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효과-들뢰즈의 문학론, 서동욱, 철학사상연구소

원문출처: http://philinst.snu.ac.kr/thought/27/05.pdf



Ⅰ. 들뢰즈 문학연구의 한 성격


 들뢰즈는 비철학적인 것의 중요성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강의에서 나는 얼마나 철학이…비철학적 이해, 지각들(percepts)과 정서들(affects) 을 통해 작동하는 이해를 필요로 하는지 파악했다.”1) 들뢰즈가 ‘철학’ 이라는 말을 통해 이해하는 바가 무엇이며 이 말을 통해 어떤 것들을 가리키는지 따져 묻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논의거리가 될 것이다. 여기서 밑 빠진 독 같이 연구자의 기력을 죄다 빨아들여 벌이는 이런 문제를 상대할 수는 없겠다. 욕심을 버리고 그 큰 논의덩어리에서 단지 최소한 필요한 만큼만 떼어내 이해를 구해보자면, ‘비철학적인’ 것이란, 특정 계열의 고전 철학 일반이 공유하는 “주관적이며 암묵적인 전제”2) 를 벗어나는 길을 가리킨다. 이런 비철학적인 ‘지각과 정서’가 우리가 철학을 가지고 몰두해 왔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들뢰즈 사상의 정체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왜 그가 특정한 작가들에 대해 그토록 몰두하며 이들 문학의 도움 없이는 어 째서 쩔뚝거리게 되는지 알게 해준다. 어떤 뜻에서 그런가? ‘주관적이 며 암묵적인 전제’ 없는 사유의 정체란, 이 전제에 각종 본유 관념들 및 선험적 원리들이 포함되는 한에서 ‘경험론’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리고 경험론에 남겨지는 것은 경험에 앞서는 전제들에 매개되지 않는 ‘지각과 정서’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지각과 정서만 을 가지고, 철학이 몰두했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는 길로 안내해주는가? 그들이 바로 들뢰즈가 자기 책의 수많은 페이지들을 할애 한 프루스트와 카프카 같은 예술가들이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이야기한 다. “이제 나는 진리의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표현이 아닌 표식들만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나는 말을 해석할 때도, 당황했을 때 얼굴이 벌겋 게 달아오르는 것을 해석하거나 혹은 갑작스레 밀려온 침묵을 해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접근하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 자체는 나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3) 여기서 프루스트는 ‘진리의 이성적 표현’과 ‘표식들(témoignages)’을 구별하고 표식들만을 인식의 원천으 로 삼는다. 이성적인 것과 다른 표식들이란 물론 ‘내 눈으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si j'en crois le témoignage de mes yeux)’ 같은 표현에 서 보듯, 그리고 프루스트가 예로 든 “당황했을 때 얼굴이 벌겋게 달 아오르는 것” 같은 경우에서 보듯 감성적 원천을 가지는 것이다. 이 러한 ‘감성적 원천’의 중요성을 들뢰즈는 (좀 다른 맥락에서이긴 하지 만) 카프카에게서도 역시 발견한다. 카프카의 관심을 끄는 것은 “형태 자체를 붕괴시키는 ‘표현 기계’”,4) “언어 안에 이방인처럼 존재하는 것”(K, 48), 단적으로 말해 ‘형태 없는 음성적 질료’로서, 말 그대로 ‘감성적 원천’을 가지는 것이다. “카프카의 관심을 끈 것은 순수한 음 성적 질료이다”(K, 11).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라. “그레고르는 자기의 대답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 대답 소리는 틀림없이 자 기 목소리였는데, 거기엔 저음 같기도 한 어떤 억제할 수 없는 고통 스러운 찍찍하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 찍찍거리는 소리는 하고 있 는 말을 다만 처음 순간에만 명료하게 할 뿐, 그 여운은 분명치 않아 서 상대방이 똑바로 알아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5) 그런데 비이성적인 지각과 정서를 주는 이 감성적인 것이 출현하는  특집 방식 가운데 하나가, 저 프루스트의 문장 속에서 ‘표식’이라 표현되기 도 한 ‘징후’ 또는 ‘기호(signe)’이다. 어떤 의미에서 들뢰즈에게 예술 일반이란 이 징후에 대한 연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징후 학(symptomatologie)이란 언제나 예술의 일거-리다.”6) 누가 징후학으 로서 예술의 모범을 보여주는가? 가령 프루스트이리라. “프루스트의 경우 그가 탐구한 것은 기억이 아니라 기호의 종류들이다. 그는 기호 들의 환경적 본성과 방사 방식, 질료, 체제 등을 발견해야 했다. 잃 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는 일반기호학, 세계의 징후학이다”(P, 195). 이 제 이 글을 시작하며 읽었던 저 첫 문장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알았 고 무엇을 과제로 떠맡게 되었는가 정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성 의 암묵적 전제를 고발하는 철학은, 그 전제들의 임의성을 밝혀야 하 며, 그 전제들에 매개되지 않은 정서와의 만남을 기술하는 경험론일 것이다. 그런 정서의 도래는 기호와의 마주침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기호와의 마주침이라는 것은, ‘암묵적 전제들’에 기반한 철학 일반과 경쟁하며, 철학의 오래된 문제들에 나름의 답을 내놓으려고 하는데, 그 가운데 중심이 되는 한 가지는 앞서의 프루스트의 구절(“나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이 암시하듯 ‘앎의 문제’이다. 즉 경 험을 구성하는 개념들의 출현 문제이다. 누가 이 문제에 맞닥뜨려, 본 유적, 그리고 선험적 원리들에 빚지지 않고 감성적 기원으로부터 경 험 구성적 개념의 출현을 설명하는가? 다음과 같이 경험에서 배움의 원천을 찾는 이가 그렇다. “순수 지성이 만들어 낸 관념들은 논리적 진리, 가능한 진리밖에 가지지 못한다. 이 관념들은 임의적으로 선택 된 것이다. ‘우리 지성에 의해 씌어진 문자 (caractères tracés par nous)가 아니라’ 사물의 형상이라는 문자 (caractères figurés)로 된 책 이 우리의 유일한 책이다. 우리가 만들어 낸 관념들이 논리적으로 옳 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그 관념들이 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는 것이다”(RTP, Ⅲ, 878-880). 이 구절은 지성 개념을 경험을 독해 가능하게 해주는 문법으로 내세우는 칸트의 다음 구절에 맞서고 있다. “지성의 순수 개념은 현상들을 말하자면 문자로 철자화해서 경험으로 읽을 수 있도록 하고자 사용될 뿐이다”( 형이상학 서론 , Ⅳ, 312). 지 성에 의해 쓰여진 문자가 아니라, 사물의 형상으로 쓰여진 문자, 즉 경험적 원천을 지니는 문자로부터 어떻게 앎의 문제는 해답을 얻어내 는지, 들뢰즈가 그렇듯 프루스트가 만든 길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도출된 과제와 더불어 들뢰즈의 문학론은 주제로서 필연성과 제한성을 얼마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학론이 주제로서 필연성을 얻는다는 것은, 들뢰즈가 다루는 문학이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형태, 가령 ‘서사(narration)’가 모종의 필연성을 얻는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필연성의 규명은 문학이 가질 수 있는 지위에 대한 해명이기도 하다. 우리의 탐구는 문학(더 정확히는 서사) 의 이 지위를 규명하는데서 마치게 될 것이다.



1) G. Deleuze, Pourparlers, Paris: Éd. de Minuit, 1990, 191쪽(약호 P). 이 글의 모든 인용에서 원저자의 강조는 ‘ ’로, 인용자의 강 조는 고딕체로 표기한다. [ ] 안의 말은 대체 가능한 번역어나 뜻을 잘 통하게 하기 위해 인용자가 임의로 집어넣은 것이다. 인 용은 본문 중 인용문 뒤 괄호 안에 약호 표시와 쪽수를 써 주는 방식으로 하고 ‘쪽’이라는 표기는 생략한다. 

2) G. Deleuze, Différence et Répétition, Paris: PUF, 1968, 170쪽(약호 DR).

3) M. Proust,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Paris: Gallimard(Pléiade 문고), 1954, Tome. Ⅲ, 88쪽(약호 RTP). 

4) G. Deleuze & F. Guattari, Kafka: Pour une litterature mineure, Paris: Éd. de minuit, 1975, 51쪽(약호 K). 

5) 프란츠 카프카, 단편전집: 변신 , 이주동 옮김, 솔, 1997, 112쪽. 

