 평가3)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기원의 의미가 '사물이 처음으로 생김. 또는 그런 기원'을 뜻한다고 볼 때, 방정환 의 「어린이」에서 '아동문학'이 처음으로 생긴 것은 분명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인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창조한 문학의 총칭'이라는 아동문학의 보편적인 정의에도 어긋난다.
성인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창조한 문학은 사실「소년」이전에 존재했다. 

보통학교에서 어린이에게 읽힐 목적으로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 이 바로 그것이다그러므로 아동문학의 기점을 논의하는 데 있어 보통학 교령(1906) 시기 어린이가 접한 문학작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한국 아동문학 기점과 관련된 논의가 「소년」과 「어린이」에 한정 지어 연구되었던 것은 아니다. 신현득은 "한국 아동문학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동시에서 시작되었으며, 최초의 정형동시가 1908년 3월 20일 신문관에 서 발행한 최남선 작 경부텰도노래"임을 강조한 바 있다. 경부텰도노 래 67절 끝에 "삼가 이 노래를 어린 학생 여러분에게 드리옵내다"7)라는 후기는 경부텰도노래가 어린 학생에게 바치는 시집이었음을 증명한다. -160~161

 

 

 

 

 


*참고자료

조선의 상식, 최남선, 최상진 해제, 두리미디어, 2007

최남선 시선, 최남선, 김문주 엮음, 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동경삼재, 류시현, 산처럼, 2016

신현득의 내가 사랑한 동시, 법보신문 연재, 2017 

한국 아동문학 기점 연구, 신정아, 한국아동문학연구 32호, 2017 

한국 아동문학 형성과정 연구, 원종찬, 동북아 문화연구 제 15집, 2008 

 

*스케치 코멘트 

-원종찬의 논문은 정리가 가장 잘 되어있음. 땡큐. 

-신현득 선생님의 논문은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없어서 따로 구해서 읽어야 할 듯 함.

-아동문학의 확실한 기원에 대한 흥미가 전혀없었는데, 원종찬의 논문을 읽고 눈이 좀 밝아짐. 

 

 


 

<작품들> 

우리의 운동장

 

-최남선 


우리로 하여금 풋볼도 차고 

우리로 하여금 경주도 하여 

생하여 나오는 날쌘 기운을 

내뿜게 하여라, 펴게 하여라!

아직도 제 주인 만나지 못한 

태동(泰東)의 저대륙 넓은 벌판에

우리로 

우리로

우…리…로!
우리로 하여금 헤엄도 하고 

우리로 하여금 노젓기도 하여 

서방님 손발과 도령님 몸을 

그을게 하여라, 굳세게 하여라! 

우리의 운동장 되기 바라는 

태평의 저 대양(大洋) 크나큰 물에 

우리로 

우리로 

우…리…로!

뚫어진 짚신에 발감개 하고 

시베리아 찬바람 거스르면서 

다름질 할 이가 그 누구인가? 

나막신 같은 배 좌우로 저어 

볕발이 쏟아지는 적도 아래서

배싸움 할 이가 그 누구인가? 

우리오 

우리오  

우…리…오!


-최남선 ‘우리의 운동장’, ‘소년’ 제2권(1908.12월) 1쪽 앞

김지은, 거짓말 하는 어른, 문학동네, 2015

슬프지 않은 어린이, 슬픔을 말하는 아동문학 

 

 

1. 저게 슬퍼요? 

 

"뿔논병아리야, 바다쇠오리야, 가마우지야, 논병아리야!" 구슬픈 이름을 불러본다. 2007년 12월 7일 태안 아파다에서 일어난 원유 유출사고로 영문도 모르고 스러진 야생 조류들의 이름이다. 끈적이는 검은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 ㅇ쓰고 살아보겠다고 갯벌 위에서 버둥대던 그들은 줄줄이 숨을 놓았다. 굴을 까서 하루 벌이로 손자 손녀를 키워온 할머니는 "할무니, 제발 죽는다는 말만 하지 마."라고 매달리는 손녀 앞에 주저앉아 통곡한다. 손녀가 일기장에 그린 바다는 파도도 물고기도 새도 온통 먹빛이었다. 

