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함에 대한 소론


<Martin Parr, 2001> 



탁월하다는 것에 대해서 요즘 생각해본다. 

차이의 차이, 영원회귀하는 차이, N개의 차이 등등. 

탁월함의 근저에는 '차이있음'에 가닿아있다. 

무언가 다른, 무언가 뛰어난, 무언가 가닿는...

면모를 발휘 할 때 탁월함이 등장한다. 


#상황1

시인을 섭외해야해서 이메일을 한 번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 평범한 답장 속의 어휘는 정말 시적으로 탁월했다. 

또 한번은 한글학자를 섭외해야 해서 이메일을 보냈더니 

돌아온 답장 속에서 정갈하고 정확한 어순의 배치를 보고서 탁월함을 느낀 적이있다. 

무릎을 '탁'치게 만드는 탁월한 순간들을 만날 때면 

테크네(techne)와 아르테(arte)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탁월함은 테크네와 아르테가 동시에 발현되었을 때 일어나는 것이다. 


탁월함의 속성으로서의 테크네와 아르테가 있다면 

탁월함이 드러나는 장소, 즉 자리에 따라서 탁월함은 또 다르게 변주된다. 

공적 영역에서 탁월함은  '품위' 속에서 드러난다. 

주변의 것과 어울림 속에서 드러나는 '품위'는 



#한나 아렌트 

인간 실존의 여러 조건에 대해 한나 아렌트는 ‘생물학적 삶 자체, 탄생성과 사멸성, 세계성, 다원성 그리고 지구’라고 지적하고 있다. 아렌트는 이러한 조 건과 한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근본활동으로 노동․작업․행위의 활동 적 삶을 제시하고 그 중에서도 행위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우월한 행위를 통해 인간의 탁월함이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은 공적 영역으로, 아렌트는 그러한 공적 영역의 전형으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들고 있다. 폴리스는 경제적으로 얽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 서로 동등한 상황에서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내는 공간이 었으며, 이성적인 말과 정의로운 행위가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좋은 사람’의 탁월함은 이상적인 시민의 삶을 전제하고 있다.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 

좋은 시민의 탁월함과 좋은 사람의 탁월함은 다를 수 밖에. 

좋은 사람이 좋은 시민이 되는 것.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상향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에, 가계 영역의 경제적 필요에 종속 된 사람은 좋은 시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 다.27) 앞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에 대해 규정한대로 그가 전제하고 있는 26)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책, p.42. - 18 - 것은 바로 ‘정치적 동물’로 규정된 인간이 자신의 개성을 유감 없이 발휘하 는 것이다. 그러한 정치성이 발현 가능한 공간은 종속된 관계로 고착된 가 계 영역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 주어진 폴리스인 것이다.  물론 좋은 시민 탁월함과 좋은 사람의 탁월함은 다르다. 그리고 좋은 사람이면서 좋은 시민이 아닌 경우도 있다. 또한 나쁜 사람이 좋은 시민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은 사 람이 좋은 시민일 수 있을 때가 가장 이상적인 경우이며 최선의 국가에서 그러한 경우가 가능하 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위의 책, p.158.


-니체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1장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의 장에서  

노예의 도덕에서는 선함과 악함이 그 가치기준이 되고 

주인의 도덕에서는 탁월함과 열등함이 그 가치기준이 된다고 보고있다. 

희대의 썅놈으로 불리는 로대제국의 황제 카이사르를 주인의 도덕의 가치로 평가하며 

엄지손가락 희번덕스럽게 치켜세우는 니체의 모습에 약간은 어리둥절 해진다.  



-미생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의 초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무도 일을 시키지 않는 사무실. 그 곳에서 장그래는 온갖 잡무들을 

묵묵히 수행해가면서 폴더트리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잡문들을 고치기도 한다. 

그 시간, 자신의 탁월함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었을 것이다. 


-플라톤 

플라톤이 말하는 탁월함arte는 조금 다른 차원이긴 하다. 