6) G. Deleuze, Présentation de Sacher-Masoch, Paris: Éd. de Minuit, 1967, 11쪽.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 – 김연수

날마다 글을 쓴다는 것 – 김연수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좀 비뚤어진 사람이랄 수 있다. 1994년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라는 장편소설이 작가세계 문학상에 당선되면서, 흔히 쓰는 말과는 약간 다른 의미에서 혜성과도 같이, 그러니까 눈 깜빡할 사이에 나타났다가는 그만큼 빠른 속도로 기억에서 지워질 운명이라는 것도 모르고 소설가가 됐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내 나이, 스물네 살. 그 한 해 전부터 나는 시인이었다. 한 해에 한 장르씩 등단했으니 말하자면 초고속 승진하는 재벌 3세쯤이었다고나 할까. 그리하여 어쩌다 보니 같은 시상식 자리에서 시 신인상과 소설 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처지가 됐다.


차례로 상을 받은 뒤,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에요’ 쯤에 해당할 말한 표정으로 단상에 서서 수상소감을 발표하려고 보니까 내가 책에서만 읽던 문인들이 시상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문인이라는 사실은 ‘저 놈이 무슨 말을 하는가?’하고 노려보던 그 냉소적인 표정으로 잘 알겠는데, 내가 도대체 왜 거기에 서 있어야만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이 상은 제가 받는 게 아니라 여기 앞에 계신 선배들이 받아야만 합니다”라고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 뒤에 그 흉악한 선배들이 두고두고, 그렇다면 상금을 내놓으라고 말한 걸 여기에 꼭 밝혀야겠다.


어쨌거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에라, 이렇게 된 거 나도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혀 가는 대로 말하고 나서 내려왔는데, 개중에는 축하한다고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문학상을 받았으면 축하받는 게 당연할 텐데, 이렇게 표현해야만 하는 이유가 궁금한 사람들도 있겠지. 바로 그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그 소설가도 그렇게 축하한다며 내게 손을 내민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물론 그의 소설을 읽었고, 무척이나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분과 악수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이미 등단한 보람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내게 그는 평생 잊히지 못할 충격적인 말씀을 던졌다. 그를 안 만난 지는 이제 십년도 더 넘었다. 그러니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말한 사람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들은 사람이야 그걸 어떻게 잊겠는가! 꿈에서도 못 잊을 것이다.


그날, 그 분이 내 손을 움켜쥐고 한 말은 이런 것이었다.


“시와 소설로 동시에 등단했다구요!”


뭐, 차례로 상 받는 거 보셨을 테니까. 나는 좀 시큰둥한 신인 작가였다. 하지만 내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덧붙였다.


“천재십니다!”


고아로 태어나 세상에 버림받고 사람에게 상처받아 사막과도 같은 인생을 맨몸으로 횡단하는 사람의 귀에 들리는 무슨 하느님의 부름과도 같은 그런, 청천벽력과도 같은 목소리랄까.


그 목소리에 대한 나의 반응은? ‘분명 내 소설과 시를 읽어보지 않은 게 틀림없어. 술이나 얻어 마시려고 와서는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일 뿐이겠지. 비웃는 것일지도 몰라. 아, 어쩌다가 이런 상을 받았을까. 어쩌다가 이런 사람들 틈에서, 이 꼴로... 어쩌구저쩌구, 궁시렁궁시렁...’


내가 이렇게 나의 글쓰기에 대해 비뚤어진 마음을 갖게 된 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만 할 것 같다.



때는 바야흐로 1980년대 초반. 내가 사는 김천에서는 해마다 가을이면 시민축제의 일환으로 매계 백일장이라는 게 매계 조위 선생의 유택이 있는 봉계 지역에서 열린다. 학교에서는 백일장이 열리기 전에 글짓기 대회를 개최해서 백일장에 참가할 학교 대표들을 선발한다. 그런데 그 날은 조회 시간에 들어온 선생님이 즉흥적으로 백일장에 참가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백일장에 가본 적이 없었던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서슴없이 손을 치켜들었다. 그동안 선생님들의 보수적인 문학관에 막혀 제대로 펼치지 못했던 내 실험적 문학이 드디어 빛을 발할 기회가 왔기 때문이었다고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마는, 백일장에 나가면 하루 수업을 빼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나는 손을 든 것이다. 누구보다도 빨리. 왜냐하면 인생은 타이밍이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백일장이라는 것에 참가하게 됐다. 난생처음으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대략 예측해보자면) 내 생애 마지막으로. 그 날의 글감이 무엇이었는지 아직도 내가 기억한다면 나는 진짜 천재였겠지. 글감 따위야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백일장 참가 목적이 하루 수업을 빼먹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빛의 속도로 글을 쓰고(그때나 지금이나 목적이 다른 데 있는 건 마찬가지여서 나는 초속필이다) 본격적으로 돌아다니면서 놀기 시작했다. 봉계의 조위 선생 유택 부근은 우리가 자주 소풍 가던 곳이기도 했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뛰어놀 만했다.


한창 놀다 보니 시상이 있다고 해서 다들 한 곳에 모였다. 단상에서는 낮은 상의 수상자부터 이름을 불렀다. 백일장이라는 게 학생들을 격려하는 상이다 보니 수상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나와 같이 간 학생들도 심심찮게 호명돼 앞으로 나가는 걸 보노라니 비록 첫 참가이긴 하지만, 은근히 나도 기대되는 바가 생겼다. 차하니 차상이니를 거쳐 장원을 부르기 시작했다. 내 이름이 나오면 표정을 어떻게 할까, 그런 고민을 심각하게 하기 시작하는데 결국 장원은 다른 학생에게 돌아갔다. 그 사실을 알고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이제 남은 상은 도지사가 주는 상인 대상 하나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대상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단상에서 사회자가 말했다.


“대상은...”



그 이름을 지금 내가 기억하면 정말이지 천재가 아닐 수 없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도 내가 분명히 기억하는 사실은 그날의 대상은 절대로 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하루 수업을 빼먹는다는 건 참으로 달콤한 일이다. 하지만 수업을 빼먹으면서 상까지 받을 수 있다면 더욱 달콤할 것이다. 그게 도지사 상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다음에는 열심히 갈고 닦아 반드시 대상을 타서 매년 가을이면 공식적으로 수업을 빼먹을 수 있는 그런 초등학생이 되자! 파이팅!’


그런 생각 같은 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는데, 그냥 하루 수업을 빼먹으려고 나간 것일 뿐이었는데, 돌아오는데 며칠 동안 그런 기분으로 밖을 쏘다닌 것처럼 기분이 더려웠다. 더러워진 기분은 자기만 당할 수 없다는 듯이 내 생각을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글을 못 쓰나 보다’라는 쪽으로 이끌었다. 너만 더러워지면 그만 아니냐고, 내 생각은 반발했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았다. 기분이 더러워지니까 생각도 꼬질해졌다. ‘그래, 나 같은 게 무슨 글짓기 상을 받겠어.’ 꼬질꼬질한 생각들은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모든 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백일장이 열릴 때면 반에서 먼저 글짓기를 시켰다. 글을 쓰려고 원고지를 바라보면, 칸칸이 그날의 더러워진 기분과 꼬질꼬질한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글을 쓰려고만 해도 기분이 더러워지고 생각이 꼬질꼬질해졌다. 어차피 상도 못 받잖아. 글쓰기는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무엇보다도 넌 재능이 없어. 일찌감치 딴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무엇을 쓰려고 할 때마다 기분이 더러워지고 생각이 꼬질해지는 상태로 몇 년이 지나고 나니까 인생을 선용하기 위해서라도 글 같은 걸 써서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하면 안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게다가 나도 살아야 하니까 다른 대안을 마련했다. 내게 대안이 된 건 수학이었다. 글쓰기를 못한다면 수학을 잘한다는 뜻이 아니겠냐고 혼자 마음대로 결론 내리고 수학에 취미를 붙인 것이다. 노력하면 실력은 늘게 돼 있다. 실력이 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생각은 산뜻해진다. 인간은 역시 파블로프의 개인가? 점점 나는 수학을 좋아하고 국어를 싫어하게 됐다.



인간은 파블로프의 개도 되지 못한다. 파블로프의 개는 어쨌든 종이 울리면 먹는다. 종이 울린다. 개는 먹는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설사 종이 울린대도 기분이 더러워지거나 생각이 꼬질해지면 도저히 한 입도 먹을 수 없다. 우린 개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개가 아니다. 사실은 개보다 못한 것이다, 그건. 한 심리학자가 실험을 통해 알아낸 법칙에 따르면 인간은 긍정적인 신호보다 부정적인 신호를 다섯 배는 더 강하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예컨대 ‘너는 못생겼어’라는 말을 한 번 들었다면, ‘너는 잘 생겼어’라고 다섯 번 이상 들어야만 마음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부정편향성은 우리가 우수한 인종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치자. 친구들과 나는 며칠 굶주린 채로 황무지를 헤맨 까닭에 여차하면 서로를 잡아먹을 수도 있을 판국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까 못생기고 매사에 비관적이고 비뚤어진 내가 첫 번째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은 눈치다. 해서 빨리 먹을 것을 찾아야만 한다. 바로 그 때 정말 잘생기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이고 사랑만 받고 자란, 대략 이름이 ‘쭝혀기’ 정도 되는 내 친구가 주변을 살펴보고 오더니 거기서 십 분 정도만 가면 사과와 파인애플과 포도 등을 풀코스로 따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다. 그들이 앞다퉈 가서 과일을 따 먹자고 말할 때, 내가 나선다.


