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풍경 그림자 물고기_ 송선미

달빛 풍경 그림자 물고기

 

송선미

 

  

달빛이 출렁 넘쳐서

밤하늘 밤바다가 되었어요

달빛 풍경 그림자 물고기

달빛 속에 그렁그렁 헤엄을 쳐요

 

나는 툇마루에 발을 담그고

물고기 다닌 데를 따라 짚어요

밤바람 딸랑 밤바다 찰랑

달빛 풍경 그림자 물고기

몸 바꾸어 헤엄치며 내게 오네요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 송선미, 문학동네, 2016>


#출렁이는 감각과 일렁이는 이미지가 가 닿는 곳 

1

1연에서는 밤하늘을 밤바다로 이어나가요. “달빛이 출렁”하자 밤하늘은 밤바다가 되어버리지요. 그 밤하늘에 물고기가 헤엄을 쳐요. 그냥 물고기가 아니라 풍경에 매달려 있던 물고기의 그림자가 헤엄을 치는 밤바다가 펼쳐지지요. 시인은 그 물고기의 이름을 “그림자 물고기”라고 호명하면서 시어의 이미지를 “출렁”하고 불러내지요. 

2

2연에 가서는 그림자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밤에 “발을 담그고 물고기 다닌 데를 따라 짚”는 풍경이 드러나요. 풍경이 울리는 소리 “딸랑” 들리고 밤바다의 “찰랑” 소리 듣고 있는 툇마루에 달빛은 모양을 바꾸어 “그림자 물고기”가 되어서 헤엄쳐 화자에게 옵니다. 

3

밤하늘이 밤바다로 순간 “몸을 바꾸”었을 때 밤하늘은 여태 본 적 없는 모양으로 다가와요. 여태 본 적 없는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여태 본 적 없는 달빛이 출렁이며 헤엄을 치네요. 시인은 여태 본 적 없는 달빛의 풍경을 그림자 물고기에 실어서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요. 조사를 다 지워낸 “달빛 풍경 그림자 물고기”라는 제목은 더욱더 감각적으로 다가와요.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언어감각으로 독자를 여태 본 적 없는 밤하늘을 만나게 하지요. 

 

<옷장 위 배낭을 꺼낼 만큼 키가 크면, 송선미, 문학동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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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착한 일을 할 때마다 
반짝이 스티커를 
붙여 주신다 
내 공부방 
내 이름 밑에 
반짝반짝 빛나는 
반짝이 스티커 
오십 개쯤 되면 
용돈을 올려 준다고 한다 

달님도 
착한 일을 틀림없이 
많이 했을 거다 
밤하늘에 빛나는 
반짝이 스티커 
많이도 붙어 있는 걸 보면 

 

<김철순, 사과의 길, 2014, 문학동네> 

 

 


#너와 나의 반짝이는 공동체 

1

1행의 반짝이 스티커 이미지와 2행의 별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나와 달의 처지가 순간 같아집니다. 멀고도 먼 달이 아니라 착한 일을 해야 반짝반짝 빛나는 스티커 하나씩 받는 나와 같은 처지인 셈이죠. 용돈을 올려받기 위해 착한 일이라고 불리는 일들을 하나씩 해내는 나처럼 말지요. 흔히 달은 응시의 대상이거나,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김철순의 시에서는 달의 상태와 나의 상태를 꼭 같은 상황으로 만들면서 시적 울림이 발생하는 듯 합니다. 

2

게다가 붙여 써도 좋을 행들을 행갈이 하면서 반짝반짝하는 음악성이 생기는 듯해 보이죠. 반짝반짝하는 이미지의 개연성과 선명도가 높아져서 더 감각적으로 읽히는 시. 

 

 

<김철순, 사과의 길, 2014,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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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누나 

올 

추석에 꼭 

 

<김용택, 콩 너는 죽었다, 문학동네, 2018> 


#침묵의 세 가지 방법

1

추석에 오지 않았던 누나와 시적 주체 사이에 쌓여있는 침묵 하나. 부재하는 누나를 그리워하는 시적 주체의 침묵 둘. 추석에 올지 안 올지 아직 연락이 없는 누나의 침묵 셋. 이 세 꼭지점의 침묵 속에서 "달"의 이미지는 침묵들의 레이어처럼 작동한다. 침묵들 속에서 떠오른 달은 침묵들의 모이는 공간. 그 공간의 얼굴은 누나입니다. 

 

2

멀리 떠난 누나. 작년에도 안 온 누나. 어쩌면 재작년에도 안 온 누나. 온다고 했으면서 안 온 누나에 대한 원망. 보름달 기다리듯 기다리는 누나. 달뜨듯 꼭 왔으면 하는 누나. 그리운 누나. 이 마음의 무늬들이 달에 은유 되면서 단단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3
인상적인 것은 행갈이인데요. 한 줄로도 적을 수 있는 문장들을 끊어 쓰면서 시의 화자가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누나(보고 싶어) (작년에도 안 왔잖아) 추석에 꼭(설에도 안 왔으니까) (안오면 삐뚤어 질 거야)” 같이요. 이 짧은 시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해요. 쓰여진 부분보다 쓰여지지 않은 부분이 읽혀지는 동시. 

 


<김용택, 콩 너는 죽었다, 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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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겠다

 

                          

 

개미가 줄을 졌다 

비 오겠다. 

 

바람이 스산하다 

비가 오겠다. 

 

지금쯤 울 엄마 

이랑 세겠다. 

 

콩밭 매다 말고 

남은 이랑 세겠다. 

