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은, 거짓말 하는 어른, 문학동네, 2015

슬프지 않은 어린이, 슬픔을 말하는 아동문학 

 

 

1. 저게 슬퍼요? 

 

"뿔논병아리야, 바다쇠오리야, 가마우지야, 논병아리야!" 구슬픈 이름을 불러본다. 2007년 12월 7일 태안 아파다에서 일어난 원유 유출사고로 영문도 모르고 스러진 야생 조류들의 이름이다. 끈적이는 검은 기름을 온몸에 뒤집어 ㅇ쓰고 살아보겠다고 갯벌 위에서 버둥대던 그들은 줄줄이 숨을 놓았다. 굴을 까서 하루 벌이로 손자 손녀를 키워온 할머니는 "할무니, 제발 죽는다는 말만 하지 마."라고 매달리는 손녀 앞에 주저앉아 통곡한다. 손녀가 일기장에 그린 바다는 파도도 물고기도 새도 온통 먹빛이었다. 

 

슬픔은 어떻게 느끼는 걸까. 누군가는 슬프면 이마다 뜨끈해지면서 눈이 뻑뻑하다 하고, 또 누구는 슬프면 턱 밑에 무거운게 걸린 듯 입에서 말이 만들어지지 않느다고도 한다. 어떻든 슬픔은 일시적으로 확 치솟아오르는 것이기보다는 스르르 적셔드는 감정이다. 문제의 그 사고가 난 날, 동네 식당에서 텔레비전 뉴스로 현지 소식을 보고 있었다. 기름이 엉켜붙은 부리를 힘겹게 저으며 하늘로 고개를 치켜드는 뿔논병아리의 모습을 보는데 절로 눈물이 고였다. 이를 어찌할까. 몇 안되는 식당 손님들은 같은 기분이었는지 잠시 수저를 멈추었다. 이때 건너편 식탁에서 이 장면을 보며 밥을 먹던 어린이의 한마디에 귀가 번쩍 뜨였다. 

 

"엄마, 저 새 열라 까맣다." 

 

"저 얼마나 슬픈 일이니."

 

"에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뭘. 엄마는 저게 슬퍼?" 

 

 

2. 슬픔(sadness), 화(anger), 의분(indignation) 

 

어린이들이 좀 처럼 슬퍼하지 않는ㄷ. 어린이들은 눈물을 흘리는 대신 욕설을 한ㄷ. 눈물을 흘리면 지는 거다. 이 치열한 경쟁의 악다구니에서 패배하는 거다. 아동문학도 요즘은 슬픔을 잘 말하지 않는다. 슬픔을 ㅁ라하면 때 지난 신파같고,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 같아 마뜩잖다. 작가들은 주인공의 눈물 대신 냉소에 젖거나 의분에 찬 어린이들이 겪는 환상과 도전을 그린다. 

 

사실 어린이들의 생활에서 슬픔의 자리를 '화'가 차지한 지는 꽤 되었다. 슬픔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감정이라면 화는 밖으로 표출되는 감정이다. '슬픈 사람은 약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슬픔을 권하는 사람은 드물다. 되든 말든 일단 화를 내고 나면 "그 녀석 똥배짱이다."라는 말이라도 듣지 않는가. 얼핏 눈물이라도 비쳐서 상대에게 만만해보이는 것보다는 똥배짱이 되는 것이 나은 세상이다. 흐느끼는 어린이는 별로 없고 떼쓰고 울부짖는 어린이들로 가득하다. 약육강식이 인간의 규칙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픔은 화가 지니지 못한 힘을 갖고 있다. 자기 안으로 깊숙하게 슾퍼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할 수 있다. 슬픔은 다차원적인 공감 능력이기도 하다. 나에게 특별한 직접적 불행이나 실패가 없어도 어떤 상황에 대해서 비애를 느낄 수 있다. 가을에 찻길을 뒹구는 낙엽 한 장이 우리를 슬픔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누군가의 감정을 보면서 강렬한 비통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사람과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나도 몹시 슬퍼보 적이 있고, 그순간을 되돌아보면 지금 그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능력은 윤리적 배려로 나타난다. 슬픔을 아는 사람은 다른 이의 어려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비웃지도 않는다. 내가 르렇게 슬퍼보았는데 왜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어떻게 돕지 않을 수 있단 ㅁ라인가. 동정이나 연민이 논리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동정이나 연민을 가슴에 품지 못하는 사람의 진정성과 실천력은 떨어질 수 있다. 

 

화를 내느라 에너지를 모두 써버려서 그런지 요즘 어린이들은 책을 읽고 잘 울지 않는다. 입으로는 주인공이 불쌍하고 가엾다고 하지만 공감하기보다는 왜 불쌍한가에 대한 원인 분석에 열을 올린ㄷ. 주인고의 감정은 논평의 대상읻. 주인공이 나 같고 내가 주인공 같아서 슬프다는 아이들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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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거짓말 하는 어른, 문학동네, 2015> 

빛보다빠르게미래로달아나라 -이상,삼차각설계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