“뭔가 기분이 더러워지고 있어. 우림 말고도 다들 굶주렸을 텐데, 과일이 고스란히 달려 있는 나무가 있다니 이상하지 않아? 안 그래?”


하지만 누구도 내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내 기분은 원래 자주 더러워졌다며. 다들 쫑혀기를 따라가고 나는 원시적으로 버림받아 혼자 남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길한 비명 소리를 듣는다. 쫑혀기가 찾은 과일나무 숲은 사자들의 본거지여서 누구도 감히 그 과일들을 따 먹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고스란히 남은 것이라는 사실이 결국 밝혀진다.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원시 시대에는 비관적인 사람이 낙관적인 사람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분이 자주 더러워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가만히 놔두면 비뚤어진다. 노력하지 않으면 매사에 하고자 하는 의욕이 사라지게 돼 있다. 인생이 제대로만 풀렸던 인종들은 원시 시대에 다 멸종했고, 여기는 뭘 해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인종들만 남은 곳이다. 그러니 우리는 파블로프의 개보다 못한 것이다.



우리가 원래 비관적인 정보,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아는 건 무척중요하다. 부모나 선생처럼 우리의 유년시기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는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가하는 부정적인 영향은, 그래서 너무나 결정적이다. 부정적인 영향은 긍정적인 영향의 다섯 배의 강도라는 연구 결과를 그대로 대입하자면, 잘못했다고 매를 한 대 때렸다면 다음번에 잘했을 때는 최소한 다섯 번은 잘했다고 말하며 그 학생을 안고 쓰다듬고 격려해야만 그 학생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열 대 정도 때렸다고 쳐보자. 그럼 그 학생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면 오십 번 정도는 스킨십을 해야만 할 텐데, 그러다가 잘못하면 스승과 제재가 사랑에 빠질 가능성도 있으니까 애당초 체벌을 하지 말자는 얘기다. (말이 되나?)


체벌보다 더 나쁜 건 우연히 내뱉는 심한 말들이다. 체벌이야 지금 맞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정산하기가 쉽다. 한 대에 스킨십 다섯 번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나중에 정산하기가 힘들다. 예컨대 담임에게서 “너는 돌대가리야”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 학생은 “네 머리는 정말 훌륭해”라는 말을 담임에게 다섯 번 정도는 들어야만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스킨십도 어렵겠지만, 나쁜 말 한 번에 칭찬의 말 다섯 번을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까 전국의 선생님들과 부모님은 아이들에게 심한 말을 해서 약점을 잡히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평상시에 조심스럽게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협박처럼 들립니까? 협박 맞습니다.) “넌 노래 안하는 게 좋겠다”라거나 “그림에는 소질이 하나도 없구나”라거나 “얼마나 멍청하면 이런 문제도 틀리니?”라고 말할 때마다 아이들은 예전과 조금씩 달라진다. 그 아이들을 원래대로 돌리려면 그 다섯 배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애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자신이 없다면 애당초 원하지 않는 곳에 갖다놓지 않는 게 좋겠다. 혹시 실수로 그런 말이 나왔다면, 기억하시라. 다섯 번이다. “넌 노래를 정말 잘 불러.” “어쩜 이렇게 색칠을 잘하니?” “이건 실수로 틀린 것이겠지.” 민망해도 자기 실수니까 참고 다섯 번 그렇게 말할밖에.



설사 우리의 선생님이나 부모님께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십대 내내 우리에게 부정적인 영향만을 반복적으로 끼쳤다고 해도 우리는 그 영향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부정적인 영향을 그대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는 우리가 결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람됨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영향에 맞서면서 점점 성장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휘둘려 살지 않는다는 걸 뜻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게 바로 사랑이다. 제대로 사랑한다면 그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건 자신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 칭찬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경험이다. 사랑은 우리를 원래의 아이로 되돌아가게 해주는 유람선 같은 것이다. 사랑 안에서 우리는 원래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다. 제대로 사랑했다면 dsus 시절의 부정적인 영향은 거의 대부분 치유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힘든 유년을 보낸 사람들도 사랑에 빠진 뒤에는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 게 아니겠는가.


하지만 진짜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그건 자기 자신에게 있다. 체벌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우리에게 가장 적은 영향을 끼친다. 가까운 어른들의 부정적인 말들은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어쨌거나 나중에는 극복이 가능하다. 문제는 완전한 나의 무의식 속에 있다.



다시 198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자면, 백일장에서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 뒤로 나는 내게 글 쓰는 재능이 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일이 없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재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상을 못 받았다는 부정적 정보가 한 번 내게 들어왔다면, 자잘한 성취(예컨대 다섯 번 정도 글을 써서 칭찬을 받는다던가)를 통해 나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다. 백일장에서 상을 못 받았다는 게 재능이 없다는 걸 뜻하는 건 전혀 아니다. 그건 어쩌면 내가 제출한 원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심사에 지친 심사위원이 반 정도 분량만 읽고는 수상자를 뽑은 것일 수도 있다. 그건 다섯 번의 긍정적인 반응을 받으면 벗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소질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나는 십대 시절 내내 글을 쓸 기회가 생기면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백일장에 나가서 상 한 번 타본 적이 없었고, 내게 글 쓰는 소질이 없고, 써봐야 시간 낭비에 불과하고...” 그건 이렇게 상상하면 된다.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체벌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게 남의 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십대 시절 내내 글쓰기에 관한 한 스스로 학대하는 일을 반복했다는 걸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섯 배의 법칙에 따라 그 시절 내가 자신에게 한 그런 부정적인 말들의 영향을 없애려면 얼마나 많은 칭찬을 들어야만 할까?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최고의 작품만을 써서 모든 사람들이 칭송해 마지않는다고 해도 나는 계속 목이 마를 것만 같다. (독자들은 오직 칭찬만 하라!) 이 모든 게 단 한 번 백일장에 나가서 빈손으로 돌아온 것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면, 백일장 심사 같은 걸 보는 건 애당초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몇 번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고 난 뒤에 나는 자신에게 생긴 부정적인 일들을 ‘재능이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십대 시절의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소설창작 시간에 관례대로 합평이란 걸 한 적이 있었다. 칭찬을 오천 번 정도는 받아도 원래의 밝고 창의적인 아이 때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말까 한 이십대 초반의 학생들이 교실에 모여서는 서로 다른 학생이 쓴 소설이 얼마나 후진지에 대해서 앞다퉈 얘기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던지는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말들을 듣는 학생들마저도 자신이 어떤 공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 학생들은 아마도 글 쓰는 게 너무나 좋아서 문예창작과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사 년 동안 그들이 듣는 이야기는 글을 얼마나 못 쓰는지에 대한 비판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고 원래 입학할 때의 자신으로 돌아가려면 다섯 배의 긍정적인 영향이 필요하다. 친구나 교수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이 쓰는 글이 너무나 좋다는 말을 들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 졸업할 무렵이 되면 그들이 쓰는 글은 정말 형편없어진다. 이런 흐름에 대한 그들 나름의 변명이 바로 ‘내겐 재능이 없다’는 말이다.


일단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나면 더 이상 글을 쓰는 일이 지속되기 어렵다. 더구나 그게 소설이나 시라면 더욱 어렵다. 내가 아는 한, 그 어떤 작가나 시인도 개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듯이 글을 쓰지는 않는다. 소설 쓰는 일을 그만 둘까 하고 혼자 고민하던 이십대 후반에 내게 크게 위안이 됐던 건 "소설 쓴 지 삼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힘들다" 던 박완서 선생의 말씀이었다. 거기 차이가 있다면 힘들다 하더라도 결국 쓰는 사람이 있고, 못 쓰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쓰지 못한다.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 그 비밀은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을 때 자기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학에서 만난 학생 중에는 화면의 커서를 볼 때마다 재능이 고갈되어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한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이건 이런 상황이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고 그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누군가가 이제 막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넌 재능이 완전히 고갈됐기 때문에 단 한 문장도 쓸 수 없을 거야.”



그런 말을 듣고 단 한 글자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사람이 정말 나와 가까운 사람이고 그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그에게 간곡하게 부탁할 것이다.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를 저주하는 사람이라고. 말하자면 그 학생에게는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셈이다.


