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전환이 도래하고 있다.
1
하나의 전환이 도래하고 있다. 그것은 이미 용산참사 이후로 시작된 시대적 질문들에 의해서 발진되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도대체. 이해되지 않은/ 비현실적인 일들이 자행되었다. 초현실이 현실이 되는 스펙터클 앞에서 질문은 시작되었다. 후쿠시마 원전사태, 밀양송전탑, 강정해군기지, 콜트콜텍과 쌍용자동차, 그리고 4대강. '도대체'룰 붙이지 않고는 받아들이기는 힘든 사태가 습격했다.  질문은 시작되었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해결되지않음으로서 남는 절망과 무력들의 표정들은 쉽게 지치고 너저분해진다. 

2
이야기의 생명력은 '모르는 것'에 있다는 벤야민의 말처럼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사태들 앞에서 전환의 이야기들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음으로. 모르는 것이 있음으로 탐구자들과 이야기꾼들을 불러모았다. 지하에 있던 이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결국 무엇에 도달할지 모르는 것에 달려들었다.  그 생명력은 희망버스를 불렀고, 지칠 줄 모르는 연대의 망을 낳았으며, 녹색당을  견고하게 했고, 시민으로서의 삶에 대한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낡은 신념들은 모험과 실험 앞에서 늙어갔다.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3
우리는 시를 잃었다. 누군가 아플 때 "할미 손은 약손"이라고 문질러 주던 그 시적인 것들을 몽땅 빼앗겼다. 이제 오직 구원은 병원에서만 가능하다. 진단과 집행의 최종권자인 의시와 병원은 전지전능한 '말'을 행사한다. 오직 독점이다. 권력의 독점과 자본, 문화, 소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독과점 구조가 완성형에 가깝게 이루어졌다.  향후 10년 뒤의 모습은 단일한 시장권역을 전 세계를갈라 놓을 것이다. 독점은 우리에게서 시적 가능성을 말살시켰다. 어떤 가능성으로서의 시적인 것들은 "그럴수 있다"의 세계다. 그러나 독점의 공간에서는 가능성이 아니라 오직 기능성에 의해서 가치매겨지는 지난한 삶의 굴곡들이 있을 뿐이다. 가능성을 잃은 세계에서 할미 손은 피해야 할 그 이상이 되지 않는다. 시를 잃었다. 

4
우리는 사회를 잃었다. 어딘가에 홍수가 났을 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삽으로 물을 퍼 나르던 '우리의 가능성의 능력'을 빼앗겼다. 전지전능한 국가의 명령을 복기하는 경찰, 군대, 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구들은 모든 가능성들을 차단하고/ 시장과 기업들의 폭격들은 철저히 우리를 고립시켜 각자도생의 윤리들를 가르치고 있다. 능력들의 가능성. 그것이 사회다. 그것은 '감히' 우리라고 말하게 하고 '감히' 서로를 드려다보게 한다. 우리는 사회를 잃었다. 

5
우리는 '자기'를 잃었고 '사랑'을 잃었으며 '아름다움'을 잃었고 그래서 '우정'을 잃었다. 이제 모든 걸 잃기 직전이다. 예감한다. 우리에게 남은 건 건강을 챙기는 것, 가족을 꾸리고 사랑하는 것, 행복과 웃음을 챙기는 것 뿐이다. 이것들은 최후의 마술. 열광시키는 최후의 술수. 마법과 술수에 잃어버린 것들을 세어본다. 잃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애초에 역사란 무엇을 잃어 버리게 할 것인가에 대한 주석에 불과하다. 

6
그렇다면 전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생의 치받음, 시대의 치받음에서 시작된다. 절박해졌을 때는 도무지 견딜 수 없을 때이다. 안절부절이 아니라 단도직입로 나아가는 지점이 절박이다. 그것은 어떤 치받음에서 시작된다. 카프카의 모든 현실은 절박함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그렇다. 바뀌지 않을 수 없을 때 전환은 가능하다. 전환과 혁명의 닮은 표정은 이 지점이다. 

7
새끼악어를 삼킨 비단뱀은 새끼 악어 등짝에 솟은 날카로운 돌기에 내장이 찢겨 죽었다. 자, 새끼악어의 저 날카로운 돌기에서 거대한 비단뱀은 다시 새끼 악어를 토했다. 무엇인가, 여기서 나는 희망을 간신히 빌견한다. 결국 집어 삼킬 것이다. 거대한 것들의 횡포의 주둥이가 나를 베어물고 유유히 젶어 삼킬 것이다. 그 때에 내 등에 돌기를 솟게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과 나의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 

8
저기 지치지 않는 까마귀떼들이 보인다. 굶주려있고 부리들은 무언가를 쪼기 위해 희번떡하다.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이들은 용산참사 이후로 시작된 비현실적 초현실의 검은색으로 다가서고 있다. 희망적이지도 짙은 믿음을 기반으로 둔 것이 아니다. 그저 어쩔꺼야? 이런데도? 계속 그럴려고? 오히려 겁박한다. 우리는 희망이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절망을 만날 준비를 해야한다. 희망에서 시작하는게 아니라 절망에서 시작하는 지점에서 전환은 시작 될 것이다. 이것이 혁명과 전환의 다른 표정이다. 


9
"가능한 우리 자신이 주권자가 되어 작은 실험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니체는 말했다. 
여기서 '국가'라는 말은 빼버려도 좋을 것이다. 가능한 우리는 작은 실험들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작은 실험들을 도모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해소'의 지점이자, '전환'의 자리다. 
나의 비겁한 자리를 묻는다. 겁이 많아 뒷걸음 치기만 수십번에, 막상 판이 벌어지면 두려움에 가장 먼저 
휩싸여 판을 어지럽히곤 했다. 가장 먼저 나섰지만 가장 먼저 돌아서 나왔다. 치졸함의 전략들. 
이것들을 통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다. 괴로워야 할 이유도 특별히 없다. 그 때의 나는 
그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최선의 전략이었음을 느낀다. 나도, 당신도 그럴 것이다. 
인간의 선택은 그 때의 최선, 살아온 만큼의 최선이다. 그 최선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다. 
그 최선의 무수한 선택들이 스스로를 폭로하는 것이다. 전환의 자리에 나의 선택이 폭로되는 순간 
'실험'과 '모험'이 터져나왔으면 한다. 그것이 존재의 최선이 될 수 있게 가능한 멀리 바라 볼 것이다. 

10
"삶의 얼굴은 죽지 못한 죽음들의 표정이다." 휘덜린이 미친듯 휘갈긴 이 한 줄에서 미래를 바라본다. 
 전환의 얼굴은 죽지 못한 실험들의 표정이다. 이렇게 바꾸어 불러도 좋으리. 
 조금은 믿어보기로 한다. 
 지금 보다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기를. 
 지금 보다 조금은 더 낫게 될 수 있기를. 


<만화 빌리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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