 

슬픔은 어떻게 느끼는 걸까. 누군가는 슬프면 이마다 뜨끈해지면서 눈이 뻑뻑하다 하고, 또 누구는 슬프면 턱 밑에 무거운게 걸린 듯 입에서 말이 만들어지지 않느다고도 한다. 어떻든 슬픔은 일시적으로 확 치솟아오르는 것이기보다는 스르르 적셔드는 감정이다. 문제의 그 사고가 난 날, 동네 식당에서 텔레비전 뉴스로 현지 소식을 보고 있었다. 기름이 엉켜붙은 부리를 힘겹게 저으며 하늘로 고개를 치켜드는 뿔논병아리의 모습을 보는데 절로 눈물이 고였다. 이를 어찌할까. 몇 안되는 식당 손님들은 같은 기분이었는지 잠시 수저를 멈추었다. 이때 건너편 식탁에서 이 장면을 보며 밥을 먹던 어린이의 한마디에 귀가 번쩍 뜨였다. 

 

"엄마, 저 새 열라 까맣다." 

 

"저 얼마나 슬픈 일이니."

 

"에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뭘. 엄마는 저게 슬퍼?" 

 

 

2. 슬픔(sadness), 화(anger), 의분(indignation) 

 

어린이들이 좀 처럼 슬퍼하지 않는ㄷ. 어린이들은 눈물을 흘리는 대신 욕설을 한ㄷ. 눈물을 흘리면 지는 거다. 이 치열한 경쟁의 악다구니에서 패배하는 거다. 아동문학도 요즘은 슬픔을 잘 말하지 않는다. 슬픔을 ㅁ라하면 때 지난 신파같고,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 같아 마뜩잖다. 작가들은 주인공의 눈물 대신 냉소에 젖거나 의분에 찬 어린이들이 겪는 환상과 도전을 그린다. 

 

사실 어린이들의 생활에서 슬픔의 자리를 '화'가 차지한 지는 꽤 되었다. 슬픔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감정이라면 화는 밖으로 표출되는 감정이다. '슬픈 사람은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슬픔을 권하는 사람은 드물다. 되든 말든 일단 화를 내고 나면 "그 녀석 똥배짱이다."라는 말이라도 듣지 않는가. 얼핏 눈물이라도 비쳐서 상대에게 만만해보이는 것보다는 똥배짱이 되는 것이 나은 세상이다. 흐느끼는 어린이는 별로 없고 떼쓰고 울부짖는 어린이들로 가득하다. 약육강식이 인간의 규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픔은 화가 지니지 못한 힘을 갖고 있다. 자기 안으로 깊숙하게 슾퍼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다. 슬픔은 다차원적인 공감 능력이기도 하다. 나에게 특별한 직접적 불행이나 실패가 없어도 어떤 상황에 대해서 비애를 느낄 수 있다. 가을에 찻길을 뒹구는 낙엽 한 장이 우리를 슬픔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누군가의 감정을 보면서 강렬한 비통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사람과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나도 몹시 슬퍼보 적이 있고, 그순간을 되돌아보면 지금 그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능력은 윤리적 배려로 나타난다. 슬픔을 아는 사람은 다른 이의 어려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비웃지도 않는다. 내가 르렇게 슬퍼보았는데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단 ㅁ라인가. 동정이나 연민이 논리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동정이나 연민을 가슴에 품지 못하는 사람의 진정성과 실천력은 떨어질 수 있다. 

 

화를 내느라 에너지를 모두 써버려서 그런지 요즘 어린이들은 책을 읽고 잘 울지 않는다. 입으로는 주인공이 불쌍하고 가엾다고 하지만 공감하기보다는 왜 불쌍한가에 대한 원인 분석에 열을 올린ㄷ. 주인고의 감정은 논평의 대상읻. 주인공이 나 같고 내가 주인공 같아서 슬프다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159~161  

<김지은, 거짓말 하는 어른, 문학동네, 2015> 

페미니즘 아동문학_ 참고자료_ 영문

<Nancy chodorow, The Reproducion of mothering: Phychoanalysis and Sociligy og Gender, University of califonia Press, 1978.>

PDF 원문 

https://toleratedindividuality.files.wordpress.com/2015/10/the-reproduction-of-mothering.pdf


 