아무리 넘쳐나는 재능이라도 그런 말 앞에서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글을 쓸 때마다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몇 번 정도는 괴롭더라도 글을 쓰기는 하겠지만, 결국에는 글을 쓰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만 하는 사람,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게서 듣는 저주의 말들은 실제로 실현된다. 그리하여 이제 글을 쓰지 않게 되면 거기 원래 재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신에 그의 삶은 좀 비참해진다.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누가 대신해서 사랑해줄까? 그러니까 “넌 정말 괜찮은 애야!”라고 위로해도 “그렇지 않아! 난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어!”라고 반발하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이십대 후반, 나는 원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하며 이젠 소설 같은 건 그만 쓰겠다고 떠들고 다니던 내 모습이기도 하겠다.



내가 다시 소설을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삼 년 정도 직장 생활을 한 뒤였다. 그 삼 년 동안 여러 잡지사를 다녔는데, 일이 일이다 보니까 썼다가 지웠다가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매주 최소한 100매씩은 써야만 했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게 좋은 점은 거기에는 무슨 재능 같은 게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체력만 있으면. 그게 없다면 끈기라도 있으면 됐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마감은 하고 죽어야만 했으니까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앉아서는 내게 글 쓰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따져볼 겨를은 없었다. 잡지사에 다니면서 나는 매일 다양한 종류의 원고를 썼다. 내 이름을 걸고 쓴 원고도 있었고, 익명이나 가명으로 쓴 원고도 있었다.


선배 기자들 중에서는 소설 쓸 때의 나처럼 정말 쓰기 싫다고, 나는 재능이 없는 모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소설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고통 없이 글을 썼다. 주제와 형식이 제시되면 바로 썼다. 어차피 소설도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써서 편집자에게 보여주면 편집장이 문장을 손봤다. 처음에는 내가 얼마나 글을 못 쓰는지 지적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손본 문장을 보는 일이 괴로웠지만 편집이라는 객관적 기준이 존재한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러자 놀랍게도 고통이 말끔히 사라졌다. 쓰고 지적받고 다시 썼다. 또 쓰고 지적받고 다시 쓰고. 몇 달이 지나자 문장과 구성은 편집이라는 기준에 따라 조금씩 좋아졌다. 그건 내가 최초로 경험한,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는 세계였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잘할 수 있다면, 나를 둘러싼 세계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칭찬하지만,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스스로 마음에 들게 된다. 여전히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책상에 앉으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가 어떤 글을 쓸 것인지 기대된다. 잘 쓸 수도 있고 못 쓸 수도 있지만, 어쨌든 글을 쓸 수는 있다. 잘 썼다면 다들 잘 썼다고 말할 것이고, 못 썼다면 편집장이 빨간 펜으로 여기저기 지적해서 돌려줄 것이다. 그때는 다시 쓰면 된다. 다시 쓰면 좀 더 좋아진다. 어제보다 오늘 좀 더 잘하는 세계로 들어오면 모든 일들이 이처럼 명료해진다.


하지만 명료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글을 쓰려고 할 때 이제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뭔가 잔인한 고통의 말들을 스스로 내뱉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자신에게 그 말들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그 삶은 구원에 가까울 정도로 달라진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다른 사람들 때문이다. 그냥 그렇게 믿어버리자.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없다고 해도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잔인한 고통의 말들을 은연중에 퍼붓는다면.



나는 소설로도 그런 일들이 가능한지 실험해보고 싶었다. 해서 2002년 ‘월드컵 전 경기를 관람하고 싶어서’라는 핑계를 대고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됐다, 경제적 어려움? 많았다. 나는 이것저것 수없이 많은 일들을 해야만 했다. 산문을 쓰고 번역을 했다. 아무리 일해도 회사에 다닐 때에 비하면 수입은 너무나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소설을 쓰고 싶었다. 매일 소설을 써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소설가가 될 수 있는지 따져보고 싶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소설이야 대단할지 안 대단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인생만은 괜찮아질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매일 소설만을 썼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매일 뭔가 쓰기는 썼다. 물론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끝나는 날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날에도 나는 고민에 대해서 썼다.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를 고민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젠가 어떤 기자와 기나긴 인터뷰를 끝내고 난 뒤에 함께 택시를 타고 이동하다가 이런 질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블록(Block, 작가에게 찾아오는 고갈상태)을 느낀 적은 없나요?”


생각해보니 글을 형편없이 쓴 적은 있었지만 그런 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없다고 대답했다.


“정말 글을 쓰기 시작해서 단 한 번도 블록이 안 찾아왔다는 말인가요?”


그 기자가 말했다.


사실이었다. 날마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뒤로는 형편없는 글이라도 나는 썼다. 하지만 그 형편없는 글을 발표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출판이 임박하면 죽자고 그 글을 고쳐야만 했지만, 형편없는 글을 쓰는 건 특정한 시기 나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지, 그 기자가 말하는 블록은 아닌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블록이라는 게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 재능이라는 게 뭔지 잘 몰랐듯이.



그렇게 해서 지난 팔 년 동안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썼다. 그 결과, 몇 권의 책이 출판됐다. 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그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지난 팔 년 사이에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돼갔다는 점이다. 눈치 채지도 못할 만큼, 아주 서서히, 하지만 지나고 보니 너무도 분명하게. 소설가로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는 좀 더 나은 인간이 됐다. 그건 전적으로 매일의 글쓰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날마다 글을 쓰면서 나는 자신을 비난하는 일을 그만두고 가장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일을 매일 연습한 셈이니까. 그 연습의 결과, 나에 대해, 나의 꿈에 대해, 나의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던 습관이 사라졌다. 그러자 모든 게 달라졌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매일 쓴다고 해서 반드시 글을 잘 쓰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된다는 사실만은 장담할 수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에게 말하고, 그건 생각으로 들리고, 눈으로 읽힌다. 날마다 우리가 쓰는 글은 곧 우리가 듣는 말이며 우리가 읽는 책이며 우리가 하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쓰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읽으며,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걸 결정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잔인한 고통의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하겠다고 결정하지 말기를. 그런 건 지금까지 우리가 들었던 부주의한 비판들과 스스로 가능성을 봉쇄한 근거 없는 두려움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뭔가 선택해야만 한다면, 미래를 선택하기를.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본 뒤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말들을 쓰고, 듣고, 읽고, 생각할 수 있기를. 그러므로 날마다 글을 쓴다는 건 자신이 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모습은 달라진다.



“넌 소질이 없어”라는 말을 듣기 전에 우리는 모두 아이들이었다. 늘 밝게 웃으며 호기심에 가득 차 재미있는 일만을 찾아다니며 다른 이들의 평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두려움 없이 원하는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바로 아이들이다. 소질이 없다는 말을 듣기 전에 우리는 소질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매일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했다. 재능이란 지치지 않고 날마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게 아닐까? 평생 그런 재능을 발휘하고 산다면, 우리는 그를 천재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므로 쓰라. 재능으로 쓰지 말고, 재능이 생길 때까지 쓰라. 작가로서 쓰지 말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 쓰라. 비난하고 좌절하기 위해서 쓰지 말고,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쓰라. 고통 없이, 중단 없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세계 안에서, 지금 당장, 원하는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날마다 쓰라.

요한 페터 헤벨, 뜻밖의 재회


요한 페터 헤벨, 뜻밖의 재회

스웨덴의 팔룬 지방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50년도 더 전에 한 젊은 광부가 그의 젊고 아리따운 약혼녀에게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이제 우리의 사랑이 성루시아의 날에 신부님의 손에 의해 축복을 받게 될 거야. 그러면 우린 부부가 되는거야. 그때 우리의 보금자리를 꾸며보자고.”

“그러면 그곳엔 평화와 사랑이 깃들겠지요."하고 아름다운 신부는 상냥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당신은 제게 단 한분 밖에 없는 분이고 또 모든것이기도 해요. 당신이 안계시다면 전 차라리 무덤 속에 들어가는게 더 나아요.”

그러나 신부님이 결혼식을 앞두고 성루시아의 날 전에 “이 두 사람이 혼인하는데 대해 이의가 있는 사람 없습니까?"하고 두번 물었을 때 ‘죽음'이 선뜻 나섰다. 젊은이는 그날 아침 광부차림의 검은 옷을-그 옷이 바로 그의 수의가 되어버렸지만-입고 약혼녀 집앞을 지나가며 유리창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아침 인사를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하곤 하던 저녁인사는 영영 못하고 말았다. 그는 그날 이후 광산에서 결코 되돌아오지 못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약혼녀는 바로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게 될 빨간 테두리를 두른 검은 목도리를 약혼자가 결혼식 날 두를 수 있도록 짜고 있었다. 그러나 그 청년이 영영 되돌아 오지 못하게 되자, 그녀는 이제까지 짜고 있던 목도리를 치워버리고는 애통해하며 결국 그를 잊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은 여전히 흘러 포르투갈의 리스본 시가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7년 전쟁이 끝났으며, 프란츠 1세가 죽었고, 가톨릭교에서 예수회 교단이 해체되었으며, 폴란드가 분할되었고, 마리아 테리지아 여왕도 죽었고, 슈트루엔제 백작도 처형되었다. 미국이 독립했고, 프랑스와 스페인의 연합함대는 지브롤터 해협을 끝내 점령할 수 없었다. 터키인들이 슈타인 장군을 헝가리의 베테란 동굴에 포위하였고, 요제프 황제도 죽었다. 또 스웨덴의 구스타프 왕은 러시아령 핀란드를 점령하였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으며, 이어서 오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레오폴트 2세 황제 역시 무덤으로 갔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점령했고, 영국군이 코펜하겐을 폭격하였다.