 

새들이 낮게 난다

비 오겠다. 

 

먹구름 모여든다 

비가 오겠다. 

 

지금쯤 누야는 

염소 몰고 오겠다. 

 

하얀 염소 깜장 염소 

껄쭉껄쭉 오겠다. 

 

 

 

<류선열, 잠자리 시집보내기, 문학동네, 2015>

 


# 서술어의 선율적 서사성

 

1

겠다, 라는 서술어 하나로 시의 전반에 리듬이 생기니 소리 내 읽기 참 좋지요. 오겠다, 오겠다, 세겠다, 오겠다 하니 점점 비가 다가오는 느낌이 선명하게 들기도 하고요. 담담하게 장면들을 하나, 하나 넘기며 비 오기 직전의 풍경을 시 안에 그림 그리듯 그려놓고 있어요. 

 

2

시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비를 보여주지 않아요. “개미가 줄을 쳤다, 바람이 스산하다, 새들이 낮게 난다, 먹구름 모여든다”와 같이 비의 징조들을 나열할 뿐이죠. 징조만으로도 “남은 이랑”을 세는 엄마와 “염소 몰고”오는 누야를 떠올리고 있지요. 감정과 정서가 앞서기보다 이미지로 말을 걸어오는 듯해요. 

 

3

시를 다 읽고 하늘 올려다보듯 시를 올려다보니 마침표들이 비처럼 다 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해요. 

 

 

 

 

<류선열, 잠자리 시집보내기,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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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나는 인형을 사랑해서 

아주 많이 사랑해서 

인형이 우는 소리를 만질 수 있어. 

분홍 배 속에 가득한 

고요한 슬픔을 들을 수 있어. 

자장가를 아침까지 불러 주고 

폭신한 구름 뒤에서 

온종일 인형을 돌볼 수 있어. 

나는 인형을 잘 아니까. 

인형을 꼭 닮았으니까. 

 

 

 

-김개미, 레고나라의 여왕, 창비, 2018

 

 

 

 


 

#어느 사랑의 회로  

 

 

1

인형을 사랑하는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 너무 사랑해서 인형을 “분신”처럼 여기는 사람. 이 사람의 사랑은 3연부터 시작된다. “인형이 우는 소리를 만질 수” 있고, “분홍 배 속에 가득한 고요한 슬픔을 들을 수” 있다. 만져지지 않는 소리를 만지고, 들을 수 없는 고요한 슬픔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논리적 사유, 합리적 추론이라는 이성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사랑이란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이라고 말하며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고 말한다.

 

2

감각으로만 가닿을 수 있는 사랑이 있다. 인형과 인형을 사랑하는 사이에 존재하는 느낌의 세계 속에서 사랑은 재현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랑은 조금 이상하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공간은 공간은 “자장가를 아침까지 불러”(6연)줄 수 있는 공간. 아무도 바라볼 수 없는 “푹신한 구름 뒤”(7연)의 공간. 아낌없이 “온종일 인형을 돌볼 수 있”(8연)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어딘가 은밀하고 부드러우면서 폐쇄적으로 보인다.// 단 둘만의 공간에서 중얼거리듯 읆조리는 말은 어딘가 섬뜩하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잘 알아. 너는 나를 꼭 닮았으니까.

 

3

이 작품의 마지막 연에 도착했을 때 이 사랑의 방향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이 사랑은 인형이라는 타자(대상)를 향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인형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적 ‘자아’(ego)를 향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또 다른 자아’(alter ego)를 향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자신과 무한히 닮아있는 “비인청적 분신(double impersonnel)”으로 작품 안에 등장한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무서운 말이 가능한 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가둔 “분신”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 이 작품은 우리시대의 사랑에 관한 동시적 스케치처럼 보인다. 이 자폐적 사랑이 요즘 유행이다. 

 

 

<김개미, 레고나라의 여왕, 창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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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市民)들이 시 쓰는 시민(詩民)이 됐으면 좋겠다” 황현산/진은영/ 박수연 대담

“시민(市民)들이 시 쓰는 시민(詩民)이 됐으면 좋겠다”

제922호
 
2012.07.30
등록 : 2012-07-30 19:08 수정 : 2012-09-03 18:25

시는 어떻게 정치적일 수 있는가. 2009년 용산참사 이후 한국의 젊은 시인들은 줄곧 이 지난한 화두와 씨름해왔다. 반세기 전 한 시인은 “모든 전위문학은 본질적으로 불온하다”(김수영)고 선언한 바 있지만, 이들의 탐색은 문학적 전위의 관심사였던 미학적 언어 실험에 머무르지 않는다. 선언문을 쓰고 성명을 내고, 첨예한 정치적 갈등 현장인 용산과 한진과 제주 강정으로 달려가 시민과 나란히 어깨를 겯는다. 이들이 갈구하는 시는 ‘직접적으로 정치적이면서 첨예하게 미학적인’ 시다. 7월24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21> 대회의실에서 문학평론가 황현산과 박수연, 시인 진은영이 만나 ‘시와 정치의 만남’과 ‘2000년대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주제로 고민을 나눴다.