<George L. Mosse, The image of man,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https://www.amazon.com/Image-Man-Creation-Masculinity-Sexuality-ebook/dp/B000SBPAKQ

 

<George L. Mosse, The image of man,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김지은, 어린이 세 번째 사람, 창비, 2017>

<김지은, 어린이 세 번째 사람, 창비, 2017> 

 

+

어떻든 어린이들이 남자답게 혹은 여자답게 행동하게 되는 배경에는 그들을 키우는 부모와 사회의 심리적 태도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심리학자 낸시 초도로는 남녀 어린이들의 성격차이가 어릴 적 부모와 맺은 관계와 사회의 기대치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주된 양육자인 엄마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중요하다. 그에 따르면 남자 어린이들이 툭하면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뛰어다니는 까닭은 엄마들의 양육 방식과 관련이 깊다. 엄마들은 자신과 다른 신체적 특성을 지닌 아들을 키우는 일이 낯설다. 아들에게는 어서 엄마에게서 벗어나 아버지처럼 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딸들에게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젖먹이 딸과 엄마는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고 엄마는 딸과 지속적인 공생 결속 관계를 맺는다. 이 덕부넹 딸들은 세상에 대한 관계 지향적 태도, 연결적 자아상을 갖게 되는 반면, 남자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자신을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16

 

+

그뿐만 아니라 ‘남자다움’이라는 특성은 사회 정치적 필요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서양의 경우 중세와 근대 초기까지 대부분의 남성들은 육체가 무기력해야 살아 있는 영혼이 깃든다고 믿었다. 근육질의 씩씩한 남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없었던 셈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남성성과 엿어성의 조화는 육체와 정신을 새롭게 보려고 했던 계몽주의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게다가 근대국가의 발생 전후로 현저하게 잦아지고 규모가 커진 전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야만적인 남성 전사가 필요했다. 남자 어린이를 씩씩하게 기르기 위해 <소년을 위한 체조>라는 책을 지었던 요한 구츠무츠는 남자다운 용기에 대해 말하면서 무모함과 비검함 사이에서 중간의 길을 찾고 약자를 보호하며 사고에서 희생자를 구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했다. 당시 사회가 원하는 ‘남자다움’이란 ‘고귀한 야만인’이라는 모순된 존재였다. 계몽주의와 전사 양성 요구가 빋어낸 기묘한 결합이었던 셈이다. 

남자다움이 애국주의와 결합하면서 소년들은 더 남자다워져야만 했다. 식민지 쟁탈전이 가속화되고 전장에서는 더 많은 남자가 필요했ㄷ. 전쟁터에 나가기에 아직 어린 소년에게는 전쟁과 모험 이야기를 안겨 주었다. 너도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위대한 모험을 토애 너의 사내다움을 시험해 보아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고 부추겼다. 모험심은 남자다움과 동일시되기 싲가했다. 

중산층 소년들의 관심이었던 ‘남자다워지기’는 잏 산업화 과정에서 모든 계급의 관심으로 확장되었다. 기업가들은 소년들의 육체 단련을 강조했다. 노동계급이 규범적인 남자다움을 갖추게 되면 생산성이 한결 높아지기 때문이다. 소년들은 생산적인 성년이 될 준빌르 해야 했다. 물론 소년들의 남자다움에 대한 독려가 모두 호전적이거나 산업 생산의 논리를 따른 것만은 아니었다. 19세기 말부터 독일 소년드에게 인기가 높았던 카를 마이(karl F. May)의 소년 소설은 북미 인디언들의 남자다운 모험에 대한 얘기였다. 가능함녀 싸움을 피하는 인디언 올드 셰터핸드의 이야기를 다룬 칼 마이의 책들은 평화주의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올드 셰터핸드는 어쩔 수 없이 싸워서 악인을 무찌르게 되면 반드시 그를 죽이지 않고 판사에게 데려오곤 했다. 