이렇게 밖으로 커다란 일들이 터지고 있는 동안 들에서는 농부들이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어들였고, 방앗간 주인은 곡식을 빷았으며, 대장장이는 여전히 망치질을 하였고, 광부들은 지하의 광구에서 금속을 캐내는 일을 쉬지 않고 했다.

1809년 어느날 팔룬 지방의 광부들이 세례요한 기념일 전후에 두 지층 사이로 구멍을 뚫기 위해 땅 밑으로 약 300자 쯤 파 내려갔을 때, 흙무더기와 황산염수 사이에서 한 젊은이의 시체를 발견하고 파냈다. 그런데 그 시체는 황산염수 속에 완전히 잠겨 있었을 뿐 조금도 부패하거나 변한 데라곤 없었다. 그래서 그의 얼굴 윤곽과 나이를 거의 알아맞힐 수가 있었으며, 흡사 한 시간 전에 죽었거나 아니면 일을 하다 잠시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를 바깥으로 끌어내어 왔으나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그의 친구와 친지들은 벌써 오래전에 죽어버렸기 때문에 아무도 이 잠자는 듯한 젊은이를 알아보거나 그가 당한 불행한 재난에 대해서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 옛날 광구 속으로 들어갔다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던 그 젊은 광부의 약혼녀가 그 자리에 왔다. 백발이 하얗게 뒤덮인 머리에 다 늙은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그녀는 그 자리에서 자기의 약혼자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슬픔보다는 오히려 환희에 찬 놀라움으로 사랑하는 애인의 시체를 얼싸안았다. 오랜 감격과 격정의 시간이 지난 뒤 정신을 가다듬고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분은 나의 약혼자입니다. 이분을 위해 전 오늘까지 50년 동안이나 애통해했는데도 이제 하느님께서 내가 죽기전에 다시 한번 그이를 만나게 해준 것이지요.  우리의 결혼식이 있기 일주일 전에 이분은 저 갱속으로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시지 못했답니다.”

그러자 거기 빙 둘러섰던 사람들은 애틋한 감정에 젖어들었다. 예전의 약혼녀는 이젠 다 찌든 무기력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는데도 신랑은 아직도 그 젊은이다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약혼녀의 가슴속에 50년이 지난 지금 젊은 날의 사랑이 다시 한번 피어오르는 모습을 보았을 때, 눈물과 측은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영영 입을 열어 미소 짓거나 눈을 떠주지는 않았다.

그 젊은이가 교회 묘지에 안치될 때까지, 그녀는 그의 유일한 연고자로서 또 그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진 유일한 사람으로서, 자기의 옛 약혼자를 광부들을 시켜 자기 방으로 옮겨 오게 하였다. 다음 날 교회 묘지에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광부들이 시체를 가지러 왔을 때, 그녀는 자그마한 상자를 열더니 빨간 테두리를 두른 검은 비단목도리를 그의 목에다 둘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은 가장 좋은 외출복으로 성장을 하고는-마치 그날이 약혼자의 장례식 날이 아니라 그들의 혼인날인 양-그들을 따라 묘지로 갔다. 그리고 광부들이 교회 묘지의 무덤 속에 그를 내려놓자 그녀는 말했다.

“그곳 싸늘한 신혼의 잠자리 속에 하루나 한 열흘쯤만 누워 주무셔요.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하지 않길 바라요. 제겐 이제 할 일이 조금 밖에 안 남았답니다. 저도 곧 올것이고 머지않아 부활의 그날이 밝겠지요. 흙이 한번 다시 내준 당신을 영영 가둬두지는 못할테지요.”

그러고는 돌아가면서도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곤 하는 것이었다.

기억으로서의 현대성 그리고 도시인상학 _ 김성윤

기억으로서의 현대성 그리고 도시인상학 

― 벤야민이라는 모호한 대상

김성윤





2. 역사의 발견 ― 부단히 현재적인 역사


(1) ‘체험’과 ‘경험’의 이중주

군중이 도시를 체험하고 경험한다고 했을 때,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체험’과 ‘경험’ 사이에 존재하는 특정한 계기들이다. 우리말(화된 언어체계)에서 체험은 體驗 즉 몸으로 증험한다는 의미를, 경험은 經驗 즉 그 증험한 바를 새로운 방식으로 직조하고 다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5)그런 면에서 경험은 ‘지혜, 완숙함, 경륜’ 등의 함의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영어보다는 독일어에서 더 잘 확인된다. 영어의 ‘experience’는 ‘시험, 시도, 실험’의 뜻이 대부분을 이루는 것으로서 그 근간에는 실험과 측정을 통해 검증한 경험적, 과학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독일어는 ‘Erlebnis’, ‘Erfahrung’으로 그 의미가 구분된다.6) Erlebnis는 특이한 방식으로 흔적을 남긴 우연한, 갑작스런 사건을 겪는, 순간적이며 충격적인 체험으로 정의된다. 반대로 Erfahrung은 실천적, 반복적, 일상적 노동에 의해 어떤 것을 체득하게 되는 것, 일상적인 삶의 지속을 통해 얻는 깨달음 및 ‘지혜’의 뜻을 강조한다. 이러한 구분은 다음의 <표>와 같이 재정리될 수 있다.

체험 Erlebnis

경험 Erfahrung

몸으로 증험(證驗)

새로운 방식으로 직조하고 다룸

(지혜, 완숙함, 경륜)

우연적, 순간적, 충격적, 짜릿함

실천적, 반복적, 체득적, 깨달음

보다, 접하다, 봐서 알다

듣다, 전해 듣다, 들어서 알다


그렇다면 소설과 ‘경험-체험’의 대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벤야민은 「얘기꾼과 소설가」에서 전통적인 설화나 민담을 전해주는 ‘이야기꾼’의 세계와 근대 대도시의 책 시장을 겨냥해 글을 쓰는 ‘소설가’를 대조하며, 이야기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경험’을 다루는 데 주목한다. 반면에 도시를 중심으로 한 근대 인쇄문화의 산물인 소설은 이러한 구전적 전통이 단절되는 것을 기본 요건으로 삼는다. 이 둘 사이를 가르는 기준은 바로 경험을 전달해주느냐의 여부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벤야민에게 근대 소설의 등장은 생활에 배어있는 전통이 사라지는 것이며, Erfahrung의 세계가 쇠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령, 이야기는 듣고 말하는 이가 사건-텍스트의 저자로 참여해 하이퍼텍스트를 확대재생산하는 반면, 소설은 ‘고독한 개인’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러한 경험의 계기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이유로 그의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이야기’를 지향한다. 그에게는 사건이 체험화되고 이 체험이 경험화되는 특정한 양식이 중요시된다. 궁극적으로 사건에 체험과 경험이 덧붙여지지 않는 것에는 역사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건에 체험과 경험이 맞물리는 것만으로는 긍정적인 의미가 획득될 리는 없다. 만약 사건-체험-경험의 계기들을 우연적으로만 내몬다면, 벤야민이 작업한 도시적․시적 이미지들은 단순 나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들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해서」라는 논문에서 이러한 곤경으로부터 탁월하게 탈출한다. 그는 인간의 기억을 두 가지 층위로 나누어서 생각한다. 첫 번째는 베르그송과 프루스트를 빌린 것으로서 순수기억과 종합기억에 관한 것(베르그송), 그리고 무의지적 기억과 의지적 기억에 관한 것(프루스트)이다.(Benjamin, 1983: 122) 다분히 프로이트적인 것으로 이해할 만한 이 기억의 문제설정을 통해, 그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영역에 의해 인간의 의식활동이 지배받고 있음을 간파하고 있다. 따라서 벤야민에게 ‘체험과 경험’은 기억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 속성을 거쳐 ‘인지와 개념화’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이라는 것은 여전히 사적이다. 이것은 두 가지 난점을 야기하는데, 첫째 경험을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것은 결코 우연적인 요소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문이고, 둘째 경험의 사적인 성격은 인간이 자신의 경험 속에 외부의 사실들을 동화시키고 있는 실제적 현실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게 한다. 따라서 벤야민의 ‘경험’이 의미 있기 위해서는 이 경험이 사적인 차원을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벤야민이 발견한 인간 기억의 두 번째 층위에 관한 문제이다. 벤야민은 체험과 경험의 경계선을 명확히 긋기 위해 경험에 들어가 있는 커뮤니케이션적 가능성에 착목한다. 예컨대 ‘똥간’에 빠진 단순 체험은 그 자체에선 기억 속에서조차 잊힐 법한 성격의 것이지만, 이것이 인간의 회상과 기억해내기(Erinnerung)를 거친다면(물론 이 기억은 의지적일 수도 무의지적일 수도 있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경험의 것으로 전화한다. 왜냐하면 벤야민이 보기에 이 ‘기억해내기’의 계기라는 것은 ‘종합적 기억’(Gedächtnis)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의문점은 남는다. 종합기억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경험의 교류를 통해 나온 것이므로, 이것은 언제나 가상적인 속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란 결국 왜곡된 체험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불과한 일이 된다. 이것은 분석적으로 합당할 수는 있어도, 정치적으로는 다분히 부족함이 많은 설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벤야민은 종합적 기억이라는 것에 언제나-이미 순수기억의 계기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구도를 설정한다. 프루스트를 인용하면서 그는 “이들 사지 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의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얘기하면서 이러한 기억의 이미지들은 의식에 조금도 속하지 않으면서도 느닷없이 그 의식 속으로 침입해 들어온다.”고 설명한다. 기억의 이미지들에 대한 끝없는 분출 과정에서 의식적으로 체험되지 않았던 것, 즉 주체가 ‘체험’으로서 겪지 않았던 일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주목하는 ‘무의지적 기억’의 과정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사건이지만 체험되지 않았던 것, 그래서 의지적으로는 기억될 수 없는 것, 이것이 바로 벤야민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지향점이자 글쓰기의 목적이며 메시아적 순간이다.