참석자: 황현산(문학평론가·고려대 명예교수), 박수연(문학평론가·충남대 교수), 진은영(시인·이화여대 HK연구교수)

문학평론가 황현산과 시인 진은영, 평론가 박수연(왼쪽부터)이 7월24일 <한겨레21> 회의실에서 시와 정치를 주제로 좌담을 나누고 있다. 한겨레21 탁기형

황현산(이하 황) : 한국문학이 ‘문학과 정치’라는 주제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난 적이 있을까. 일제 강점기는 물론, 해방공간에서도 정치가 문학을 압도했다. 4·19 혁명 전후해선 문학의 정치참여가 활발했고, 군사정권이 출현한 뒤 독재에 저항해 누구보다 끈질기게 싸운 것이 문학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문학은 그 어느나라 문학보다 정치 훈련을 많이 쌓았다. 하지만 1990년대를 거치며 문학과 정치가 관계맺는 양상은 변했다. 명목상 민주화가 되고,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진 탓도 있겠지만, 문학의 정치 참여 자체가 피곤해진 측면도 있다. 최근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문학과 정치의 문제를 지금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시가 어떻게 정치를 다루느냐가 아니라, 시가 어떻게 근본적으로 정치적일 수 있는지를 묻게 된 것인데, 이렇게 질문 방식을 바꾸게 된 데는 1970~80년대의 정치적 훈련이 밑거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박수연(이하 박) : 1970~80년대는 독재와 외세의 이중적 억압 아래서 사회적 삶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억눌려있었다. 분단과 외세의 규정력이 강하게 작용했고, 산업화와 함께 첨예해진 계급 갈등이 70년대 억압기를 거쳐 80년대에 이르자 사회의 표면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민중문학과 노동문학이 힘을 얻으면서 동시대의 거의 모든 문학을 정치적 문학으로 만들었는데, 당시의 문학이 주력한 것은 계급과 분단 같은 시대의 문제를 작품의 소재나 주제 차원에서 예각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구권 몰락과 의사(擬似)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문학의 존재 방식이 변했다. 주제나 소재의 영역에서 정치적인 것의 입지가 급격히 협소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문학에서 정치적 요인을 강조하는 일은 이제 거리낌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게 70~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영향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고려할 것이 있다면, 그 정치적 문학의 형식이 한국적 특이성을 얼마나 실현하고 있느냐다.

황 : 시만 보더라도, 1970~80년대의 시대 상황은 소재 자체를 다양화시켰다. 종래의 서정시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현실의 깊은 곳, 거친 곳까지도 시를 통해 미학화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이점에서 70~80년대는 시의 역사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시대였다. 이 경험을 딛고 2000년대 젊은 세대들의 ‘문학의 정치’가 시작됐다고 본다. 2008년 계간 <창작과비평>에 시와 정치에 관한 글을 기고하면서 논의의 발화점을 제공한 게 진은영 시인이다.

진은영(이하 진) : 황 선생님의 진단은 내 경험과도 부합한다. 1980년대 후반 대학에 들어와 경험한 정치적 활동의 기억이 최근 고민의 바탕이 되었다. 2000년 등단한 뒤 그 시절의 고민을 문학적으로 계속 이어가는 일은 내 작품의 성향상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의 고민들이 격렬하게 신체를 찔러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대학 시절 이래 줄곧 가져온 정치적 고민을, 등단 이후 10년 가까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시기를 거치면서 다소 여유있게 벼려온 미적 감수성 속에서 어떻게 녹여낼 것인지를 모색하게 되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동료 시인들과 비평가들이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시와 정치가 담론적으로 이슈화됐던 것 같다.

 : 앞선 세대로서, 용산 참사 이후 젊은 시인들이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고 거기에 글들을 올리면서 뜻을 결집하고, 그 과정에서 6·9선언(편집자 설명 삽입)이 나오고. 진 시인도 그 과정에 상당히 깊숙이 관여했던 것으로 안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우리 세대가 보기에도 놀라웠다. 전통적으로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던 리얼리즘 진영이 아닌 쪽에서 그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점, 주축이 소설가가 아니라 시 쓰는 사람, 그것도 전혀 정치적일 것 같지 않은 젊은 시인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 복잡하고 부담스런 과정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 자체로 충격적인 사건이었기에, 다양한 정치의식을 가진 젊은 작가들이 작가선언이란 형식으로 모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첨예한 이슈였던 용산참사나 보수언론 비판 등의 문제에 관여할 것인지를 두고 내부 논란도 있었다. 말하자면 어떤 주저함 속에서 그 곳, 용산까지 갔던 것이다.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나 정치적 확신도 없이. 그런데 거기서 현실을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되자, 예술가의 속성상 그것을 산문으로든 시로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황 : 나이 든 우리 세대가 보기에도 놀라웠다. 전통적으로 정치 참여에 적극적이던 리얼리즘 진영이 아닌 쪽에서 그 움직임이 시작됐다는 점, 주축이 소설가가 아니라 시 쓰는 사람, 그것도 작품의 경향으로 미뤄 전혀 정치적일 것 같지 않은 젊은 시인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앞선 2008년 겨울, 진 시인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와 미학에 관한 입론에 바탕해 2000년대 한국시의 정치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글을 계간 <창작과비평>에 썼는데, 그 글에서 논한 시의 내재적 정치성이란 게 실제 문학 현장에선 어떻게 경험됐는지도 궁금하다.

