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누나
올
추석에 꼭
와
<김용택, 콩 너는 죽었다, 문학동네, 2018>
#침묵의 세 가지 방법
1
추석에 오지 않았던 누나와 시적 주체 사이에 쌓여있는 침묵 하나. 부재하는 누나를 그리워하는 시적 주체의 침묵 둘. 추석에 올지 안 올지 아직 연락이 없는 누나의 침묵 셋. 이 세 꼭지점의 침묵 속에서 "달"의 이미지는 침묵들의 레이어처럼 작동한다. 침묵들 속에서 떠오른 달은 침묵들의 모이는 공간. 그 공간의 얼굴은 누나입니다.
2
멀리 떠난 누나. 작년에도 안 온 누나. 어쩌면 재작년에도 안 온 누나. 온다고 했으면서 안 온 누나에 대한 원망. 보름달 기다리듯 기다리는 누나. 달뜨듯 꼭 왔으면 하는 누나. 그리운 누나. 이 마음의 무늬들이 달에 은유 되면서 단단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3
인상적인 것은 행갈이인데요. 한 줄로도 적을 수 있는 문장들을 끊어 쓰면서 시의 화자가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누나(보고 싶어) 올(작년에도 안 왔잖아) 추석에 꼭(설에도 안 왔으니까) 와(안오면 삐뚤어 질 거야)” 같이요. 이 짧은 시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해요. 쓰여진 부분보다 쓰여지지 않은 부분이 읽혀지는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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