원문링크: http://cydemo.tistory.com/12

앏을 떠받치는 것은 용기, 근성, 끈질김, 치밀함_ 고병권 인터뷰

“앎을 떠받치는 것은 용기, 근성, 끈질김, 치밀함” 『철학자와 하녀』 고병권

  • 등록일2014.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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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삶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막상 내 삶의 철학을 갖기 위해 니체푸코공자장자를 공부할 때는이 공부가 과연 내 삶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갸웃거리게 된다.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도 말이 막히는데 심지어 왜 가난한 사람이 철학을 공부해야 합니까?”하고 묻는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먹고 사는 일에 바쁜 사람들에게 철학자의 말철학자의 사유는 아름답고 보기 좋지만 실생활에서는 별 도움 안 되는 지적 허영허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말이다.
 
고병권의 『철학자와 하녀』는 이 질문에 대답하려고 노력하는 책이다고병권 작가와 만나기 위해 수유너머R’를 찾았다. 1998년 대학으로 대표되는 제도권 학계에서 벗어난 연구자들의 자유로운 생활공동체로 시작된 수유너머는 현재 수유너머N’, ‘수유너머R’ 등으로 분리되어 활동하고 있는데고병권 작가가 소속된 수유너머R’은 용산과 이태원 근처 해방촌 평범한 주택가에 자리잡고 있었다전통시장과 외국인이 어우러지고 창 밖으로는 생선장수의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 동네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이질적인 것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일상적인 풍경이 책 제목인 『철학자와 하녀』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제목이 알쏭달쏭하네요. ‘철학자와 하녀는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인데 이들이 함께 제목으로 쓰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티브 자체는 철학사에서 굉장히 유명한 에피소드에서 가져왔어요철학자 탈레스가 별을 보며 걷다가 도랑에 빠져요하녀가 그걸 보고 깔깔대며철학자는 멀리 있는 것에는 그렇게 관심 있으면서 자기 발 앞에 벌어진 일은 모른다고 비웃었단 얘기예요이 이야기를 소크라테스가 인용을 하는데소크라테스는 하녀가 철학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함부로 말한다고 비웃죠.
둘 다 일리가 있어요저 멀리 있는 진리의 문제에는 관심을 가지면서 삶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한 철학자를 지적한 하녀의 말도 맞고자기 발치 앞의 문제만 보느라 삶이 어디로 가는지 성찰하지 못하는 하녀를 비판한 소크라테스도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한 것은 철학자와 하녀의 만남이라고 해도 좋고… 이런 거죠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친 어느 날하녀가 창문을 열고 철학자가 보듯이 별을 봤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철학자처럼 별을 보며 진리의 영원성을 깨닫게 될 수도 있고철학자가 보지 못한 다른 것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별을 보는 하녀는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있었어요가난한 사람들이 철학을 공부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제가 여러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철학을 공부했던 경험 덕분에 알게 된 거죠물론 하녀가 별을 보며 무언가를 깨닫는 것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아주 드물게 일어나긴 하지만 그런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반대로철학자가 별만 볼 게 아니라 사람들이 밤마다 빠지는 도랑에 대해서 근심하고 그걸 메워보려 노력하면 어떨까안타깝지만 후자의 생각을 『철학자와 하녀』에 담지는 못했어요왜냐하면 세상에 그런 철학자를 별로 본 적이 없거든요(웃음).만약 다음에 이 책을 고쳐 쓴다면 철학자가 도랑을 메울 때’(?) 이런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어요그건 철학자가 무슨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철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의외로 철학의 바깥에 있을 수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는 거죠.
 
저도 대학생 때는 지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 철학사 책도 읽고 강좌도 듣고 했지만 그렇게 공부한 철학이 현실과 맞닿는 부분을 찾기가 힘드니 점점 철학과 멀어지게 되더라고요.  
철학… 재미는 있는데 막상 급할 때는 도움이 안 되죠(웃음). 당장 급전이 필요할 때도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살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게 되는 그런 때 조차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을 거예요철학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는마치 미식과 식도락을 즐기듯 삶에 여유가 생겼을 때 훌륭한 지적 세계를 체험하는 것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좋은 이미지가 아니죠.
그런데 철학이 정말 그런 것이냐고 한다면그렇진 않을 겁니다.
 
철학은 그렇게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미지가 있는데요철학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은 그렇다면 어디인가요?
현실을 말할 때 조심할 부분이 있는데, 보통 현실적이라고 하면 현실의 질서를 승인하는 것에 가깝거든요. 제 친구가 언젠가 저에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어요너도 사회생활 좀 하라고요저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성명서도 많이 써봤고 일이 생기면 현장으로 뛰어가기도 하고또 만나는 사람도 내가 훨씬 더 많을 것 같은데 친구가 보기엔 제가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느낌인 거죠그 친구가 말한 사회생활은 뭘까 생각해보면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는 회사생활이겠죠회사에 가서 팀장부장 등 한정된 사람들과 만나고요그런데 그렇게 쳇바퀴처럼 만들어진 인공의 삶을 왜 현실감이라고 할까삶이란 그렇게 단순하지도 않고 작지도 않는데 왜 세팅된 곳만 왔다갔다하는 것을 현실이라고 할까어쩌면 서고에서 300년 전, 500년 전 문서를 뒤적거리는 사람이 더 현실감이 있을지도 몰라요왜냐하면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의 삶에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요그런데 우리는 남한테 머리채 잡혀서 과장님으로 10부장님으로 10년 살고 그러다 늙어서로 살아본 적이 없는 삶을 왜 현실적이라고 할까요…?
 
영어 ‘real’은 라틴어로 사물이라는 뜻의 ‘res’에서 왔다는 주장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royal, 왕이나 법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어요. 영어로 부동산이 ‘real estate’인데 원래 땅은 다 왕의 것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현실적이 된다는 것은 법을 안다는 것, 사회질서를 안다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그 질서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은,  리얼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상상력이 필요한 거에요. 프랑스의 68혁명 때 많은 사람들이 외친 구호 중에 하나가 상상력에게 힘을이었던 것도 그런 의미죠.
질서나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길 두려워하는 사람은 그 질서에 빨리 적응하려고 해요우리는 자칫 그런 영리한 노예의 길을 현실적이라고 말하기 쉬워요하녀로 대표되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감이 사실은 그것인 경우도 많고요그럴 때 철학은 그런 현실감을 내리쳐 줘야 해요진짜 현실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말도 맞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이 우리를 현실로부터 구원할거라는 말도 맞아요그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고 철학은 현실로 내려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거꾸로 철학이 공리공론으로만 흐르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요어느 것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라서로가 옳기 때문에 옳은 부분은 소중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거죠.
 
 
책 속에서 철학은 박식함에 있지 않고 일깨움에 있다고 말했는데요.
저와 함께 공부했던 많은 분들지금도 공부하고 있는 분들을 떠올리고그분들에게 내가 무엇을 배웠을까 그리고 이분들에게 철학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며 끌어낸 철학의 정의가 바로 철학이란 일깨움이 아닐까 하는 거였어요.
19세기 이후 대학에는 철학과가 있었는데대학에 어떤 학과가 있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특정한 지식이 특정한 방법론으로 묶여 있다는 의미죠그런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은 솔직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돼요이들에게 칸트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왜 중요하겠어요차라리 경제학이나 경영학 혹은 처세술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죠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이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하다면 그건 농부가 별을 보다가 혹은 노동자가 기계를 돌리다가 문득 떠오른 것각성이라고나 할까 어느 날 갑자기 하나의 정보와 지식이 달라 보이는 순간 같은 것이겠죠그런 수준의 앎이라는 것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철학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고요.
 
