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정리: 라캉

<라캉: 대상 소문자 a> 


*”환상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그 무대이다”라고 언급한 라캉의 말이다. 환상은 욕망의 근거이지 그 자체는 아니다. 환상은 욕망들을 영사하는 비어 있는 스크린이다. 환상과 실재계 사이에 매개가 되는 개념이 ‘대상 a’이다. 라캉은 대타자를 가리키는 대문자 A에 대비되는 소문자 a를 써서 소타자의 기표로 삼는다. ‘대상 a’는 일종의 구멍이고, 대상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무를 뜻한다. 그것은 결여된 대상이 아니라 결여 그 자체이다. -장석주, 철학자의 사물들 


*욕망은 정확히 말하자면 어떠한 대상도 가지지 않는다. 욕망은 항상 사라진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이므로 상실한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을 수반한다. 주체와 타자 사이의 파열을 통해 아이의 욕망과 어머니의 욕망 사이에 간극이 벌어진다. 이 간극에 의해 욕망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대상 a가 도래한다. 환상을 통하여 주체는 타자와 하나가 되는 착각을 지속시키고 자신의 균열을 외면하려고 노력한다. 타자의 욕망은 항상 주체를 넘어서거나 벗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가 되찾아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남겨진다. 그것이 바로 대상 a 이다. -숀 호모, <라캉 읽기> 


<라캉: 라랑그 lalangue>

*”언어는 의심의 여지없이 라랑크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라캉에 의하면 무의식은 라랑그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대한 지식이다. 또한 그는 글과 말을 비교하며 문학 litterature과 문학lituraterre을 비교한다. 라캉이 만든 신조어로서 영어로는 literature(문학)과 illiterate(문맹의)를 합하여 Illiterature로 번역된다. -김서영/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라랑그는 상징계의 한 부분으로서 창조적 오독을 가능케 한다. 이는 일종의 말장난이며 정신병적 언어로서 기존의 언어체계가 불완전함을 말해주는 중요한 지표이다. 기존의 언어체계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말장난인 라랑그를 통해 그 결여를 보상받는다. -김점용/ 슬픔을 긍정하기까지: 시인이 들려주는 우리 시 이야기 


*공시적인 환유는 어근적이고, 통시적인 은유는 의미를 지닌 소리를 가지기 때문(210)이라는 것이다. 라캉은 정신분석 실제 임상에서도 이런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말의 소리는 명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래도 그 효과만큼은 확연하게 확산된다......의심할 여지없이 심리분석가는 그가 사용하는 말의 의미적 울림을 주의 깊게 계산해서, 이것을 불러 일깨움으로써 상징이 가지는 힘에 의거해 유희할 수 있다”(Ulmer, 193).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는 동일음을 라랑그의 차원에서 극대화시킬 때 가능한 것이다. 먼저 ‘의미적 울림’이라는 말에 주목하자. 동일음을 지닌 단어의 유희를 라랑그 차원에서 극대화시킨다는 말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철자의 순서를 바꾸거나 철자를 마음대로 붙였다 떼는 철자변치 놀이를 통해 합성어와 신조어의 자유로운 주조를 뜻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사랑하다의 불어 동사 3인칭형 aimes와 영혼 âme는 같은 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같은 의미이고, 대학(univérsite)은 uni-vers-Cythère(보들레르 시에 나오는 여신)와 같은 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대학 교육은 성교육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말하다(dires)와 욕망(desire)은 순서는 틀리지만 같은 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의미로 간주하고, 읽다(lire)와 매듭(lier)은 같은 소리를 지니고 있기에 글을 읽는다는 것은 매듭을 푸는 것만큼이나 힘이 든다는 것을 함축한다고 주장하는, 일종의 말의 유희이며 재치이다(이렇게 보면 특히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이론가들의 글들은 매듭이고 우리 독자는 이리저리 꼬여있는 매듭을 푸는 듯한 독서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라캉은 자신의 세미나를 진행하는 동안 끊임없이 이런 유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라랑그에 확고한 신념을 표명했다. “라랑그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모든 효과를 제시한다. 이 효과는 말하는 사람이 언명되어진 지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을 이미 넘어선 지식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라랑그가 지니고 있는 고유기술이다. 그리고 우리가 라랑그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보편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훨씬 능가한다.” 이 지극히 개인적이라서 수수께끼 같은 라랑그는 쥬이상스와 연결되며, 사차원적 의미라는 것이 라캉의 말이다. 즉 1차 의미는 sense, 2차 의미는 nonsense, 3차 의미는 common-sense, 그리고 가장 고차원의 4차의 의미는 joui-sense 즉 의미유희이다. 4차원적인 의미인 이 쥬이상스가 바로 라랑그이며 이는 근원적인 실체를 다루며 무의식을 소환한다는 것이다. 이는 꿈과 무의식의 언어로 기의가 된다. 왜냐하면 라캉은 “기의란 꿈마다 다시 나타나는 그리고 잠재해 있는 의미(혹은 개인적인 컨텍스트)와 일치하는 주제”(위의 책, 92, 193-204)이기 때문이다. 은유는 ‘시적인 빛’(158)이며 무의미에서 의미가 생성될 때 생기며, 모든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점진적인 발전을 통해 ‘부계의 신비’를 생성하며, 이것을 경멸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을 멸시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주지시킨다(158). -김보현/ 라캉의 라랑그 (원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indbomb&logNo=1004759770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이 단어는 어떤 정상성도 거부하는 불법적 쾌락 공간으로서의 언어, 혼란스럽고 복수적인 동음이의어, 말장난, 불규칙한 은유적 연결과 울림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슬라보예 지젝/ 하우투리드 라캉 






빛보다빠르게미래로달아나라 -이상,삼차각설계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