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그 어둠의 짜세


2011. 4. 13
개구리 알을 뱗은 두꺼비의 심정

절망에 대한 생각이 절망이다.
봄날 살풀린 시냇가.
개구리 알이 고르르 눈알을 굴린다.
하얗게 자리잡은 두꺼비 개구리 알을 밟는다.
절망에 대한 생각은 절망을 불러일으킨다.
정확하게 절망에 대한 생각이 절망이다.
어미 개구리를 살핀다. 아비 개구리는 없다.
자, 두꺼비 다음 발을 떼지 않는다.
다음발을 때는 순간 몸의 무게가 실려
개구리 알이 터질지 모를 노릇이다.
두꺼비 단 한 번은 꿈벅임이 없다.
그 발바닥에 터진 올챙이 눈깔이 달려있을지
두꺼비 발바닥 온기에 온통 몽긍몽글해졌을지
오직 어미 개구리와 두꺼비만 안다
두꺼비 한참을 그 자리에 발 붙이고 서있다
절망을 불러일으키는 건 당신인가 나인가?

2012..4.5
사회학이라는 죄

사회학적 상상력에 영혼이 없다. 얼마전 읽은 베버의 글은 정확하게 그랬다. 어떤 여지 없이 몰아세우는 유지막심한 그 손가락질에 이제 사회학적 상상력을 믿지 않기로 한다. 그래도 이반 일리치가 있을 땐 이렇지 않았는데, 언어가 모욕스럽다. 영혼, 그 떨림없이 쓰는 글은 대부분 헛발질이고, 읽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김현 선생은 이런 나를 두고 "천하의 바보노릇"하고 있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2013. 4. 9
문학은 주어지는가?

문제집 답안지를 펼친다
오답들을 쏟아낸다
답안지가 책 가장 끝에 있는건 부끄러워서다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서 글자도 작은거다
그래서 진리의 세계가 허망한거다
도업을 이루고자 하는 그 허망한 스윙
자신을 버려야만 가능한 백스윙 앞에서 오히려
진리의 세계가 지혜의 세계로 건너온다
오답노트- 오답들의 108배, 여기서 지혜의
발바닥들이 문제들을 주욱주욱 그으며 치솟는다
문학은 그 뒤에 남는 하나의 상흔, 구멍일 뿐이다
그 구멍의 세계에서 가부좌트는 것,
무릎 파르르 떠는 것, 예술의 짜세


2014. 4.11
산책의 보폭

좋은 산문은 산책할 때의 걸음의 보폭을 지녔다.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문을 잘 쓸 것임에 틀림없다.
그 리듬이 가져다 주는 문장은, 삶은 분명히
모든 것에 개입할 것임에 틀림없다.
패턴이 리듬을 만든다. 틀림없다.
오늘 이성복의 산문을 읽고나서
미쳤군, 미쳤어, 이런 미친 영감탱이

좋은 시는 산책의 보폭과는 다르다
그들은 땅을 계속 걷지 않는다
유령의 호흡, 부양하는 마이클 조단의 에어워크
땅에는 그림자 뿐이고 공중/허공/ 심연을
걷는/뛰는/춤추는/ 취한 걸음에 있다
그래서 미쳤군 미쳤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미 미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좋은 시는 산책의 무위 그, 이후
그 다음, 그 너머에서 미치게 만든다
발화자와 독자가 동시에 미치게 만드는 맨발들
만선을 기원하는 무당들의 옷자락과 닮았다

2015. 4. 18
당신을 물어뜯고 싶다

핥고 빨고 쥐고 흔들어 놓고 싶다
그럴수록 난 더욱 구멍으로 말려들어간다
니체, 당신이 되고자 이리 애썼는데
어찌 단 한 번도 곁을 내어주지 않는겐가
간절한 열망, 습관적인 열망- 나는 무섭고
비겁하고 찌질해서 당신의 춤사위에 매번 눈감는 흙 아래의 짓, 짓, 짓
이제 확신 할 수 없다
당신을 만나고자 한 것인지
당신을 물고자 했던건지
에이씨 몰라 하고 오래된 농을 치고선
돌아서고 싶지만 돌아설 때 마다 당신은
허벅지 벌리고 나랑 한 번 하자고
나랑 한 판 붙자고 카톡한다, 카톡카톡
벌써 몇 년째 숫자1맨 바라보고 있다

2016.4.13
기도의 가능성

까만 닭, 까닭- 녹색당을 지지합니다. 이 단순한 말에 감동 받다니. 김종철 선생의 한겨례 칼럼을
읽고선 까닭도 없이 감동받다. 국가란 결국 합접적 폭력기구애 불과하다.
애궐복궐한 이유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대의 민주주의란 소수 엘리트들의 합법적 통치수단에 불과하다.
귀 기울일 만한 것이 전혀없다는 말이다.
역사적으로 선거는 이미 합법적인 불법이란 것이 여러 번 확인 되었고 이 불법의 파행은
여려 혁명들과 시민운동들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확인되었다.
별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건 어쩌면 정답. 불법적 생각, 어쩔 수 없음의 가장 강력한 알리바이.
믿음은 그래서 중요하다. 기도는 이제서야 중요해진다. 절망의 얼굴 앞에서만 기도는 가능하다. 기도하는 자세에서 시작되는 믿음으로 녹색당을 지지한다. 가능성은 언제나 기도에서 시작했기에.

포경수술을 할 때 어떤 독재릉 허용했다.
아버지라는 남성이라는 까닭없는 이미지에
다리를 벌렸다. 그 앞에서 지퍼를 내렸다.
가위질, 바느질을 하용했고
꼬추가 자지가 되던 날- 민주주의와 국가에 대해서 떠올렸다. 그리고 마취가 풀리고 아픔이
시작되었을 때 난 기도했다.
하느님 전 당신을 지지합니다.











'읽는-기계 > 짐승-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의 전환이 도래하고 있다.  (0) 2016.04.12
추모에 관한 소론  (0) 2016.02.11
분위기에 관한 소론  (0) 2015.09.19
빛보다빠르게미래로달아나라 -이상,삼차각설계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