이렇게 성장한 전통적인 소년들은 각기 다른 편에 서서 남자다움을 발휘하게 된다. 파시스트와 그에 맞서는 저항군, 자본가와 자본가에 대항하는 사회주의자 양쪽은 모두 든든한 사내가 필요했다. 길고 큰 전쟁들으 허망하고 비참하게 끝나고 여권운동 진연이 목표를 차근차근 달설애 나가고, 다양한 소수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소년들의 질주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17~18 

 

+ 

1990년대 이전까지는 여자 어린이가 주인공인 동화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 어린이문학은 소년들의 독무대였다. 이른바 근대적 소년들은 일제강점기부터 민주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 어린이 문학을 이끌어 온 주인공들이어싹. 그 겁 없고 당찬 소년 주인공들이 빌리처럼 자신의 소년다움에 대한 갈등을 겪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아주 빠르게 갈등을 마무리한 모양이다. 사내다움을 거부하는 문제로 부모와 다투는 어린이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동화 속에서는 온유하고 섬세하고 자상한 소년들이 속소 ㄱ등장했다. 사내 냄새 풀풀나는 녀석들은 놀라운 속도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런 현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19 

 

+

관찰자로 쫓겨난 어린이들 가운데 여자 어린이들의 자리는 더욱 외곽이다. 그 많은 어린이책 화자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잠재적 성이 여전히 ‘남성’이다. 수많은 남자아이의 눈은 여자아이게게 ‘너의 삶을 아름답게’라는 주문은 외운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네가 말하는 너의 삶이 나의 삶인가, 아니면 누구의 삶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서ㅑ 비로소 자신의 왕국에서 사용할 주문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이 시간에도 많은 여자 어린이는 소녀로, 여자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아이의 성장을 다루고 있지만 그를 통해 여성의 세계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보여 준다. 무엇이 여자아이를 둘러싼 것이며 걷어 내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그가 벌이는 성철작 탐구는 그림책이라는 ‘모호한 장르’를 통해서 끝없이 계속된다.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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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이제 더 이상 하나의 권력에 복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때로는 폭력적인 형태로 강요되었던 가부장 권력이든 아니면 사랑과 배려의 이름으로 칭칭 감겨들던 모성의 간섭이든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본래 부모의 권력으로 장악되는 존재가 아니다. 게다가 세상은 좀 더 민주적이고 다원적인 방향으로 힘의 중심이 흩어지는 추세다. 이것이 아버지의 권위가 사라진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아이들의 마음은 아버지로부터 더나고 있다. 종종 아버지는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어른들은 희미해진 아버지의 존재를 아이들에게 강하게 되살려 주려고만 할 뿐 그들이 왜 아버지를 부인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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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은 어린이가 균형 잡힌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존재’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아버지가 없는 사람에 대한 공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는 영웅담 가운데 많은 이야기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가 정성껏 키운 아들들’의 얘기다. <조웅전>, <유충렬전>이 대표적이다. 세상은 아버지 없는 사람의 가능성을 쉽게 인정하기 않는다. 영ㅇ우이 되어야 비로소 인정해준다. 그런 아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어머니는 지나칠 정도로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습으로 과장된다.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를 극복하고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는 아들에게 지나친 부담을 준다. 아버지가 눈앞에 없기 때문에 아버지를 더 크고 대단한 이로 상상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재미있은 것은 이런 식의 ‘아버지 없는 아들이 영우 되는 옛이야기’가 어린이들에게 남자다움에 대한 판타지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읽는 남성 영웅담은 남자 어린이들이 ‘거대한 아버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도록 이끈다. 남성 영웅담에서는 실제 아버지의 초라한 얼굴이나 고민은 애써 감추려 든다. 이야기에는 ‘멋진 아버지 되려고 애쓰는 대단한 아들들’이 나오지만 그 이야기를 읽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현실 속 진짜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사라져 버린다. 또한 어머니는 그 다짐을 실현하는 과정에 존재하는 보조자일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버지’가 도리 수 없는 여자 어린이들의 좌절에 대해서도 헤아리지 않는다. 

-313 

 

 

<김지은, 어린이 세 번째 사람, 창비, 2017> 

문단_내_성폭력_춘천교대_기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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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3. 21 

http://www.kwnews.co.kr/nview.asp?s=501&aid=217032000137

 

춘천교대 교수 제자 성희롱 파문

해당 교수 사과문 게시특단 조치 필요 목소리춘천교대 한 교수의 성희롱 사실이 또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최근 춘천교대 대학원 게시판에는 제자를 성희롱한 모 교수의 사과문이 게재됐다.

www.kwnews.co.kr

 

(사과문을 구하여 읽고 싶었으나 구할 수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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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5. 18. 