“시가 정치적으로 말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가”

 : 2009년 작가선언 이후 용산과 두리반, 명동 마리 같은 공간에 결합하면서, 그 동안 내가 문학적 엄숙주의를 갖고서 문학과 정치의 문제를 사고했던 건 아닌지를 반성하게 됐다. 창비에 글을 쓰던 당시에도, 시를 발표하는 지면에 얼마나 정치적인 내용을 미학적으로 탁월하고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고민하고 있었다. 소박한 활동이긴 했지만 그런 정치적 활동에서 깨달은 건, 시의 정치성은 시를 짓고 낭송하는 행위가 어떤 공간과 결합하고 그 안에서 그 공간의 성격을 어떻게 바꿔나가는지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는 사실이었다. 두리반 모임에서도 작가들은 정치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많이 낭송하지는 않았다. 강제 철거가 예정된, 들어가면 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그 공간에서 작가들이 시를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활동이었다. 아늑한 카페에서나 읽혀질 법한 아름다운 텍스트를 어둡고 칙칙한 철거공간에서 낭송하면서, 한 단어가 그것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규정된 곳에 불려나갔을 때 만들어지는 문학적이고 정치적인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황 : 내 경험에 바탕해 얘기하자면, 한국에서 문학의 정치 참여가 적극적 양상을 띄게 된 건 박정희 시대부터다. 그 즈음 창비 같은 계간지를 통해 문학의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아쉬웠던 건 그 과정에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극단으로 대립시키고 리얼리즘 문학의 정치성을 지나치게 특권화하면서, 모더니즘을 위시한 문학 일반이 갖는 정치적 힘의 상당부분을 망실시켜 버린 측면이 있었다는 거다. 이런 점에서 2000년대에 들어 시와 정치를 다시 접속시키려는 움직임이 태동한 것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대립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노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그 문제는 한국 문학사 안에서 좀더 면밀하게 검토될 필요가 있다. 내가 볼 때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에 대한 대립적 인식은 나름대로 이해될 만한 구석이 있다. 리얼리즘의 급진적 분파들이 시대 상황 속에서 억압되다보니, 다른 문학 사조들이 더 많은 사회적 발언권을 획득했던 거다. 일례로 1930년대에 활약했던 모더니스트들이 해방공간이 열리면서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데, 어느순간 일시적으로 정치적 억압이 사라지니 식민지 시절 언어의 영역에 집중됐던 문학적 에너지가 정치 영역에서 폭발적으로 분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자신의 문학적 바운더리를 정치 영역으로 확장하려 했던 작가들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을 결합시키는 방식을 취하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사실 리얼리즘을 발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면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회통(會通)’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1990년대부터 있었다.·그게 담론상으로만 진행되다가 2000년대 시인들에 의해 실행의 차원으로 접어든 것인데, 문제는 그 실행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이뤄지느냐다.

 : 2009년을 전후해 주변에서 정치적 이슈에 대해선 쓰지 말라는 조언이 있었다. 작품에 정치적인 것을 들여올 경우 언어 실험이 태만해지고, 이전의 미학적 성과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나는 시인은 무엇이든 다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자연에 대한 감각은 노래할 수 있는데, 왜 억압이나 분단 현실, 철거현장에서 느낀 것을 시로 쓰면 미학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미리 결론을 내버리는 것일까. 물론 시인은 언어 실험을 중단해선 안 된다. 그런데 그 실험을 반드시 계간지 지면에서만 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나는 진보신당을 지지한다. 정치적 발언을 하고 싶으면 거기 가서 하면 된다. 그런데 굳이 다시 문학의 장에서 정치적 문제를 고민하게 된 건, 나를 비롯해 미학적 아방가르드를 추구해온 젊은 작가들에게 일종의 자기쇄신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선언문의 형식으로 초현실주의의 자기순응에 대해 내적 비판을 가했듯이 말이다. 지난 10년간 많은 미학적 실험이 감행되었고, 문학이 특정 사태에 개입해 누군가를 교화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그런 순간에 정치적 현실이 10년 이전으로 퇴행했으니 현실에 반응하는 시인의 미학적·정치적 태도도 다시 새롭게 모색돼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 진 시인의 글이 ‘정치적인 시를 첨예하게 미학적으로 쓰고 싶은데 왜 안 될까’라는 서두의 문제 제기에 응답하면서 내린 결론이 ‘삶-정치가 변하지 않는 한 시도 변할 수 없다’는 요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후 비평가들이 개입하면서 논의가 이상하게 흘러갔다. ‘그건 안 되는 거야. 문학의 정치는 문학의 독자성 안에서만 펼쳐질 수 있는거야. (진은영이 인용한) 랑시에르의 얘기도 마찬가지일걸?’ 하면서. 그런 점 때문에 진 시인은 2000년대 시인들과 다른 위치에 있음에도, 부당하게 그들과 함께 묶여 손해본 측면도 있었던 거 같다.

 : 손해라고 절대 생각 안 한다(웃음). 미학적 감수성이 비슷하고 친근감도 많이 느끼는 만큼, 그 친구들과 기꺼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간혹 당황스러웠던 건, 20세기초의 미학적 아방가르드와 초현실주의를 예찬하면서도 미학적 실험에 충실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정치 활동으로부터는 거리를 두겠다는 몇몇 이들의 입장이었다. 사실 서구 예술사에서 초현실주의만큼 정치와 삶의 영역에 적극 개입했던 집단이 어디 있었겠는가.

황 : 이 문제는 어디까지가 정치냐 하는 물음과 함께 가야 한다. 70~80년대 민주화 투쟁, 이건 전쟁이었다. 하루하루 전황을 발표하고, 작전지침 내리고, 싸움터 나가는 전사들 사기 북돋고. 이런 시절을 우리 세대는 통과해온 것이다. 당시 정치적 시는 눈앞의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정치시를 요구한다면 어디까지가 정치인지, 시가 정치적으로 말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인지가 늘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 언어적 성찰을 강조하더라도, 시의 정치를 논할 때는 정치의 본질과 정치적인 것의 범위, 경계까지도 함께 성찰해야 한다는 얘기다.

