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에 대한 소론


<Martin Parr, 2001> 



탁월하다는 것에 대해서 요즘 생각해본다. 

차이의 차이, 영원회귀하는 차이, N개의 차이 등등. 

탁월함의 근저에는 '차이있음'에 가닿아있다. 

무언가 다른, 무언가 뛰어난, 무언가 가닿는...

면모를 발휘 할 때 탁월함이 등장한다. 


#상황1

시인을 섭외해야해서 이메일을 한 번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평범한 답장 속의 어휘는 정말 시적으로 탁월했다. 

또 한번은 한글학자를 섭외해야 해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돌아온 답장 속에서 정갈하고 정확한 어순의 배치를 보고서 탁월함을 느낀 적이있다.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탁월한 순간들을 만날 때면 

테크네(techne)와 아르테(arte)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탁월함은 테크네와 아르테가 동시에 발현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탁월함의 속성으로서의 테크네와 아르테가 있다면 

탁월함이 드러나는 장소, 즉 자리에 따라서 탁월함은 또 다르게 변주된다. 

공적 영역에서 탁월함은  '품위' 속에서 드러난다. 

주변의 것과 어울림 속에서 드러나는 '품위'는 



#한나 아렌트 

인간 실존의 여러 조건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생물학적 삶 자체, 탄생성과 사멸성, 세계성, 다원성 그리고 지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렌트는 이러한 조 건과 한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근본활동으로 노동․작업․행위의 활동 적 삶을 제시하고 그 중에서도 행위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우월한 행위를 통해 인간의 탁월함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은 공적 영역으로, 아렌트는 그러한 공적 영역의 전형으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들고 있다. 폴리스는 경제적으로 얽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 서로 동등한 상황에서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공간이 었으며, 이성적인 말과 정의로운 행위가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은 사람’의 탁월함은 이상적인 시민의 삶을 전제하고 있다.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 

좋은 시민의 탁월함과 좋은 사람의 탁월함은 다를 수 밖에. 

좋은 사람이 좋은 시민이 되는 것.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향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가계 영역의 경제적 필요에 종속 된 사람은 좋은 시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 다.27) 앞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에 대해 규정한대로 그가 전제하고 있는 26)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책, p.42. - 18 - 것은 바로 ‘정치적 동물’로 규정된 인간이 자신의 개성을 유감 없이 발휘하 는 것이다. 그러한 정치성이 발현 가능한 공간은 종속된 관계로 고착된 가 계 영역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 주어진 폴리스인 것이다.  물론 좋은 시민 탁월함과 좋은 사람의 탁월함은 다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면서 좋은 시민이 아닌 경우도 있다. 또한 나쁜 사람이 좋은 시민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 람이 좋은 시민일 수 있을 때가 가장 이상적인 경우이며 최선의 국가에서 그러한 경우가 가능하 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위의 책, p.158.


-니체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1장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의 장에서  

노예의 도덕에서는 선함과 악함이 그 가치기준이 되고 

주인의 도덕에서는 탁월함과 열등함이 그 가치기준이 된다고 보고있다. 

희대의 썅놈으로 불리는 로대제국의 황제 카이사르를 주인의 도덕의 가치로 평가하며 

엄지손가락 희번덕스럽게 치켜세우는 니체의 모습에 약간은 어리둥절 해진다.  



-미생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의 초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무도 일을 시키지 않는 사무실. 그 곳에서 장그래는 온갖 잡무들을 

묵묵히 수행해가면서 폴더트리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잡문들을 고치기도 한다. 

그 시간, 자신의 탁월함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플라톤 

플라톤이 말하는 탁월함arte는 조금 다른 차원이긴 하다. 


-신형철 

나는 누군가에게 경이롭도록 영웅적인 행위를 할 수도 있고, 내게 일어나는 경이로운 일을 체험할 수도 있다. 그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신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물음과 같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아레테(arete) 개념, 즉 삶에서의 탁월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 호메로스 세계에서의 탁월성이란 결정적으로 감사와 경외의 느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115쪽) 그렇게 신들에게 감사할 때 삶은 성스러워진다. 이와 같은 상태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은 애초에 떠오를 수조차 없을 것이다. 