춘천교대 성폭력대책특별위 대자보 

https://twitter.com/yeonhayeon/status/865148079837560832/photo/1

 

어쩌구_4🅱 on Twitter

“춘천교대 성폭력대책특별위 자보”

twi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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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5. 19. 

집담회 참가 후기 블로그 글 

https://brunch.co.kr/@eompebble/13

 

나는 어린이책 편집자이자 페미니스트다.

<여성+어린이+문학> 집담회를 다녀와서 | 5일 전인 지난 주 일요일, 5월 14일에 <여성+어린이+문학> 집담회가 있었다. 집담회는 저녁 7시 가톨릭청년회관의 작은 소모임방에서 열렸다. 가톨릭청년회관은 마포구 홍대역 인근이었고, 시간도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나는 집담회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주5일 나인투씩스 출근하는 직장인인 데다 항시 불면의 두려움을 갖고 사는 내게 일요일 저

brun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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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5. 29 

춘천교대 총학생회 성명서 

https://twitter.com/juniorfeminist/status/869190702520868867/photo/1

불러오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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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6.03. 

어린이문학출판계 성폭력 성명서 

https://docs.google.com/forms/d/1Dtu8wwaDvwqM7D6_s-d8_oxI8sEh0j_LC7z1tpQI3aQ/viewform?fbclid=IwAR12ITzJ1pP1a_GzOAmLNwEwBgF82ROfZZmc_EoDm_JhyKjvKzi8YdA48G4&edit_requested=true

 

어린이문학출판계 성폭력 성명서(1차 서명자, 1,236명)

어린이문학출판계 성폭력에 맞서는 연대의 행동에 참여합니다. 2017년 3월 21일과 22일, 강원일보와 강원도민일보에 보도된 한 국립대 교수의 제자 성희롱·성추행 사건은 어린이문학출판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해지목인은 어린이문학출판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피해자 A는 어린이문학 연구자·창작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학생입니다. 지도 교수와 제자, 아동문학평론가와 작가 지망생이라는 위계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가해지목인은 여러 차례

docs.goog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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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3. 21

문학평론가 김지은 칼럼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0633

 

[기울어진 극장] 산적의 딸들을 위하여 - 여성신문

아동문학 내 성폭력에 눈 뜨고말하고 귀기울이는 게 동화의 정신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은 교사는 어린이가 청소년이 되는 순간을 지켜본다. 초임 교사가 6학년을 맡게 되면 학생과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서 ...

www.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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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3. 30. 

사건 이후 3년.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3301726005

 

“저는 피해자입니다, 사람들은 왜 용서 못 하냐고 저를 비난합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18호 법정. 서현욱 검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학교수의 성폭력 사건으로...

news.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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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4. 09. 

춘천교대 성폭력규탄모임 _ 페이스북 사진 

https://www.facebook.com/205967363467872/photos/a.206659053398703/206688706729071/?type=3&theater

 

춘천교대성폭력규탄모임

성폭력 가해 교수의 오피스 앞에 그를 규탄하는 춘천교대 내 학생들이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범죄자가 돌아올 곳은 여기 없습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www.face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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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09. 04. 

<여성+ 어린이+ 문학> 집담회 후속 기사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1809041730001

 

 

"여자아이의 성은 왜 없나요" 페미니즘으로 다시 만난 아동문학

“클리토리스의 구조가 해부학적으로 밝혀진 게 1998년이라고 합니다.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여성에...

m.khan.co.kr

 

 

<김이구, 해묵은 동시를 던저버리자, 창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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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인이 어린이를 만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자기 자신 속의 어린이 즉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지금 내면에 가고 있는 어린이가 있고, 둘째로 가족이나 이웃의 어린이, 셋째로 어린이글을 통해 만나는 어린이가 있다.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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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화자 논쟁은 동시 장르의 본질적이며 예민한 속살을 건드린 것이었는데, 어린이 화자 문제는 창작 주체 개인이 손쉽게 바꿀 수 있는 창작 방법의 선택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것임을 우선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 문학사에서 동시라는 형식은 어린이가 읽기에 적합한 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독특한 미적 양식이다. 동시는 어린이를 핵심 독자로 삼지만 독특한 미적 자질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장르의 원리를 나는 “아이들을 향해 조율된 목소리‘로 말해진 시와 노래가 바로 동시.동요”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어린이 독자를 향해 목소리를 조율할 때 흔히 선택되는 것이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방식이며 이를 위해 종종 어린이 화자가 설정된다. 이렇게 어린이 화자가 발화하는 방식은 동시 장르의 형성기부터 조성된 오래된 관습으로 동시 장르의 탄생과 그 역사를 같이 한다. 

