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관한 소론

어둠의 질감, 어둠의 깊이, 어둠의 고도, 어둠의 시차, 어둠의 시간 등등 


어둠은 그 의미를 변곡하면서 드러낸다. 어둠의 농도 그 속에서 나는 쓴다. 


그 장소를 떠나기 위해 나는 쓴다. 






# 김광석/ 일어나 

" 어둠 한 가운데 서있어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둘러봐도 소용없겠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눈 앞이 캄캄함. 어디를 둘러봐도 별 소용없는 어둠. 

길은 보이지 않고 인간 앞에 드러선 막연한 압도감. 무엇을 해볼 엄두도 나지 않을 정도의 부정의 압도감. 

그 어둠의 한 가운데. 희망이 지워진 자리에 절망으로만 남은 이들. 앞(미래)을 내려다 볼 수 없는 불안함이 

'낙담'한 채로 어둠 속에 있거나 '성급'하게 어둠을 헤쳐나가려고 신기루의 희망을 만들어 내거나. 

어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이거 뿐인가. 




#원피스 /어둠어둠 열매 

"어둠이란 곧 인력. 한 줄기 빛 마저도 놓치지 않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힘" 


-끌어당기는 힘. 원피스 마샬 D 티치의 능력은 어둠어둠열매다.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놓치지 않는 힘. 

어둠은 끓어당긴다. 두려움과 좌절과 절망들을 증폭시킨다. 
긍정의 요소들마저도 끓어다 놓는다. 모든 것을 폐허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것. 
그 압도감. 죄와 원한의 감정. 어둠은 단지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끌어당김으로서 어둠은 존재하는 것이다.  




# 이계삼/ 교육의 불가능성

" 선생님의 어둠에 대하여. 결국은 불행함에 대하여. 선생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었지요. 사람은 아는 만큼 비극적인 것인가? 그렇다면 지금의 내 행복은 무지의 선물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행복감의 실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 


-불행함. 불행감. 어둠은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가능성, 불-행함과 같이 말이다. 

 [각주:1]은 모든 것을 부정(아님)으로 변환시킨다. 이 글짜가 가지고 있는 언어적 질감이 어둠과 흡사하다. 

 부정의 블록(접두사)으로 어떤 단어나 글짜에 내려와 앉아 있는 것이 그렇다. 

 '不' 한 것들. 괴롭히고 빼앗은 不한당의 어미가 아닐까. 




#니체 /아침놀 

"이 사람은 구멍을 뚫고, 파내고, 파 엎는 일을 하고 있다. 그와 같이 깊은 곳에서 작업하는 모습을 보는 안목이 있다면, 그가 오랫동안 빛과 공기를 맛보지도 못하고 고생을 거의 입 밖에 내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천천히 신중하게, 또 온화하지만 가차없이 전진해 가는 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암흑 속에서 그는 만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떤 신념이 그를 인도하고, 어떤 위로가 그 노력의 보상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어쩌면 그는 자기가 결국 무엇에 도달할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즉 자신의 아침, 자신의 구원, 자신의 아침놀에 도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긴 암흑, 그 이해하기 어렵고 비밀스럽고 수수께끼같은 것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틀림없이 그는 돌아온다." 


-니체는 김광석의 어둠과는 달리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다. 어둠 속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어둠 속에서 한탄과 절망에 압도되어 있지 않다. 천천히, 신중하게, 온화하게, 대담하게 어둠 속에서 작업을 벌인다. 