-신형철 

나는 누군가에게 경이롭도록 영웅적인 행위를 할 수도 있고, 내게 일어나는 경이로운 일을 체험할 수도 있다. 그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신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물음과 같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아레테(arete) 개념, 즉 삶에서의 탁월성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 호메로스 세계에서의 탁월성이란 결정적으로 감사와 경외의 느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115쪽) 그렇게 신들에게 감사할 때 삶은 성스러워진다. 이와 같은 상태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은 애초에 떠오를 수조차 없을 것이다. 

요컨대 그리스적 삶의 핵심은 이것이다. 그들은 하이데거적인 의미에서 '퓌시스', 즉 '성스러움이 출현하는 순간'을 경험했고 그것에 자신을 겸허하게 내맡기면서 '아레테'의 상태, 즉 의미로 충만한 탁월한 삶의 상태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는 것. '퓌시스'와 '아레테'의 삶, 저자들이 말한 제3의 길은 결국 이 두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 

"호메로스가 그려낸 올림포스의 신들은 그리스인들에게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을 부여해준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실존의 기쁨과 슬픔을 보증해주는 성스러움 말이다. 이 호메로스의 신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야말로 신이 죽은 이 시대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것이야말로 일신주의의 몰락에서 우리를 살아남게 하는 방법이며, 허무주의적인 실존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방법이다."(114쪽)



-아레테

고대 그리스 시대에 인간의 탁월성은 "아레테"(arete)라는 말로 표현했다.

 "아레테"는 "간청하다"(araomai)라는 동사에서 왔다고 한다. 

"즉 아레테는 인간이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자질이 아니라, 어떤 실천적 상황을 해결하려고 할 때 신에게 청함으로써 가질 수 있는 능력이었다는 얘기다. 인간을 벗어난 초월적이고 전체적인 차원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레테"는 "virtue"보다 동양의 "덕"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인에게 "아레테"는 반드시 "감사"와 짝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레테를 이룬 사람의 적절한 반응은 신께 감사하는 것이다. 동양의 "덕"이 반드시 "겸양"과 짝을 이루듯이 말이다. 이런 감사와 겸양의 태도에는 인간을 한계적인 존재로 보고, 더 큰 세상의 원리에 복속해야 한다는 세계관이 깔려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덕"을 인간적 노력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서양의 virtue 이건 동양의 德 이건, 개인의 지혜와 실천을 통해 탁월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의 순간마다 나 자신이 가진 가치와 지혜에 의해 선택하고, 그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는 실천이 덕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고대의 아레테를 현대의 언어로 옮길 수도 있다. 신에게 청한다는 말은 곧 내 외부의 의미들을 간절히 원하고 몰입하고 받아들인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내놓기 위해 꼼꼼히 장을 보면서 맛을 뽑아내기 위해 신선한 재료들을 간절히 찾아내는 주부처럼 말이다. 그 주부는 그런 방식으로 시작해서, 불의 성질과 삶고 지지는 시간과 양념의 자질을 하나하나 얻어내서 마침내 요리의 아레테를 이룬다. 주부가 다행히 온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요리를 완성해서 내놓았다면, 그가 느끼는 마음은 감사와 행복감이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무슨 가치이거나, 나의 내면적 원천에서 영웅적으로 솟아난 위대한 의미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에 밀착해서 살아가는 사람의 간절한 관심이해(interest)에 대하여 세상이 내려준 축복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일상에서 늘 갈고 닦은 사람들은 모든 삶의 순간에서 경이와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예술가가 된다. 자기 확신에 빠져 모든 의미의 생성을 자기에게서 찾는, 일명 "재수없는" 인간이 되지 않는 법, 그리고 그와 반대로 모든 의미의 원천을 신이나 타인에게 맡겨버리는 나약하고 무력한 수용자가 되지 않는 법, 이러한 중간의 길도 우리에게는 충분히 주어져 있다." 

새벽에 눈을 떠서는, 최근 회사에서 만든 책을 다시 한 번 읽다가 또 공감의 마음을 못 참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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