화자가 어린일 때 어린이 독자가 느끼게 될 생소함과 불편함을 불식하고 어린이 독자가 친근하게 느끼고 내용에 공감하기 쉽도록 어린이 화자나 어린이 같은 목소리를 설정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화자나 목소리가 늘 공감의 효과를 불어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발화된 내용만이 아니라 화자를 주목하게 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예가 허다하다. -127

 

+

동시는 어린이 독자와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에 맑고 깊은 동시를 읽고 가슴에 품어서 어른이 되어서도 청아하고 간결한 마음을 유지하며 여전히 동시를 읽고 즐길 수 있다면 그런 인생은 출복일 것이다. 그런데 다양하고 자극적인 매체들이 어린이의 이목을 사로잡는 시대이니만큼 동시를 일상적으로 읽고 노래 부르는 수용문화를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어린이 도자가 보통 40~70편에 이르는 작품이 수록된 동시집을 제대로 읽는 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일 듯 하고, 동시가 어려 매체와 결합하여 어린이와 마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141

 

+

자신은 어떤 정신을 어떤 형식에 담을 것인가, 그리하여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신인이라면 한국 동시사에 의미 있는 자기 목소리를 보탤 수 있을 것이다. -168 

 

+

2005년 이후 현재까지 출간된 주요 동시집을 대부분 읽어 보았지만, 몇몇 작품집을 뺴고는 대부분 시적 긴장과 완성도가 떨어져 시를 읽는 즐거움을 얻지 못하였다. 동시도 기본적으로 시를 읽는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시’를 추구하다가 ‘동(아이)’을 놓쳤거나, ‘동’시가 돼야 하는데 시에 머물렀다거나 하는 것은 형식논리로는 성립할 수 있어도 해심을 비켜난 접근이다. 최고의 동시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최고의 시가 돼야 한다. -208 

 

 

 

+

재능과 가능성을 가진 많은 시인들이 해묵은 관습에 얽매여 낡은 동시의 틀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낡고 타성에 젖은 동시의 관념을 털어버리지 않는 한 재미없는 동시가 계속 나올 수 밖에 없고, 동시단은 생동감을 잃고 자기회로를 맴도는 어리숙한 동호인들의 자기만족을 위한 마당으로만 남아 있게 될 것이다. -208 

 

동시는 그 본질상 어린이를 의식하고 쓰는 시다. 그런데 그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인가? 흔히 ‘혀짤배기 동시’라고 지적되는, 어른의 유치한 아이 흉내는 패턴화한 작품은 이제 그다지 많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동시가 의식하고 있는 어린이는 좁은 사고와 제한된 경험, 제한된 희로애락의 감정을 지닌 존재다. 

 

+

윤석중의 위와 같은 자기검열- 어린이 인식은 1950년대 이후 주류 문단의 동시 인식과 동궤에 놓이는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그리고 이런 어린이 인식, 어린이 관념은 수십 년을 경과한 21세기에도 여전히 동시 문단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10 

 

+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의 살아 있는 모습을 느낄 수가 없다. -214 

 

+

시상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표현되어 있다. / 착상의 전개도 시인의 이름을 가렸을 때 누구만의 표현이라고 생각될 만한 개성을 보여 주지 못한다. / 소재를 보는 상상력이 발랄하지 못하다. 