요컨대 그리스적 삶의 핵심은 이것이다. 그들은 하이데거적인 의미에서 '퓌시스', 즉 '성스러움이 출현하는 순간'을 경험했고 그것에 자신을 겸허하게 내맡기면서 '아레테'의 상태, 즉 의미로 충만한 탁월한 삶의 상태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는 것. '퓌시스'와 '아레테'의 삶, 저자들이 말한 제3의 길은 결국 이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호메로스가 그려낸 올림포스의 신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을 부여해준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실존의 기쁨과 슬픔을 보증해주는 성스러움 말이다. 이 호메로스의 신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신이 죽은 이 시대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이야말로 일신주의의 몰락에서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방법이며, 허무주의적인 실존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방법이다."(114쪽)



-아레테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인간의 탁월성은 "아레테"(arete)라는 말로 표현했다.

 "아레테"는 "간청하다"(araomai)라는 동사에서 왔다고 한다. 

"즉 아레테는 인간이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자질이 아니라, 어떤 실천적 상황을 해결하려고 할 때 신에게 청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는 얘기다. 인간을 벗어난 초월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레테"는 "virtue"보다 동양의 "덕"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인에게 "아레테"는 반드시 "감사"와 짝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레테를 이룬 사람의 적절한 반응은 신께 감사하는 것이다. 동양의 "덕"이 반드시 "겸양"과 짝을 이루듯이 말이다. 이런 감사와 겸양의 태도에는 인간을 한계적인 존재로 보고, 더 큰 세상의 원리에 복속해야 한다는 세계관이 깔려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덕"을 인간적 노력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서양의 virtue 이건 동양의 德 이건, 개인의 지혜와 실천을 통해 탁월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의 순간마다 나 자신이 가진 가치와 지혜에 의해 선택하고, 그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는 실천이 덕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고대의 아레테를 현대의 언어로 옮길 수도 있다. 신에게 청한다는 말은 곧 내 외부의 의미들을 간절히 원하고 몰입하고 받아들인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내놓기 위해 꼼꼼히 장을 보면서 맛을 뽑아내기 위해 신선한 재료들을 간절히 찾아내는 주부처럼 말이다. 그 주부는 그런 방식으로 시작해서, 불의 성질과 삶고 지지는 시간과 양념의 자질을 하나하나 얻어내서 마침내 요리의 아레테를 이룬다. 주부가 다행히 온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를 완성해서 내놓았다면, 그가 느끼는 마음은 감사와 행복감이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무슨 가치이거나, 나의 내면적 원천에서 영웅적으로 솟아난 위대한 의미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간절한 관심이해(interest)에 대하여 세상이 내려준 축복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일상에서 늘 갈고 닦은 사람들은 모든 삶의 순간에서 경이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된다. 자기 확신에 빠져 모든 의미의 생성을 자기에게서 찾는, 일명 "재수없는" 인간이 되지 않는 법, 그리고 그와 반대로 모든 의미의 원천을 신이나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나약하고 무력한 수용자가 되지 않는 법, 이러한 중간의 길도 우리에게는 충분히 주어져 있다." 

새벽에 눈을 떠서는, 최근 회사에서 만든 책을 다시 한 번 읽다가 또 공감의 마음을 못 참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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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에 관한 소론

어둠의 질감, 어둠의 깊이, 어둠의 고도, 어둠의 시차, 어둠의 시간 등등 


어둠은 그 의미를 변곡하면서 드러낸다. 어둠의 농도 그 속에서 나는 쓴다. 


그 장소를 떠나기 위해 나는 쓴다. 






# 김광석/ 일어나 

" 어둠 한 가운데 서있어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겠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눈 앞이 캄캄함. 어디를 둘러봐도 별 소용없는 어둠. 

길은 보이지 않고 인간 앞에 드러선 막연한 압도감. 무엇을 해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의 부정의 압도감. 

그 어둠의 한 가운데. 희망이 지워진 자리에 절망으로만 남은 이들. 앞(미래)을 내려다 볼 수 없는 불안함이 

'낙담'한 채로 어둠 속에 있거나 '성급'하게 어둠을 헤쳐나가려고 신기루의 희망을 만들어 내거나.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거 뿐인가. 




#원피스 /어둠어둠 열매 

"어둠이란 곧 인력. 한 줄기 빛 마저도 놓치지 않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힘" 


-끌어당기는 힘. 원피스 마샬 D 티치의 능력은 어둠어둠열매다.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놓치지 않는 힘. 

어둠은 끓어당긴다. 두려움과 좌절과 절망들을 증폭시킨다. 
긍정의 요소들마저도 끓어다 놓는다.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것. 
그 압도감. 죄와 원한의 감정. 어둠은 단지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김으로서 어둠은 존재하는 것이다.  