 : 70~80년대 정치가 전쟁이었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시인 황지우의 말처럼 단순해서 행복했던 시대였다. 전쟁에선 적이 명확하고, 도달해야할 목표도 분명하니까.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정치의 존재 방식이 변했다. 정치적인 것은 도처에 편재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정치와 문학의 관계를 논하는 게 점점 복잡해진다. 시인들의 언어 실험이 중요한 의미를 획득한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의 폭을 다시 좁혀 놓았다. 그러니 이전처럼‘이것도 정치, 저것도 정치’라는 방식으로 대응하기보다, 문학도 싸움의 폭과 대상을 좁힐 필요가 있다. 4대강 문제를 보자. 환경단체들이 말하는 녹색과 아름다운 삶을 MB도 똑같이 얘기한다. 차이는 담론의 언어와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있다. 이런 점에서 젊은 시인들의 고민도 달라져야 한다. 언어의 형식보다 내용에 깊이 천착해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정치적인 시는 소재 차원에서부터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황 : 전쟁시대의 언어는 충격적이어야 효과를 갖는다. ‘도종환 시 파동’을 계기로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두루 살펴볼 기회를 가졌는데, 교과서의 시 중에는 충격에서 해방시키거나 치료하는 게 아니라, 더 먹먹한 상태로 만들어버리는 것들이 많았다. 난 이게 최근의 문화 현상과도 관련이 깊다고 본다. 요즘의 문화는 섬세하게 바라보고, 작은 것에서 감동을 느끼게 하는 문화가 아니다. TV 연속극을 봐도 재벌을 등장시키지 않고선 얘기를 못 끌고 나간다. 이런 점에서 우리 시대만큼 삶을 미적 대상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시대는 없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충격적인 방식으로만 미를 드러내려 했던 것의 결과라고 본다. 2000년대 젊은 시인들의 언어 운동도 비슷한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어들 사이에 끊임없이 충격장치를 집어넣는다. 그 장치를 얼마나 치밀하고 세심하게 집어넣느냐로 문학적 역량을 평가받겠다는 듯.

진 : 깊이 공감한다. 요즘 시가 특정 방식의 실험에만 매몰되는 데는, 삶이 지나치게 천편일률화되어 가는 탓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 학교와 집 사이만 오가고, 시를 써서 발표하고, 때가 되면 시집으로 묶고. 한동안 다른 삶이 없었다. 그런 삶 속에서 실험되는 내 시가 존재의 총체성을 문제삼는 차원으로 나가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이 건조한 ‘시민적 삶’의 틀을 넘어서야 하는데, 그러려면 다양한 활동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좋은 시들, 황현산 선생님이 말씀하신 삶을 예각화하는 섬세한 작품들이 나온다. 시의 정치라는 것 역시 ‘내용의 충격성이냐, 형식의 혁신이냐’의 이분법을 넘어서려면, 시인 스스로 ‘시민적 삶’과 ‘시인적 삶’ 사이의 경계 너머로 과감히 도약할 수 있어야 한다.

황 : 사실 난 정치적이지 않은 시인을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그러나 시인들한테는 시를 쓸 때 정치 이야기는 되도록 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시시하게 쓰지 말고, 다른 방식으로 쓰라고. 그런데 독재를 반성 않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될 지도 모를 긴박한 상황, 쌍용차와 강정에서 저렇게 힘겹게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앉아있는 시인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난다. 시는 어떻게 쓰든, 이런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는 자기 입장 밝히고, 정치적으로 발언해야 하는 것 아닌가.

 : 상황이 변한만큼, 넓은 의미의 정치보다 좁은 의미의 정치에 천착해야 하지 않겠냐는 박 선생님 말씀에 대해선 생각을 달리한다. 지금은 불행이나 고통을 증언하고 전달하는 방식이 다양해졌다. 70~80년대처럼 침묵하는 언론을 대신해 문학이, 시인이, 가장 선도적으로 말해야 하는 시대는 아니다. 그렇다면 불행이나 고통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 표현해야 한다. 그 ‘잘’에 대한 고민이 보다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은영 시인
“아늑한 카페에서나 읽힐 법한 아름다운 텍스트를 어둡고 칙칙한 철거 공간에서 낭송하며, 한 단어가 그것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규정된 곳에 불려나갔을 때 만들어지는 문학적이고 정치적인 효과를 실감할 수 있었다.”

-진은영 시인

두리반에서 서정시를 읽으며 깨달은 효과

 : 그 ‘잘’이라는 걸 언어 실험의 차원에서만 고민하는 것 같아 걱정스러운 거다. 지금은 ‘새로움’이란 말 자체가 새롭게 사고되어야 하는 때다. 세계문학사의 차원에서 본다면, 새로움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된 것도 벌써 100년이 넘었다. 새로움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낡은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1~2년도 안 돼 신형 휴대폰을 구매하게 만들 듯,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 것을 추구하도록 강박한다. 이때의 새로움이란 물건의 쓰임새나 내용이 아닌 상품 형식의 새로움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문제를 극복하려면 새로움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시인들이 새로움을 추구할 때도 마찬가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 전형적인 것을 이미 존재하는 다른 것과 다른 방식으로 결합할 때도 새로움이 나올 수 있다. 철거 예정지인 두리반에서 시를 읽는 것을 생각해보자. 그곳에서 선동적인 시를 읽는 것은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것이 무가치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엄중한 공간에서 담소를 나누고 서정시도 읽었다. 그 공간에서 한번도 시도되지 않은 행위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그것은 새로움이었고, 금지된 공간을 더 많은 사람들로 붐비게 하면서 특정한 정치적 효과를 만들었다.