 

+그러나 낡아빠지고 감동 없는 교훈성 구절과 착한 어린이표, 아름다움표 표현을 구사한 작품도 여러 편 같이 실려 있어서 이 신인들이 동시에 대한 자의식을 갖지 모사고 해묵은 동시 관념에 젖어 있음을 드러내 준다. 또한 거의 모든 작품이 압축적인 표현을 찾는 데 소홀해서 언어의 경제성을 보여 주지 못한 것도 커다란 약점이다. 이런 상황은 두 권의 작품집에 실린 여덟 명의 시인에게 별 차이없이 공통으로 드러난다. -221 

 

+시인이 사물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주체의 관념을 투사해버린다. 시인이 그려내는 사물은 궁극적으로는 시인의 주관으로 해석한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것은 대상의 본질에 도달하기 위해 몇 번이고 두드려 보기를 반복한 결과로서의 해석이어야 한다. 이때의 본질은 물론 자연과학적 또는 사회학적 사실과는 다른 시적 진실의 추구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의 관습은 사물의 본질을 발견하기 앞서서 서둘러 주관을 투사하기 일쑤이다. 

 

+

동시가 어린이를 의식하고 씌어져야 하는 것은 밥을 지으려면 쌀을 구해 와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때 의식되는 어린이가 기존의 동시들이 그려 내던 어린이상이거나 사회 통념으로 퍼져있는 어떤 어린이상이라면 그 동시가 가질 수 있는 시적 매력은 반감된다. 뛰어난 시인은 주어진 어린이상을 받아들여 가공하지 않고 매번 새롭게 어린이를 발견해 한 편 한 편에 살아있는 어린이의 모습을 담아내려 한다. -222

 

+

아이의 눈으로 보고 아이의 마음을 담고 아이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시인의 시도가 편편이 배어있다. -223

 

+

이미 뛰어난 시적 성과를 보여 준 역량 있는 시인들이 살아 있는 어린이를 담아내고 어린이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치열하게 정진한 결과가 이렇게 제한적인 결실에 다다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동시에 대한 이해나 체득이 미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린이 존재를 제한적인 인격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어린이는 유한하다. 어린이는 그 존재의 조건으로 인해 지식도 경험도 감정도 유한하다. 이를 개념적으로는 부정하더라도, 두 시인에게는 이런 어린이상이 내면화되어 있어 어린이에 집중할수록 더욱 이러한 어린이상을 구현한 동시를 창작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창작과정을 통해 시인의 역량이 극대화되고 시의 파장이 무한히 넓어지거나 깊어지는 결과를 얻어 내지 못하였다. -225

 

+

<고양이 학교>의 작가 김진경은 최근 어떤 문학잡지의 좌담에서 “지금은 근대가 만들어 낸 아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너지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고 발언하였다. 이는 좀 더 본격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논제인데, 김진경은 ‘작은 어른’으로 간주되던 아동의 개념이 근대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일하는 어른들과는 구분된느, 근대 학교 시스템에 수용되어 국가가 요구하는 교육을 받는 일정한 연령까지의 아이들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바뀌었고, 따라서 아이들에게 지식 정보를 연령대별로 통제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그렇게 해왔다고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의 어린이책 시장에서는 아동문학을 “철저하게 근대 아동 개념에 입각해서 보고 있”고 ‘이렇게 보면 아동문학의 지위가 정말 낮아져 버린다“고 진단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지식 정보에 대한 무차별적인 접근성, 핵가족의 해체, 소비사회 진입 등으로 인해 근대의 아동 개념이 붕괴될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고, 따라서 어린이문학은 ”아이들이 가장 첨예하게 변하고 있는 지점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그것들의 사회적 의미를 자꾸 작품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탈근대의 아동의 출현을 보면서 탈근대에 걸맞은 아동관이 필요함을 지적한 것인데, 매우 논쟁적인 문제제기다. 어린이를 미성숙한 존재이면서 독자적인 인격체로 보는 근대 어린이문학의 아동관은 지금도 여전히 어린이문학을 지배하는 관념인데,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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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노래 / 페터 한트케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은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라는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나는 여기에 있고 거기에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악마가 존재하는지, 악마인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 일 뿐인데 그것이 나 일수 있을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시금치와 콩, 양배추를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잘 먹는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낯선 침대에서 잠을 깼다

그리고 지금은 항상 그렇다

옛날에는 인간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옛날에는 천국이 확실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상상만 한다

허무 따위는 생각 안했지만

지금은 허무에 눌려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때 뿐이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사과와 빵만 먹고도 충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딸기만 손에 꼭 쥐었다

지금도 그렇다

덜 익은 호두를 먹으면

떨떠름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산에 오를 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고