# 이계삼/ 교육의 불가능성

" 선생님의 어둠에 대하여. 결국은 불행함에 대하여.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사람은 아는 만큼 비극적인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내 행복은 무지의 선물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행복감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불행함. 불행감. 어둠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가능성, 불-행함과 같이 말이다. 

 [각주:1]은 모든 것을 부정(아님)으로 변환시킨다. 이 글짜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질감이 어둠과 흡사하다. 

 부정의 블록(접두사)으로 어떤 단어나 글짜에 내려와 앉아 있는 것이 그렇다. 

 '不' 한 것들. 괴롭히고 빼앗은 不한당의 어미가 아닐까. 




#니체 /아침놀 

"이 사람은 구멍을 뚫고, 파내고, 파 엎는 일을 하고 있다. 그와 같이 깊은 곳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안목이 있다면, 그가 오랫동안 빛과 공기를 맛보지도 못하고 고생을 거의 입 밖에 내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천천히 신중하게, 또 온화하지만 가차없이 전진해 가는 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암흑 속에서 그는 만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떤 신념이 그를 인도하고, 어떤 위로가 그 노력의 보상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어쩌면 그는 자기가 결국 무엇에 도달할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즉 자신의 아침, 자신의 구원, 자신의 아침놀에 도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긴 암흑, 그 이해하기 어렵고 비밀스럽고 수수께끼같은 것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틀림없이 그는 돌아온다." 


-니체는 김광석의 어둠과는 달리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어둠 속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어둠 속에서 한탄과 절망에 압도되어 있지 않다. 천천히, 신중하게, 온화하게, 대담하게 어둠 속에서 작업을 벌인다. 

그 암흑 속에서 그 어떤 위로와 보상도 없지만 니체는 알고 있다. 이 어둠 속에서 작업(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구원과 맞닿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결국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것. 긍정의 긍정의 사유. 비밀스럽고 수수께기같은 

어둠 속에 구멍을 뚫고, 패내고, 파엎으며 그가 도달하려고 했던 구원과 해방의 루트. 결국 어둠의 잠수사, 어둠의 탄광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구멍을 뚫고 있는 현재, 지금, 그 과정 전체. 그것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선우 / 옆

"땅 밑 어둠속/ 옆에서 옆으로 번져간 뿌리줄기/ 자기 옆의 슬픔에 가만히 기댄 듯한, // 꽃을 본 적 없는데 꽃의 향내를 품게 된 내 캄캄한 당신의 옆" 


-땅 밑. 옆으로 옆으로 버져가는 뿌리(리좀)들. 땅 밑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지상에 도래할 꽃의 향을 맡을 수 있는 그 옆자리. 니체가 어둠 속에서 사유하는 자라면 

 김선우는 어둠 속에서 향을 맡는다. 도래한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미래'와는 

 다른 것이다. 아직 꽃을 피지 않았지만 나는 냄새가 아니라 이미 꽃을 피기 시작했지만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때 이다. 꽃의 냄새는 미래(아직 오지 않은)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래(이미 와있고 아직 피지 않은)하고 있는 향을 땅 밑 어둠속에서 바로 "당신의 옆" 자리에서 

 도래할 꽃의 향을 맡고 있다. 바로, 옆에서. 





아직 나는 어둠 속(김광석)에 있다. 

가끔은 그 압도감(어둠어둠열매)에 휩쓸려 우.두.커.니 한다. 

모든 감각과 사유들 앞에 不'(교육불가능성)이 붙으면서 게을러진다. 

그 어둠 속에서 천천히,신중히 공부하고 글을 쓰며 온화하고, 대담하게(아침놀) 어둠 속에서 기거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덧 그 어둠 속에 뿌리를 내리고 아직 캄캄하지만 이미 피어나고 있는 꽃(옆)이 피어나고 있음을. 

거대한 희망, 즐거운 희망을 품기보다 이 어둠을 한 발자국씩 걸어가고 있는 

힘찬 두 다리, 번쩍이는 눈빛, 날으는 두 팔, 기울여듣는 귀의 체력을 키워나가는 일. 

그것이 마침내 도달(도래)할 아침놀을 맞이 할 수 있는 어둠-생활자의 필살기가 되어가기를 바래본다. 