 : 그 새로움을 (특정 공간에서 특정한 시를 읽는 방식이 아니라) 시 자체로 드러내는 건 어려운가. 물론 진 시인의 시 중에는 성공적인 정치시가 있다.

 : 나 역시 특정한 시민적 삶에 매여 있다. 현안이 있는 곳에서 피케팅하고 시 한편 낭송하는 시간을 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 협소한 체험 안에선 아무리 시를 써도 책상 앞에서 하는 언어실험밖에 안 된다. 그 삶의 틀을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다른 감각적 자극을 받아야 한다. 우연한 기회에 제안을 받고, 나가서 보고 느끼고, 그러면서 새로운 언어의 시가 써진다. 책상에서 정치시 쓰겠다고 하면 안 나온다. 많은 분들이 담론으로만 논하지 말고, 정치시를 써서 ‘얼른’ 보여 달라고 한다. 작가로서 부담이 크다. 감각이 안 따라오니까. 물론 70~80년대 선배들 하던 대로 쓰면 된다. 정치시의 공식이란 게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 역시 그 시절만큼 급박하긴 하지만, 작가들이 가장 노골적으로 표현해야만 했던 그때만큼 문학의 선도성에 대한 요구가 급박한 것은 아니다. 그런 선도성은 인터넷 언론, SNS가 이미 하고 있다.

 : 70~80년대 현장시를 젊은 시인들한테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런 시가 쓰여질 시대도 아니다. 흔히들 정치적인 시는 의미론적으로 가독성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정치시도 가능할 것이다. 현실의 소재를 활용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시. 말하자면 애매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시가 쓰여질 순 없는 걸까?

황 : 발터 베냐민이 말하는 알레고리가 그런 시의 방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시는 어떤 것이든 과거의 까마득한 기억과 미래에 대한 꿈, 소망을 담기 마련이다. 서정시든 정치시든 막론하고. 그런데 시란 어찌보면 실패의 장르다. 중요한 건 실패하면서도 계속해서 전진하게 만드는 힘 또한 그런 시의 속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지금 자본주의를 이겨낼 힘은 무엇에게도 없다. 뭐든지 만들어내면 자본주의가 다 상품화해버리니까. 자신에 대한 저주와 싸움까지도 모조리. 그럼에도 어떻게든 전진하려고 해야 한다. 2010년 김달진 문학상을 받은 중국 망명시인 베이다오가 이런 말을 하더라. ‘전 세계 사람들이 헐리우드 영화와 일본 만화, 한국 드라마를 보고 산다. 모든 게 자본주의화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우리에겐 시가 있으니까.’ 듣고 보니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엔 시의 바깥으로 나와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젊은 시인들을 보면, 시의 행로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박수연 문학평론가
“1970~80년대 현장시를 젊은 시인들한테 요구하는 게 아니다. 현실의 소재를 활용하며 다양한 정치적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드는 시. 말하자면 애매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시가 쓰일 순 없는 걸까?”

-박수연 문학평론가

“비시민적 삶을 안을 때 진정한 시민성 드러나”

 : 젊은 시인들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생각한 건, 시인과 시민에게 구분되는 역할이 존재하냐는 거다. 개인적으론 구분되지 않으면 좋겠는데.

황 : ‘사람 못 되면 중 된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종종 ‘사람 못되면 시인 된다’는 말로 바꿔 얘기하곤 한다. 시민에겐 고유한 의무가 있다. 시인은 이 의무에 적응 못하고 늘 이의를 제기하는 측면이 있다. 동시에 시인은 시민의 권리와 행복을 위해 앞장서 근본적으로 발언하려 한다는 점에서 가장 적극적인 시민이기도 하다. 나는 시인의 경험을 가진 시민의 발언이 중요하다고 본다. 시가 정치 일변도로 나갈 경우 잃어버릴 부분이 너무 크다. 시적인 것이 없는 시인의 발언이란 게 무슨 힘을 갖겠는가. 시인이 말할 때 사람들이 귀기울일 수 있게 하는 힘을 시 속에서 확보하고, 삶의 여러 부분과 직접 닿아있는 구체적인 말로 발화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 시인과 시민의 구분을 명확히 하자는 동료들이 있다. 시인으로선 미학적 실험에 집중하고, 급진적인 정치활동을 할 땐 시민으로서 하자, 그렇게 하는 게 예술가들의 정치 참여를 한층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거다. 하지만 난 시민과 시인의 구분보다는 ‘시인과 비시인’ ‘시민과 비시민’의 변증법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이런 일은 시인이 하는 것이고, 저런 일은 시인이 해서는 안 된다는 구분. 그런데 역사상 가장 시적인 작업은 늘 비시적 것들로 도약해서 그것을 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계기들을 갖고 있었다. 20세기 미학적 아방가르드의 실험이 위대했던 건, 시에서 다루면 안 된다고 여겨진 것들을 다루면서 그 경계를 과감히 넘어선 데 있다. 시민과 비시민의 구분도 마찬가지다. 용산의 철거민들 편에서 싸우고 구호 외치는 것은 기득권층의 시선에서 보면 시민적 규범에 어긋나는 비시민적 행동이다. 그러나 시민이 자기 삶의 틀을 넘어 비시민적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때, 진정한 시민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 언젠가 한 시민강연에서 진 시인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내 꿈은 모든 사람들이 시를 쓰는 거다. 모든 사람이 시를 쓰면 세상이 착해질 거다.’사람들에게 진 시인의 말을 소개하하곤 한다. ‘착해진다는 건 억압을 없애기 위해 뾰족해지는 게 아니라 그 억압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오는 결과다. 그게 시를 쓰는 과정 아니겠나.’ 나도 시민(市民)들이 시 쓰는 시민(詩民)이 됐으면 좋겠다. 시를 쓰는 일이 시민의 정치적 역할과 자연스레 합치되는 그런 사회. 그러려면 시인들이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황 : 모든 시민이 시를 쓰기는 어렵겠지만, 그들이 용산과 강정 같은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행동에 나선다면, 그 자체로 시인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아니겠나. 장시간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다.