도시에 갈 때는 더 큰 도시를 동경했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버찌를 따러 높은 나무에 오르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도 그렇다

어릴 땐 낯을 가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항상 첫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서 나무에 던지곤 했는데

창은 아직도 꽂혀있다

 

 

+

지금까지 동시단은 어린이를 너무 의식했다. 그 어린이는 시인의 몸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었다. 기성 동시가 터를 두고 있는 어린이는 깡그리 잊어버려라. 몸에 배어 입만 열면 흘러나올 것 같은 해묵은 구절들도 우주로 펑펑 날려 버리자. -237

 

 

+

<아동기의 소멸>을 쓴 닐 포스트먼은 인쇄 매체의 보급과 교육 대중화에 따라 ‘발명’된 아동기가 전자매체 시대에 접어들어 흔들리고 있다고 본다. (.....) 아동기의 소멸을 보는 ‘어두운 절망’과 전자매체 시대의 새로운 자율성을 찬양한는 ‘낙관적 전망’ 사이에서 그 나름대로 균형을 잡아 보려고 한ㄷ. 버킹엄은 거대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생산하는 서사와 이미지, 상품에 흠뻑 빠져든 현대사회의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미디어 아동기’라 부르면서 현대의 아동기가 전자매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겨나고 규정되는 점을 주목한다. 근대와 탈근대가 교파하는 이 시대에 과연 어린이는 어디에 서 있는가? 우리 아이들에 대한 사회문화적 보고와 함께, 예민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포착한 생생한 모습들이 풍부하게 나와 줘야겠다. -260 

 

 

<김이구, 해묵은 동시를 던저버리자, 창비, 2014>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13_ 정선율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13 

 

너무 뜨거운 곳에선 바람을 기다리면 돼 

바다가 남겨 둔 꿈을 

 

엄마, 작게 흔들리는 저 바다가 어른이 되면 바다는 무슨 꿈을 꾸어요 

 

엄마, 저 바다가 어른이 되면 흰 돛단배 함께 타고 놀던 물고기들은 모두 어디로 헤엄쳐 가요 

 

새들이 물고 떠나간 파란 바람을 

새들은 기억해 주어요? 

 

저 바다가 앞니 빠진 할머니가 되면 내 퉁퉁한 볼 부드러이 감싸며 괜찮다 괜찮다 해 주던 엄마는 무슨 꿈을 꾸어요

 

엄마, 바다는 무슨 꿈을 꾸어요* 

 

 

*위 전 곡은 각 음원 사이트에서 "엄마, 바다는 무슨 꿈을 꾸어요"곡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정선율,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13, 동시마중56호> 


#세계의 첫 번째 질문 #시의 질량과 동시의 질량 

 

1

이 세계에 처음으로 내려온 질문들을 마주한다. 첫 번째로 내려온 질문은 세계를 미묘하게 뒤틀어놓는다. 시인의 언어는 이 가당치도 않은  은 질문을 내려놓는다. "바다는 무슨 꿈을 꾸"는지. 작은 아기 바다가 어른 바다가 되어가면서 "함께 타고 놀던 물고기들은 모두 어디로 헤엄쳐" 가는지. 새들은 파란 바람을 기억하는지, 엄마는 무슨 꿈을 꾸게 될지. 이 모든 질문의 시작에는 '호기심으로 가득찬 아이의 마음'이 있다. 

 

2

혁명가는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으로서 세계를 전복하려 들고, 아이는 세계를 사랑하는 방식으로서 세계에 질문을 내어놓는다. '호기심'이란 사랑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첫 번째 질문인지도 모른다. 

 

3

얼마전 김창완 선생님의 북토크 영상을 보다가 "시가 촘촘한 그물로 언어를 낚는 것이라면 동시는 성긴 그물로 언어를 낚는 것이죠." 라는 말이 떠나지 않는다. "성긴 그물로 대어를 낚을지 누가 알겠어요." 라는 유-우-머까지. 요즘 자주 고민하고 있는 대중성과 인간성. 단순함과 치밀함. 이것에 대해서 한 번 떠올려 보게 되는 작품. 

 

 

 

 

 

 

<정선율, 파란색은 사랑하는 시간이었다, 동시마중56호> 

빛보다빠르게미래로달아나라 -이상,삼차각설계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