<Antoine D’Agata>


  1. 접두사 ‘불-’은 ‘아님, 아니함, 어긋남’의 뜻을 더하는 접두 사로, ‘불가능’, ‘불경기’, ‘불공정’, ‘불규칙’, ‘불균형’, ‘불명예’, ‘불완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것을 부정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접두 사이다. 그러나 위에서 논의한 접두사 ‘반-’이나 ‘비-’가 비교적 그 용법이 분명하고 한정적임에 반해, 접두사 ‘불-’은 그 쓰임새가 상대 적으로 보다 다양하다. 즉, ‘반-’은 주로 반대 관계를 나타낼 때 사 용되고, ‘비-’는 주로 모순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되나, 접두사 ‘불-’ 은 이 양자 모두에 두루 사용된다. ‘불경기’와 ‘호경기’ 그리고 ‘명예’ 와 ‘불명예’는 반대 관계이나, ‘불가능’과 ‘가능’ 그리고 ‘불규칙’과 ‘규 칙’은 모순 관계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접두사 ‘미(未)-’의 용법은 그 사 용이 분명해 같은 계열의 다른 접두사들과 혼동의 여지가 없고 ‘불 (不)-’의 용법은 애매모호하여 맥락에 따라 그 의미를 따져보아야 함 을 알 수 있다. 이제 이것들과 같은 계열에 속하면서도 그 사용에 있 어 서로 혼동의 여지가 많은 ‘비(非)-’, ‘반(反)-’, ‘무(無)-’,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과정에서 우 리는 새로운 부정 접두사 ‘항(抗)-’을 도입하게 될 것이다. -부정 관계에 관한 철학적 소고 /김 영 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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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연결 될 수록 강하다


<David Hurn, 1978> 



"우리는 연결 될 수록 강하다."


이번 코리아퀴어축제에 갔다가 본 슬로건인데 

이 짧고 단순한 문장이 눈에 콱하고 들어왔다. 


연대와 연합에 대해서 가끔씩 생각해보고 한다. 

연대solidarity帶, 연합 unite合에 일단 '연'자의 글짜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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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나치는 인연: 사건화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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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 아이디어 자료

  • POETRY-PUNX
  • 2014. 6. 19. 16:32

중간고사 준비하며

  • POETRY-PUNX
  • 2014. 4. 24. 00:55
특강을 준비하면서 몇 가지 단상들




#1 진로 

이리 저리 특강과 강의를 나가면서 가장 말 꺼내기 무서운 주제 중 하나가 진로이다. 

특히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에 가면 '진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엄청난 

몰입도는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내가 건방지게 무슨 진로에 대해서 떠들 수 있나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태봉고에서 진로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하는데, 한 판 시원하게 

지껄이고 와야 겠다. 


#2 그들의 꿈 

1)일본 제일생명보험이 발표한 전국 초등생(14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장래희망 조사 

+일본 여자아이들의 꿈은 '음식점 주인'

+일본 남자아이들의 꿈은 '축구선수'로 조사됨. 

2)베이징 청소년 연구소가 초등학생 1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21%가 기업의 CEO를 선호 

+20.5%로 연예인 

+18.5%가 과학자 

+가장되기 싫은 직업: 농민, 노동자, 교사 

3)한국직업능력개발원 초등학생에게 미래에 되고 싶은 직업 조사 

+14.7% 운동선수

+13.3% 교사 

+10% 연예인 

+9.7% 의사 

4)SBS세대공감 1억퀴즈쇼 2012년 초등학생 1000명을 대상 장래희망 설문조사 

+1위 공무원 

5)시사인 2009년 초등학생 70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 

+서울 성북구 숭례초 6학년 60명 

  -1위: 재벌과 부자+ 요리사 

  -부모의 경우: 1위 선생님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일초 5학년 26명 

 -1위 서울대(명문대 진학) 

 -부모의 경우: 1위 의사 

*강남권과 강북권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 

링크: https://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4505


하지만 반전은 자신의 장래희망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응답한 것이 거의 50%에 육박하다는 거. 

최근 조사에서는 거의 다 공무원과 대기업직원, 교사로 조사되고 있음 


#3 장래희망 = 꿈= 희망직업 ? ? ? 

학생기록부에 보면 늘 끝임없이 장래희망을 적는 곳이 있었다. 

그 빈칸을 채우기 위해서 한참을 서성였던 기억이 난다. 기록되어야 할 곳을 공란blank로 둔다는 

것은 언제나 불안함을 부추겼다. 학교 선생님에게 부모님에게 "나는 00이 될 꺼야."를 반드시 

말해야지만 그들을 안심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래희망을 적는 빈칸은 모종의 압력이었고 

그건 학부모, 교사가 연합하여 쳐놓은 '꿈찾기'게임에서 던지는 첫 번째 주사위와 같다. 