정리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원문링크: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2604.html


(시인학교) 시인과 시민으로 살기 위하여_채효정

 

 

‘문화예술교육과 민주주의’라는 글의 주제를 받고 나니, 대학에서 하고 있는 강의 중에 <예술과 정치>라는 과목이 생각났다. 이 수업은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아름다움에 대한 도취는 어떻게 우리에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가 등과 같은 물음을 가지고 미적 감수성 및 미적 가치 판단과 정치적, 윤리적 판단과 행위의 관계를 탐구한다. 한 학기 동안 우리의 탐구는 다양한 감각들을 실험적으로 사용하면서 ‘감각, 미적 감각, 공통감각, 상상력, 창조적 행위, 예술과 기술, 순수예술과 참여예술, 예술의 공공성’ 등의 주제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예술과 정치의 공통적 기반에 놓여 있는 어떤 ‘감각하는 힘’의 의미를 서서히 알게 된다.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 활동에도 옳은 행위를 만들어내는 정치적 활동에도 모두 이 ‘미적 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보통 우리는 감각 능력은 본능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성 능력과 달리 연습하거나 몸에 새기지 않아도 자연히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성의 사용과 마찬가지로 감각의 사용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거칠고 무뎌진다. 그러면 우리는 제대로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분노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난 학기 수업 시간, 모든 과목에서 항상 잘 해왔던 한 학생이 있었다. 그는 ‘배는 왜 침몰하였는가’라는 물음 앞에 과학적, 논리적 사변적 분석을 피하고 예술적이며 정치적인 감각으로 진실에 다가가 보라는 기말시험 문제를 받고 A+을 받기 위해 필요한 그 감각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그제사 깨달았다. “슬프지가 않아요. ‘세월호’를 보면서도 저는 슬픈 일이라고 ‘생각’만 했지, 제 마음은 슬픔을 느낄 수 없었어요.” 슬픔을 느낄 수 없다고 한 학생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슬퍼할 시간이 없는 걸요. 지금 이 순간도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이렇게 오늘날 우리는 불감(不感)의 인간들이 되어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개인의 불감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통감각의 와해’라고 하는 심각한 사회, 정치적 문제를 낳는다는 것이다. 공통감각이라는 것은, 우리가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타인의 기쁨과 슬픔을 나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고, 또한 감정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함께 표출할 수 있는 감각이다. 그래서 이러한 감각 능력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역량이기도 하다. 감각할 수 없다는 것은 예술적․도덕적․정치적 감각, 즉 모든 종류의 현실감의 총체적 상실을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이 ‘기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괴물은 근대인들이 두려워 한 ‘야수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정말로 반사회적이고 반민주주의적인 인간은 오직 형식적 논리로만 사유(계산)하는 ‘기계와 같은 인간’이다. 


<예술과 정치> 수업 시간에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먹어도 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을 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 같지만, 막상 토론을 시작하면 먹을 수 있다는 의견과 먹을 수 없다는 의견이 반반이다. 더 놀라운 것은 ‘먹을 수 없다’고 하는 학생들이 딱히 휴머니스트인 것도 아니고, ‘먹을 수 있다’고 하는 쪽이 냉혈한들인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각자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대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적으로 정당화하고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토론의 말미에 이르면 우리는 사람을 먹으면 안되는 백 가지의 이유만큼 사람을 먹어도 되는 백 가지의 경우의 수와 합당한 이유를 말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 이 토론은 이 경악할 만한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에 이르러 모두가 놀라며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가 벌인 열띤 토론과 그 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 사실은 자신이 정해 놓은 어떤 입장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들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인간을 먹겠어’ 혹은 ‘나는 인간을 먹지 않겠어’라고 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일 뿐, 과학적 근거나 논리적 이유가 그것을 옳은 것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오직 한 학생이 이 토론의 함정을 벗어 나왔는데, 그는 몹시 불쾌한 얼굴로 나에게 거칠게 항의를 하였다. “정말 역겹네요. 지금 우리가 왜 그런 토론을 해야 합니까? 인간을 먹어도 되냐니, 그게 무슨 헛소리란 말입니까. 인간을 먹다니요? 제가 교수님을요? 아니면 교수님이 저를 먹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니면 조금 전에 저랑 같이 밥 먹고 온 이 친구를요? 다 사람이란 말입니다. 사람이라고요!” 