책에 담고 있는 사색이나 사유에도 밑줄을 잔뜩 그었지만 소개하고 있는 에피소드 하나하나관련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았어요노들장애인야간학교 여학생대안학교에 다니는 어린 친구들월스트리트 점령지의 외국인 같은 이들이요.
저는 철학과를 나오지 않았어요물론 철학자들의 저작들에서도 많은 일깨움을 받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저에게 텍스트는 그런 현장들이었어요현장은 일깨움을 확인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가르치러 갔다가 정작 제가 더 많이 배우게 되는 곳이고요.
 
노들장애인야학에는 지금도 매주 목요일마다 가서 가르치고 있는데요분명 제가 거기서 교사라는 지위를 가지고 지식 수준에서의 철학을 가르치지만일깨움 수준의 철학은 제가 배우고 있거든요겸손 떠는 얘기가 아니에요책에서 생애 첫 MT때 밤하늘의 별을 보고 해방감을 느끼고 인생을 바꿨던 장애인 여학생 얘기를 썼는데그 분을 일깨우고 일생을 뒤바꾼 사건은 정말 엉뚱한데서 온 거잖아요. 그런데 그 엉뚱한 것을 철학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어요.
 
중요한 것은 그런 장을 열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거죠그러려면 낯선 곳에 나를 노출시키고 내 얘기를 해야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해야 해요용기, 근성, 끈질김, 치밀함.. 이런 단어들이 앎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들을 빼고 나면 인터넷에서 흘러다니는 정보와 다를 게 없게 되죠.
 
배움에 대한 이야기들에서는 기존의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던데요.
가르친다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아요저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데요철학자 랑시에르가 무지한 스승이라고 말한 일화가 있어요. 19세기 네덜란드령 프랑스에 한 프랑스 교사가 문학을 가르치러 와요교사는 네덜란드어를 할 줄 모르고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할 줄 몰라요교사는 가르칠 수 없었는데 놀랍게도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얘기에요선생이 꼭 무언가를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요그보다는 그 장을 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거예요농부로부터 생태적 삶을 배울 수 있고 노동자로부터 영화감독이 모티브를 얻을 수 있어요지식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서로를 배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 그 장을 열고 참여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거죠. 배움은 그 장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얻어가는 거고요.
 
노들야학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어요멕시코 치아파스 원주민이 했다는 말인데요.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이걸 공부로 바꾸면 이런 뜻일 거에요당신이 우리를 가르치러 왔다면 잘못 온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배움에 함께하는 것이 당신의 배움에도 도움이 된다면 함께 공부하자그런 의미에 가깝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노년의 칸트가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말한구경꾼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변화가 진짜 혁명이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예전에는 칸트의 중요한 덕목들을 제대로 못 봤는데 요즘은 칸트를 다시 공부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었어요칸트를 다시 보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노년기의 칸트가 썼던 여러 가지 글들이었는데요칸트는 60대에 프랑스 혁명을 목격하고 74세의 나이에 책을 하나 써요대학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공부란 무엇인지배움이란 무엇인지 이런 것에 대한 얘기죠그러면서 인류는 끊임없이 진보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자신의 생각을 쓰죠여담이지만칸트처럼 훌륭한 학자가 프랑스 혁명을 경험한 것도 고맙고또 그 사건을 경험한 후 호들갑 떨며 바로 그것에 대해 쓰지 않고 몇 년을 지켜보다 혜안을 얻고 글을 썼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웃음)
 
혁명의 주인공들만 보면 우리는 비관주의자가 될 거예요자유를 외치며 혁명을 말한 이들도 말년에 가면 부정부패에 빠지고,해방을 말한 혁명은 공포정치가 되었죠이렇게 혁명은 타락하게 마련이고 혁명에 배반당하는데 그런데도 역사는 진보하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것인가칸트는 그렇다고 말해요. 그리고 그는 희망을 혁명의 주인공들이 아니고 혁명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에게서 찾은 거죠. 구경꾼들이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놀라고 공감하고 결국은 나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믿을 수 있는 이유 아니겠냐고. 남의 일에 관심을 갖고 에게 기꺼이 갈 수 있는 힘, 이것이 있기에 인간은 진보한다고 말하는 거죠.  내가 나를 떠나는 힘, 그것을 또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칸트가 말하고 싶은 자유란 그런 것 같아요. 네 안에는 너를 극복할 힘이 있다. 너는 법을 지키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법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거요.
그때 저는 철학에 대한 좋은 정의를 본 것 같았어요철학은 법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이 맞지 않거든 법을 바꿔달라고 말하고필요하다면 그것을 위해 감옥에도 갈 수 잇는 용기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구나준법시민보다 더 힘든 것은 성숙한 시민이고옳은 일을 따르는 것 보다 무엇이 옳은지 아는 것이 정말 어렵구나그런 점에서 구경꾼이라는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닌 거죠.
 
올해 벌써 세 권의 책을 내셨는데요세 권 다 인문 분야로 분류되긴 하지만 글의 성격은 다 다른 것 같아요『살아가겠다』는 한국 사회의 갈등 장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담았고『언더그라운드 니체』는 제목 그래도 니체에 대한 책이고요『철학자와 하녀』는 글쎄요철학책이라기 보다는 에세이 같은 느낌인데 안에 담고 있는 내용들이 만만치는 않고요.
세 권을 한꺼번에 내려고 그런 건 아닌데 출판사 사정으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웃음).
『철학자와 하녀』의 1/3은 여기저기 떠돌면서 쓴 글이에요. ‘수유너머에 갈등이 있고 깨져서 다시 모이는 와중에제 자신이 좀 복잡했을 때였죠. ‘시민의 철학이라는 제목으로 연재 의뢰가 왔는데 사실 제목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시민이라는 단어가 너무 고풍스럽고 안전하고 깔끔한 느낌이라서요. ‘철학이라는 말도 그렇고요그렇지만 그 단어를 받아들인 딱 하나의 이유는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시민이라고 한다면 철학과 일상이 만나는 장소가 필요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때 저는 직업은 없지만 아이가 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었죠무엇보다 오랫동안 몸 담은 공동체가 깨져 기반을 잃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불현듯 불안해 신음하고 있었고요그럴 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는 기분으로 한 달에 한 편씩 쓴 글들이에요그래서 이 책은 어떤 분류에 넣기가 애매한 것 같아요그냥 젊은… 이젠 젊지 않네요(웃음). 그냥 40대 남자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떠올렸던 생각들을 쓴 글이라 보시면 되요.
 
 
보통 대학에서 공부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어떤 하나의 전공을 공부하는 것인데요. ‘수유너머R’처럼 자유로운 연구공동체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니체를 공부하다 칸트로 넘어가는 것이 자유롭다는 것일 텐데요그런 공부가 어렵지는 않은가요?
원래 사람을 가만히 있게 하는 게 어려워요감옥에 갇혀 있으면 힘들어요싸돌아 다니는게 자연스럽고요그러니까 니체를 공부하다가 칸트가 궁금해지는 건 하나도 안 이상해요우리의 일상과 외부환경은 계속 변동하고 있는데 사람이 궁금한 것을 따라가는 것은 자연스럽죠제가 푸코를 인용하면서 썼지만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호기심’,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는 지식욕은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런데 우리 사회의 도덕, 관습, 제도들은 함부로 어딘가를 못 넘어가게 울타리를 만들어요.
어떻게 그렇게 옮겨 다니냐고 질문을 받는데저는 거꾸로 물었으면 좋겠어요어떻게 당신은 그렇게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 수 있는지그러면 그 분도 좋은 얘기를 들려주실 거에요(웃음).
 