그들이 짜놓은 '꿈찾기'판에는 '자유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을 위한 자리는 없다. 

반드시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고, 이뤄내야 할 직업의 자리만 있기 때문. 

그 빈칸을 채우는 것은 늘 학생의 몫이라기 보다는 교사와 학부모의 욕망, 요구가 투사projection된 

형태로 채워 질 뿐이다. 그들의 욕망의 대부분은 신화적 욕망(가면의 윤리)의 전위displacement에 

가깝기 때문. 


#4 생각하지 않는 다는 것

신화적 욕망의 전위 속에서 사유없이 지내게 된다면. 

+한나 아렌트의 증언: 아이히만이라는 독일 관료의 이야기. 

  -수백만명의 유대인 학살에 관여한 사람으로 전쟁이 끝나자 마자 아르헨티나로 도망감. 

   하지만 붙잡혀 1960년에 이스라엘의 한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됨. 악마로 불리던 사나이. 

   붙잡힌 이후 각종 정신과 검증을 거쳤으나 의사들은 그를 '정상'으로 판명하기도 함. 어떤 의사는 

   "그는 적어도 그를 진찰할 후의 내 상태보다 더 정상이"라며 말하기도 하였음. 

   그는 그의 증언에서 "친구들 중에 유대인을 미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말하며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생계를 도와주워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이야기함. 

   그는 단지 "명령받은 일을 성실히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이라고 설명. 

  -한나 아렌트의 설명: 그는 아주 부지런히 일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부지런함을 탓할 수 없다. 

   문제는 그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다는데 있다. 

+생각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것들 

  -중독과 각성, 습관과 무감각. 

  -이라크에 파병간 미군들의 헬멧에서 나오는 음악 

  -베트남 전에 쓰러진 미국병사들을 향해 뿌린 각성제, 모르핀, 마약류 


#5 상상의 언어와 현실(현장)의 언어 

 +상상의 언어는 현실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 

  -유클리드 기하학이 가정하고 있는 2차원의 세계에서는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도   

  -헝가리의 수학자 보여이bolyai에 의해 점과 선의 세계는 무너진다. 평행선 공리를 부정하고 

   유클리드 기하학의 전제를 무너뜨린다. 리만rieman의 구면기하학에 따르면 

  3차원 공간에서 삼각형을 그린다면 삼각형 내각의 합은 270도가 된다. 

+상상의 언어, 생각의 어어가 유클리드 기하학에 가깝다면 현실의 언어는 구면기하학에 가깝다. 

  세계라고 불리는 곳의 언어는 나름 객관적 조건에 바탕을 둔다. 경제, 정치, 문화와 같은 것에 기반한다. 

   프로이드의 리비도와 자기보존의 원리의 갈등이 2차원이라면 에릭슨의 사회적 발달이론은 3차원에 가깝다. 

+생각의 언어를 현실세계의 언어(현장)로 번역해내기 위해서는 '경험'(개인적, 사회적,추경험)에 의존한다.   

*질 들뢰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자기 능력에 대한 일종의 시험입니다. 

당신 능력을 시험해 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난 그걸 해내지 못할거야.'

혹은 '그건 너무 창피한 일이야. 난 할 수 없어.'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도 있었을 일들을 포기해버립니다. 

'난 할수 없었을 거야.'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쉬운 일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채 죽습니다. 

+사유의 시작은 강제되는 것에 있다. 사유는 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게끔 조건 지어진다. 


#6 번역의 기술 

+낯선 것을 향하는 모험 

+낯선 감각, 감정, 사유의 여정을 통한 밭갈이 

  -김유신의 경우, 미란다 쥴라이의 공공예술 프로젝트의 경우 

+여행의 감각과 기술(art) 

+방황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 일어나는 사건의 현장 

+사유의 기술과 훈련: 낯선 개념과 낯선 도식과 낯선 패더다임 

+'나'를 사유한다는 것은 세계를 우주를 사유한다는 것이다. 

미쉘푸코: 자기는 자기 의식이나 주체적 자아가 문제되는 '자기'가 아니라 신체를 장으로 하는 

 자기와 자기와의 관계의 문제이다. 


#7 존재의 형식form(존재론)과 존재의 양식style(생존의 방향)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를 형식과 양식으로 나누고 잠태태와 가능태를 나누면서 자신의 존재론을 시작 

+어떻게 살것인가, 어떤 존재가 되려하는가, 어떤 사람이 되고자 하는가 

  -철학적 사유에 의해서 자기와 자기가 맺는 관계의 문제를 설정하고 해결해야 한다. 

