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육아의 시

생후


신동옥 

 

 

새벽, 소아청소년과 병동 217호 

지쳐 쓰러진 아내의 젖무덤을 가제 손수건으로 덮고 쓰는 

행간, 병실에는 잿빛 안개가 뿌옇게 차오르고 

아이는 날이 밝도록 목구멍을 조인다 

밤새 척수에 뚫린 바늘구멍을 좁히는 여린 등살처럼 

아이는 팔목에 링거를 꼽고 파르르 떤다 

악마가 속삭이는 음성 속에도 새들의 노랫소리가 있다면 

바이러스는 아이의 뇌척수액과 끝까지 싸울 테고 

절대로 지지 않겠지 금세 지나갈 병입니다 

의사는 아이를 달래며 말한다 

아프다고 말하기 전에 신음을 내지르는 법을 배우라고 

목구멍을 열고 혀를 입천장에 붙이고 앙 

하고 울음을 내지르라고 그러니 아가 

말하지 말고 울어라 

아픔은 이후의 일이다 

가만히 앉아서 춤을 추는 법을 배워라 

신음은 참상을 자현하지 않고 고통은 

뇌척수막에 스민 바이러스를 제현하지 

않는다, 시작하기도 전에 끝을 쓰고야 마는 

위로, 또는 끝없이 지연되는 이후의 더부살이 

위악, 이 간명한 처방 

 

청진기 관다발 속에서 

거꾸로 뒤집힌 하늘 어딘가 

숨어있기 좋은 곳을 비추고 

알코올 솜이 떠가는 병실 천장 아래 수술복을 입은 

사람들이 공기에 비말을 섞을 때 죽기를 각오한 

사람들이 바늘이 들어갈 팔목을 거즈로 닦을 때 

소독제를 바르는 손가락 아래 말갛게 틔는 살갗 

살갗 아래 새로 만들어지는 뼈다귀, 한 짝씩 

한 짝씩 울음과 짝을 짓는 

주삿바늘, 병실에는 피로 만든 목걸이가 있고 

서둘러 메워야 할 구멍들이 처방전이라는 이름으로 

생후를 쓰고 있다 

아이는 회복 중입니다 

피가 맑네요 

 

멀리서 날아온 햇빛은 

이마 위에 파닥이며 환후를 짚어주는데 

병실을 가득 채우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빛 무더기, 속에 저미는 

병의 감촉, 차고 서늘하니 

시퍼렇게 날을 벼린 물방울들 

어딘가 낯설지 않은 예후들 

이 아이는 나의 딸이니 나는 

이 아이가 앓는 환후를 뒤쫓으며 삶을 꾸려가겠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로의 울음에 문체를 더하며 늙어갈까? 

아이도 엄마도 아빠도 병도 삶도 모두 초짜다 

아프다 말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신음을 삼키는 법을 먼저 가르치는 처방전 속에서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옹알이는 더없이 길다 

길고 길어서 뿌옇고 또 뿌옇다 

아가, 내일은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삶을 다한 다음인지 시작을 다한 다음인지 모를 

아득한 생후의 리듬으로 

해가 뜬다. 

 

 

수유에게1 


이성복

 

 

언젠가 내가 죽고 

네 엄마가 죽고 

개구쟁이 오빠들도 

할아버지가 되고 

 

네 흰 머리엔 

옛날 내 할머니의 

은비녀가 꽃혀 있었다 

 

얼마나 앓았는지 

거울 앞에서 

너를 닮은 할머니 

까박까박 졸고 있었다 

 

먼지 낀 거울 속 

새벽 닭이 울고, 

세상에 핏덩이 너를 

낳은 죄, 닭 벼슬보다 붉었다 

 

아이는 얼마쯤커야 할까 

 


 

최승자

 

 

가슴에 한아름 꽃을 안고 있으려면 

아이는 얼마쯤 커야 할까 

날마다 아이는 팔을 벌려 연습을 한다 

아이는 무슨 꽃을 꿈꾸는 것일까 

아이는 어쩌면  시원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느 날 가슴에 한 아름 

풀꽃을 안고 서 있을 꿈을 꾸면서 

 

 

어떤 출산 


김선우

 

 

내 거처에 멧비둘기 한 쌍 날아와 둥지를 짓더니 보얀 알을 낳았네 하루에 한 알 다음 날 또 한 알, 알을 낳을 때 어미는 너무 고요해서 몸 푸는 줄도 몰랐네 성긋한 해산 자리 밖으로 일렁이며 흘러넘친 썰물..... 알 속의 이 아기는 한 살인가 어쩐가 지금쯤 겨드랑이가 간지러울까 어떨까 뜻밖의 식구에 골몰하다 갑자기 든 생각은, 실은 발가락도 날개도 다 만들어진 다음인데 반가사유로 알 속에 앉아 골똘히 생각에 잠긴 건 아닐까 나가야 할까 어쩔까 세상 밖은 정말 밖인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 다음엔 왠지 좀 억울한 것이 나는 아무래도 반쯤은 쫓겨난 것만 같아. 알로 나를 낳아주고 세상밖으로 나갈지 말지는 저처럼 내게 맡겼으면 좋았을걸 싶어지는 거였네 멧비둘기 부부는 무량하게 알을 품지만 다만 그뿐 강요란 없어서.....열이레가 지나고 알하나에서 고물고물한 아기가 나왔는데 다른 알에서는 소식이 없었네 엄한 새악 탓에 동티 난 건 아닌지 갑자기 내 마음이 덜컥거렸는데.....이틀을 더 품어보던 멧비둘기 부부가 묵언 중의 알 앞에 마주 앉아 껍질에 가만 부리를 대보던 오후가 있었네 너무 고요해서 나는 못 들었지만, 세계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선택한 아기에게 축복의 말을 주는 듯 했네 알 속의 그가 선택한 탄생 이전이 그것대로 완전한 생임을 알고 있는 눈치였네..... 자기가 선택한 세계 속에서 온몸으로 돌오가기 시작한 보얀 알과 멧비둘기 부부의 극진한 고요 앞에 합장했네 지상의 새들이 날 수 있다는 건 자기 선택에 대한 최선일 뿐 모든 새가 날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자고 일어나면 배 밑에 가시풀 같은 깃털이 묻어있는 열하흐레였네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2007, 문학과지성사, 24p 

 

 

빛보다빠르게미래로달아나라 -이상,삼차각설계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