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사자상에 비가 오면_ 이안

돌사자상에 비가 오면 

 

 

웃는다 

돌사자가 웃는다 

콧등에 떨어진 빗방울이 윗니에 걸렸다가 

툭! 

입 속으로 떨어질 때, 

 

웃는다 

돌사자가 웃는다 

이제 9천6백7십9만 8천9백5십9번만 더 

빗방울을 받으면 

진짜 사자가 된다고 

 

엉덩이에 

1억 번 번개 주사를 맞은 다음 

바위에서 풀려난 

돌사자가 웃는다 

 

 

<이안, 글자 동물원, 문학동네, 2015> 

 


#감각의 서사성 #서사로서의 감각 

1

1연은 빗방울의 감각의 툭! 하고 느껴지는 묘사이죠. “윗니”라는 구체적인 위치가 지정되면서 공감각이 살아나요. 2연에서는 “진짜 사자가” 되고 싶은 “돌사자”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빗방울이 다 내리기를 하염없는 기다리고만 있는 사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빗방울을 받”아내야 하는 돌사자이지요. 3연에서는 이 “돌사자”의 기고한(!) 사연으로 이어집니다. 무려 “1억 번 번개 주사를 맞은” 돌사자에 과거사연이 밝혀지면서 돌사자가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살아나는 듯 해요. 

2

이런 돌사자는 웃습니다. 콧등에 떨어진 빗방울을 입속에 넣으면서도 웃고, 1억 방울까지 이제 겨우 3백2십2만 1천4십1방울 밖에 받아내지 못했는도 웃고, 1억 번의 번개 주사를 맞은 다음에도 웃습니다. 이런 돌사자가 같으니라고. 이런 돌사자는 10년 동안 매일같이 하루 18시간을 연습했다는 발레리나 강수진을 닮았고, 몇 십년을 매일 8시간 동안 글을 썼다는 헤밍웨이를 닮았습니다.  1억방울의 빗방울을 모두 받아냈을 때  돌사자가 진짜 사자가 되는거라고, 진짜 진짜 믿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안, 글자동물원, 문학동네,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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