   어떤 존재형식(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는 아니고...)을 배치, 구성 할 것인가. 

  -원피스 루피의 경우: "해적왕이 될꺼야. 해적왕은 이 바다에서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야.' 

+존재의 양식은 생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어떻게 생존을 꾸려나갈 것인가. 

  -홍세화: 생존의 공간을 '몸자리'라고 표현하였다. 정말 딱 맞는 말인 듯 하다. 몸자리를 향한 투쟁의 

   과정이 생존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칼 맑스: 맑스의 생존권은 화폐와 연결되고 다시 계급의 문제로 나아간다. 

 -화폐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정확하게 말해 화폐 지불-능력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따라서   

  삶의 양식은 달라진다. 

-존재론과 정치경제학은 현실(현장, 세계)에서 분리 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라 생각한다. 


#8 화폐(지불능력으로서의 화폐)와의 관계 

+지불능력으로서의 화폐의 자리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의 유형 

  -도사, 수행자 

+선물-경제를 통한 화폐-관계 

  -꼬뮌,  종교 공동체 

+원시-경제를 통한 관계 

 -귀농 공동체, 전통적 시골 공동체, 원시 부족 

+자연주의자? 노장의 경우? 

  -소로우, 간디, 에머슨, 토마스 페인

+문화-부족? 공동체? 

 -히피의 경우

+지불능력의 부재로 굶어죽는 일의 어려움 


#9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20살이 되기 전에 찾는 일 

+이지의 <분서>에는 나이 오십 이전의 자신을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었음을 말이다. 

+키에르고르의 일기를 보면 "이번 생에 내가 도달해야 할 것은 내가 진정 무엇은 원하는지 아는 일이다." 

+삶의 초창기에 탁월한 재능을 바탕으로 삶을 풀어냈던 이들은 대부분 죽거나 후기 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 

+20살 전에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그것도 단 하나)를 찾는 다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그리고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 단 한줄의 문장을 이루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사유의 범위와 시간들 


#10 인턴쉽 프로그램의 활용 

+인턴쉽 프로그램을 통해서 세계의 언어감각을 키우는 것, 하지만 부분적일 수 밖에 없다는 한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노동시장의 착취대상)의 세계의 언어감각, 감수성을 키워나갈 수 있다. 

  -계획과 설계, 운영과 관리에 앞서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은 과연 나의 생각인가" "나의 욕망은 과연 

   나의 욕망인가?"에 대한 인문학적 주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 사유의 변증법은 유효하다는 것. 

+장래희망이 희망직업이 될 수 없으며 희망직업이 꿈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장래희망을 무리하게 고집할 필요는 없다. 


#11 '나'라는 공동체의 주변 만들기 

+선언: 상상의 언어로만 꿈을 꾸는 것은 자폐적이고 폐쇄적이다. 하찮은 일이라도 동네 방네 시끄럽게 떠들며 

  조력자, 동지, 벗, 스승, 사부를 모아야한다. 하고 싶은 바가 있으면 가능한 시끄럽게 떠들 것. 친구를 만날 것. 

+강한 주체: 대안학교는 흔히 학생들은 강한주체로 키우고자 한다. 아무리 풍지고 모난 세계에서도 그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강한 주체를 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주체란 "나라는 공동체"의 다른 

 이름이다. 어떻게 '나'라는 공동체를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 앞에 서있어야 한다. 그 질문 앞에서 늘 

 주변을 형성해야 한다. 

+주변의 구성: 조언, 관심을 퍼부어 줄 수 있는 스승님과 사부님, 선배들. 나와 함께 뜻을 해나갈 수 있는 동료와 벗들. 

  나의 상상을 지원해줄 수많은 팬, 동생(후배), 가족, 단체 등등. 

+동영상 자료 : 춤추는 남자에 관한 동영상 자료. 

+자크 라깡: 욕망의 삼각형 구도 


# 12 먹고 사는 문제의 철학적 빈곤 

+먹고 사는(몸자리) 어려움과 정치경제적 구도: 실업률, 화폐가치 저하 

+꿈만 꾸는 자 이슬만 먹어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번역의 시간의 구성 

+두려움의 떨림, 설렘의 떨림 

  -설레임이 두려움보다 더 커질 때(충분히 상상했을 때)벌어지는 흥미진진한 떨림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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