그 암흑 속에서 그 어떤 위로와 보상도 없지만 니체는 알고 있다. 이 어둠 속에서 작업(사유)한다는 것은 결국 

구원과 맞닿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결국 도달하게 될 것이라는 것. 긍정의 긍정의 사유. 비밀스럽고 수수께기같은 

어둠 속에 구멍을 뚫고, 패내고, 파엎으며 그가 도달하려고 했던 구원과 해방의 루트. 결국 어둠의 잠수사, 어둠의 탄광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구멍을 뚫고 있는 현재, 지금, 그 과정 전체. 그것을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선우 / 옆

"땅 밑 어둠속/ 옆에서 옆으로 번져간 뿌리줄기/ 자기 옆의 슬픔에 가만히 기댄 듯한, // 꽃을 본 적 없는데 꽃의 향내를 품게 된 내 캄캄한 당신의 옆" 


-땅 밑. 옆으로 옆으로 버져가는 뿌리(리좀)들. 땅 밑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지상에 도래할 꽃의 향을 맡을 수 있는 그 옆자리. 니체가 어둠 속에서 사유하는 자라면 

 김선우는 어둠 속에서 향을 맡는다. 도래한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미래'와는 

 다른 것이다. 아직 꽃을 피지 않았지만 나는 냄새가 아니라 이미 꽃을 피기 시작했지만 

 아직 꽃이 피지 않은 때 이다. 꽃의 냄새는 미래(아직 오지 않은)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도래(이미 와있고 아직 피지 않은)하고 있는 향을 땅 밑 어둠속에서 바로 "당신의 옆" 자리에서 

 도래할 꽃의 향을 맡고 있다. 바로, 옆에서. 





아직 나는 어둠 속(김광석)에 있다. 

가끔은 그 압도감(어둠어둠열매)에 휩쓸려 우.두.커.니 한다. 

모든 감각과 사유들 앞에 不'(교육불가능성)이 붙으면서 게을러진다. 

그 어둠 속에서 천천히,신중히 공부하고 글을 쓰며 온화하고, 대담하게(아침놀) 어둠 속에서 기거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덧 그 어둠 속에 뿌리를 내리고 아직 캄캄하지만 이미 피어나고 있는 꽃(옆)이 피어나고 있음을. 

거대한 희망, 즐거운 희망을 품기보다 이 어둠을 한 발자국씩 걸어가고 있는 

힘찬 두 다리, 번쩍이는 눈빛, 날으는 두 팔, 기울여듣는 귀의 체력을 키워나가는 일. 

그것이 마침내 도달(도래)할 아침놀을 맞이 할 수 있는 어둠-생활자의 필살기가 되어가기를 바래본다. 





<Antoine D’Agata>


  1. 접두사 ‘불-’은 ‘아님, 아니함, 어긋남’의 뜻을 더하는 접두 사로, ‘불가능’, ‘불경기’, ‘불공정’, ‘불규칙’, ‘불균형’, ‘불명예’, ‘불완전’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어떤 것을 부정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접두 사이다. 그러나 위에서 논의한 접두사 ‘반-’이나 ‘비-’가 비교적 그 용법이 분명하고 한정적임에 반해, 접두사 ‘불-’은 그 쓰임새가 상대 적으로 보다 다양하다. 즉, ‘반-’은 주로 반대 관계를 나타낼 때 사 용되고, ‘비-’는 주로 모순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되나, 접두사 ‘불-’ 은 이 양자 모두에 두루 사용된다. ‘불경기’와 ‘호경기’ 그리고 ‘명예’ 와 ‘불명예’는 반대 관계이나, ‘불가능’과 ‘가능’ 그리고 ‘불규칙’과 ‘규 칙’은 모순 관계이다. 우리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접두사 ‘미(未)-’의 용법은 그 사 용이 분명해 같은 계열의 다른 접두사들과 혼동의 여지가 없고 ‘불 (不)-’의 용법은 애매모호하여 맥락에 따라 그 의미를 따져보아야 함 을 알 수 있다. 이제 이것들과 같은 계열에 속하면서도 그 사용에 있 어 서로 혼동의 여지가 많은 ‘비(非)-’, ‘반(反)-’, ‘무(無)-’, 사이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 과정에서 우 리는 새로운 부정 접두사 ‘항(抗)-’을 도입하게 될 것이다. -부정 관계에 관한 철학적 소고 /김 영 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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