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_ 박해정

달팽이 

 

 

읍내 장이 서면 

달팽이들이 나타나지요. 

상춧잎에 달팽이가 아니라 

열무 단에 달팽이가 아니라 

장가 못 간 막내아들, 

게임 중독된 손자, 

병든 며느리로, 

걱정 한 짐 둘러멘 

달팽이지요. 

도라지 한 짐 

가지 한 짐 

호박 한 짐 

무릎 밑으로 내려놓기 위해 

끈적끈적한 눈물 머금고 

꼭두새벽부터 

부지런히 걸어온 달팽이랍니다. 

 

<넌 어느 지구에서 왔니? , 박해정, 문학동네, 2016> 

 


#지층감과 두께감 

1

할머니들을 달팽이로 비유하면서 동원한 “끈적끈적한 눈물”과 “꼭두새벽부터 부지런히 걸어온” 같은 표현들은 달팽이 비유를 두텁게 만들지요. 거기에 “도라지 한 짐/ 가지 한 짐/ 호박 한 짐”과 같이 무게감이 더해지면서 “읍내 장이 서면” 나타나는 달팽이들의 질량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듯 보여요. 이 달팽이의 질량이 “장가 못 간 막내아들/ 게임 중독된 손자/ 병든 며느리로” 구체화하면서 “끈적끈적한 눈물”의 질량도 느껴질 듯 해요. 시가 진행되면서 달팽이의 두께가 점차 두꺼워지고 있죠. 

2

“꼭두새벽부터” 걸어 나온 달팽이들이 둘러멘 걱정들이 모이는 읍내 장날에 온갖 걱정들이 모여서 북적북적한 느낌이에요. 온갖 걱정들이 걱정의 무게에 압도당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걱정을 “내려놓기 위해” 모이는 달팽이들의 난감한 넋두리들을 하나씩 듣고 있는 화자의 자리를 떠올려보게 만드는 시입니다.

 

<넌 어느 지구에서 왔니? , 박해정, 문학동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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