그렇다면 요즘은 어떤 공부에 관심이 있나요?
일단은 이론적으로 마르크스라는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있어요제가 가진 생각의 벽돌들이라고 하는 것이제 세대적 특징일 수도 있고 개인적 경험일 수도 있지만 마르크스의 용어들이 많이 차지하고 있어요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하던 동의하지 않건 간에 이데올로기라든가 계급상품가치비판 등 여러 가지 말들이요그런데 문득 이 단어들이 벽돌들이 내가 집을 지을 정도로 튼튼한가 두들겨 보고 싶어진 거죠그렇게 마르크스에게서 배운 개념들을 다시 공부하고 그 개념들로 시작해서 제 생각을 좀 다듬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게 몇 개 있지만 자꾸 인터뷰하면서 얘기를 했더니 긴장감도 떨어지고 말해 놓고 나면 하기 싫어지기도 해서(웃음). 생명체들이 왜 임신이라는 불필요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오겠어요바로 태어나버리지왜냐하면 품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이 품는 시간이 철학의 또 다른 정의라고도 생각해요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조금 음미하는 것기다리는 것초조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공부를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뚜렷한 목표가 보이지 않기에 힘들기도 할 것 같아요작가님께 공부를 계속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공부하는 사람의 꿈은 공부에 있어야지 다른 데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농부의 꿈은 농사를 잘 짓는 거지 알려져서 유명한 농사꾼이 되겠다 하는 건 아니잖아요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좋은 공부를 하는 게 꿈이죠물론 생계가 힘드니까 아예 엉뚱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과 관계 있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요하지만 공부하면서 살겠다는 사람은말과 글로 생각을 키워내는 일에 종사하겠다고 한다면그 꿈은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어야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니어야 하는 건 확실하죠그걸 혼동할 수는 있지만… 그게 맞는 말이라는 건 인정해야죠.
 
책 속에 길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돈은 없어요그리고 사는 데는 돈이 들고요그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어요저도 애가 학원에 다니겠다고 하면 고민을 하겠죠저도 돈에서 벗어난 사람처럼 행세할 생각은 없어요하지만 거기에 결핍감을 가져버리면.. . 답이 없죠.
 
그래도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해서 초조감이나 불안은 없으신가요?
지금은 자동차가 없는데 자동차를 가진 적이 있었어요아이가 태어날 때인데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차가 필요할거라고 해서 150만원인가 주고 중고차를 샀었죠그런데 쓸 일은 없었어요아마 보험을 드는 것도 다 비슷한 이유겠죠. 불안은 혼자 있을 때 더 커져요. 아마 저도 수유너머R’이라는 공동체가 없다면 취업하려고 하고 어디 알바라도 뛰려도 할 거예요하지만 이 동료들이 나를 외면하진 않겠지(웃음), 이런 비빌 언덕이 있으니까 덜 흔들리는 거죠. 사람이 비빌 언덕을 갖는 것, 공동체에 속한다는 건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곳에서 밥도 해먹고 공부도 하는데이곳이 없다면 저도 초조에 시달릴 거예요그걸 믿기 때문에 계속 공부할 수 있는 거죠여기가 제 삶의 터전이죠.


-원문출처: http://news.kyobobook.co.kr/people/writerView.ink?sntn_id=8999


길들이기와 길러내기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 고병권/ 소명출판/2004/139p-145ps



길들이기와 길러내기 


근대 정치체제에 맞는 인간이 탄생하고 재생산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구에서 정치와 신체가 맺는 밀접한 관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회체', '정치체'라는 말은 신체에 대한 비유이다. 체제라는 말은 한자풀이 그대로 '신체를 통제한다'라는 뜻이다. 또 조응, 균형, 안정성 등의 개념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신체(개별적 신체이든 사회체이든)의 건강을 측정하기 위해 의학과 정치에서 애용되었던 개념이기도 하다. 


(중략) 


다이어트라는 말과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주목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비율ratio이라는 단어와 합리성rationality이라는 단어 사이에 존재하는 친화성이고, 다른 하나는 '시간성'의 중시이다. 베버는 이 두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신체와 근대성이 맺고 있는 관계를 훌륭하게 분석했다. 그는 근대 합리적 훈육의 진원지로 '수도원'과 '군대'를 들었는데, 이 두 곳은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들이 개발된 곳이기도 하다. 베버는 수도원과 군대에서 생겨난 훈육방식이 프로테스탄트들의 일상생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프로테스탄트들은 시간을 분절하고, 그것에 맞추어 금욕적인 생활태도를 확립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항상 '계산 가능한 것.' , '계획된 것'으로 만들었다. 수도원과 군대에서 그랬듯이, 훈육은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계산 가능하게 하고, 합리적으로 의도된 목표에 헌신하도록 대중들은 '신체적이고 심리적'으로 적합하게 마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공간적인 분절화와 비율화를 통해서 통제하고 관리하고자 했던 힘은 어떤 것이며, 그것의 사회적 의미는 어떤 것일까? 니체는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한 고도의 권위를 '윤리'라고 보았는데, 윤리는 관습에 의하여 규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니체는 비윤리적이라고 비난받는 것들에 주목했는데, "비윤리적이라고 비난받는 것들은 개인적인 것, 자유로운 것, 제멋 대로인 것, 길들여지지 않은 것, 예측되지 않은 것, 계산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이런 점에서 훈육의 대상으로 삼았던 비합리적 힘으로서의 신체는 단순히 '살flesh'의 의미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추동이나 욕망처럼 잘 길들여지지 않고, 예측되지 않으며, 계산을 방해하는 힘을 가리키는 것이며, 사회체 안에 존재하는 계산되지 않고 길들여지지 않는 세력들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니체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힘들을 다스리는 훌륭한 수단 중의 하나가 노동이라고 말한다. 



(중략) 


체제는 자신의 안정을 위해 "인간을 가능한 재빨리.....시대의 목적을 향하여 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니체는 이 훈련의 과정을 두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우선 "사회나 국가 같은 개체가 개개인을 굴복하게하여 고립에서 끌어내고 하나의 단체에 정렬시킬 때, 비로소 모든 도덕성을 위한 기초가 정비"되고 이것이 익숙해지면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복종하게 하여 그것이 본능이 되도록 한다." 하나의 도덕이 자연스러운 지배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그 전사적인 작업이 있어야 하고 그 이후 본능적으로 '미덕'으로 숭상되어야 한다. 첫 번째의 작업이 '길들이기'에 해당한다면, 두 번째 작업은 '길러내기'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길들이기와 길러내기를 항상 '개선'이라고 불러왔는데, 사실상 이것은 날뛰던 야수가 동물원에 갇혔을 때처럼, 개선이 아니라 덜 위험한 상태로 나약해졌음을 의미할 뿐이다. 

"문명의 과정은 무시무시한 맹수 같은 본성에 대항하여 철퇴와 고문을 필요로 한다."


(중략) 


잔인한 형벌은 '기억술'을 위해 동원된다.(중략) "나는 그것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하고, 그것을 기억에다 새겼다." 니체는 이 작업을 '기억할 수 있는 동물 기르기'라고 명명한다. '기억할 수 있는 동물'은 또한 '약속할 수 있는 동물'이 된다. 그는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동물이 되는 것이며,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그 사회에서 규칙적이고 필연적인 존재가 됨을 의미한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의 행동은 우리가 쉽게 예상 할 수 있는 만큼의 '계산 가능성'을 높여준다. 

길들임의 작업이 끝나면 길러내기의 작업, 즉 재생산의 작업이 시작된다. 강제된 덕목들은 이제 자연스러운 본능이 되어야 한다. 길들이기의 주요한 수단이 군대였다면, 길러내기의 주요한 수단은 학교이다. 니체는 학교보다 군대가 열등한 수단이라고 보았으며, 학교의 도움으로 정부는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재갈 물린 이들을 매개로 하여 그것들의 모든 청년들은 국가에 유기한 것을 교육받는다. 무엇보다도 국가에 의해 승인되고 인정된 생활 진로만이 사회적 영예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그러한 성향이 모드 사라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전염된다. 

이것은 지배적 도덕을 습속화하는 과정이다. 동등하고 규칙적이 되도록 길들여지며 지배적 도덕을 본능화하게 될 때, 니체가 말하는 '습속의 도덕'이 완성된다. 지배적 도덕이 습속화되면 통치는 사람들의 살갗을 뚫고 들어온다. 이제 사람들은 능동적으로 자기 검열하고 통제한다. 베버는 이것을 '능동적 자제'라고 불렀으며, 일기를 능동적 자기 검열의 대표적인 기제로 보았다. 

이러한 길들임과 길러냄의 작업은 형이상학적 가치의 변증법적 운동과 함께 허무주의 운동의 지배사를 이룬 양 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 체제에서 선언된 가치들을 능동적으로 가치 평가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보다는, 그것들을 허위적 능동적으로 내면화시키고 그것에 무의식적으로 복종하도록 함으로써 허무주의는 하나의 지배를 이룰 수가 있었다. 





-교육과 배움의 맥락에서 일어보았다. 교사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인가. 길들이는 것인가. 나는 어떠한가. 길러낸다는 것이 윤리적이고 정치적이라면 그것은 습속으로 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통제불능의 학생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저이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폭력'을 건드리지 않고 이 문제에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추구하는 도덕적 자질과 윤리적 덕목들은 물론 정치적인 것이다. 이 정치적인 것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과 '폭력'을 마주하는 윤리적 자세에 대한 물음이 뒤따른다. 도덕과 윤리는 결국 '폭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했다. 

무지한 스승/쟈크 랑시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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