그의 말에는 논리나 과학 따위란 없었다. 그는 몹시 흥분해서 거의 짐승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옆 사람을 쳐다보게 되었고, 사람을 먹는다는 것이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비로소 사람을 먹는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역겨운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감각’이 마비된 순간, 인간의 이성적 논리는 사람을 먹어야만 하는 백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먹어도 된다는 쪽이 논쟁에서 이긴다면 어떻게 할 텐가? 과학적 근거와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인육처리법’ 같은 법안이 통과되기라도 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할 텐가? 강을 파헤치고 물길을 막아야 하는 백만 가지의 합당한 이유도, 고압 송전로와 원전건설 계획의 타당성도, 그런 식으로 ‘합리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더 이상 별도의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번쩍’ 하고 어떤 섬광이 지나갔을 뿐이다. 지금까지 해온 복잡한 설전의 과정들은 그 섬광에 의해 단칼에 정리되었다. 우리는 할 말을 잃었지만, 어쩐지 마음은 답을 얻은 듯 평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적어도 나만은 사람을 먹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결심에 이르도록, 그는 우리를 이끌었다. 우리는 논리적으로 설득된 것이 아니라 감동받았고 미적으로 압도되었다. 그는 기계처럼 계산적 사유에 몰두한 우리에게 자신의 심장을 꺼내 보여줌으로써 그것을 그만두도록 한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 있다니, 얼마나 놀랍고 반갑던지. 그는 ‘시인다운 시민’의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깊이 남았다. 하지만 그 후로 그런 사람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그런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서 태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이야기는 미적 감각 능력이 어떻게 정치적 역량과 연결되고 민주시민의 미덕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보통 민주주의는 이성과 토론으로 상징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위의 행동은 비(非)시민적인 행동이다. 토론의 질서와 규칙을 어기고 ‘깽판’을 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말의 규칙 대신 자신의 미적 감각을 믿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마치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회자인 척하며, 그토록 부조리한 질문을 마치 합당한 것인 양 합리적인 형식 속에 집어넣고 토론을 이끌어가고 있는 한 사람의 독재적 권위자임을 모두에게 폭로할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그런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성 사용의 규칙 또는 토론의 질서나 법치주의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 권위와 엘리트적 지배를 ‘온몸으로’ 거부할 수 있는 ‘힘’에서 시작된다.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생각하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가 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시민(市民)은 무엇보다도 시인(詩人)이어야 한다. 시인은 규칙을 파괴함으로써 신선한 감동을 주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시인의 감각이 없이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만들어내는 시민이 될 수 없다. 규칙을 지키는 데만 익숙한 시민은 신민(臣民)화되어갈 뿐이다.


시인이 시민이 되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고대 그리스에서 출현한 민주주의라는 대사건의 핵심이었다. 물론 그때의 시인이란 지금과 같은 좁은 의미에서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다. 호메로스가 장인(匠人)의 기예를 찬미한 헤파이스토스 찬가에서 시인과 장인은 구분이 없고, 무엇인가 만들어내는 사람은 모두 시인들(poietes)이라 불렸다. 그리스에서는 그런 장인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을 ‘민중(demos)을 위한 일(ergon)’이란 의미에서 ‘데미우르고스(demiourgos)’라 했다. 그들은 예술적 기예(techne)를 가진 노동자였다. 이들 예술-노동자들인 고대의 장인들, 농부, 어부, 석공, 목수, 제화공, 대장장이들이 고대 민주정치의 주역인 데모스의 실체이다. 그들은 시간을 내어 폴리스의 일에 참여했고, 거기서는 마치 방목지를 함께 관리할 때처럼 서로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국회의원이 되었고 장관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폴리스에서 공공업무를 볼 때 그 일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데미우르고스’라 불렀다. 이처럼 근원적으로 민주주의는 민중의 정치적 소질이며 그 자체가 곧 노동하는 민중의 문화이고 기예(techne)이다. 


그렇다면 다시금 우리는 어떻게 시인이자 시민으로 살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 해답의 단초를 저 민주정체를 만들어낸 데모스들에게서 본다. 답은 ‘노동하는 인간’이다. 노동할 때야말로 인간은 모든 감각을 다 살려내어 쓰기 때문이다.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각종 사상을 통해 노동을 천하고 열등한 일로 규정해왔고, 자본주의 경제가 노동을 소외시키고 기계적인 것으로 만들었지만, 원래 노동은 인간의 가장 전인적 활동이자 기초적인 교양교육이었다. 고대의 민주주의 역시 근대의 귀족적 공화주의자들이 해석하여 왜곡한 것과 달리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여가의 정치 활동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함께 하는 노동’이었고 거기서 출발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예술교육과 민주주의란 주제를 고민할 때도 너무 방법론적인 것에 치우치지 않았으면 한다. 학습자와 교수자 간의 소통, 평등하고 상호적인 관계와 쌍방의 배움은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그 자체가 민주주의는 아니다. 문화예술의 저변 확대나 예술의 문턱을 낮춘다고 해서 그것이 민주주의인 것도 아니다. 합리적인 토론이 민주주의인 것도 아니다. 그런 방식은 학교 거버넌스에서도 가능하고, 자유주의적 교육론 속에서도 지지받을 수 있으며, 심지어 시장에서도 환영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적인 것의 회복, 정치적인 것의 회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시장경제가 파괴한 ‘인간다운 노동’과 그것에 대한 미적 감각을 다시 창조하는 것이다. 노동을 예술적이고 정치적으로 만들고, ‘민중의 문화와 예술로서의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새로운 차원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원래 시인(장인)이었던 사람들과 그들의 노동의 세계로부터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 예술-정치적 힘은 오랫동안 머리만을 써온 사람들이 아니라 몸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아직은 남아 있을 것이기에. 


빛보다빠르게미래로달아나라 -이상,삼차각설계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