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
나는 인형을 사랑해서
아주 많이 사랑해서
인형이 우는 소리를 만질 수 있어.
분홍 배 속에 가득한
고요한 슬픔을 들을 수 있어.
자장가를 아침까지 불러 주고
폭신한 구름 뒤에서
온종일 인형을 돌볼 수 있어.
나는 인형을 잘 아니까.
인형을 꼭 닮았으니까.
-김개미, 레고나라의 여왕, 창비, 2018
#어느 사랑의 회로
1
인형을 사랑하는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 너무 사랑해서 인형을 “분신”처럼 여기는 사람. 이 사람의 사랑은 3연부터 시작된다. “인형이 우는 소리를 만질 수” 있고, “분홍 배 속에 가득한 고요한 슬픔을 들을 수” 있다. 만져지지 않는 소리를 만지고, 들을 수 없는 고요한 슬픔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논리적 사유, 합리적 추론이라는 이성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오직 감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사랑이란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이라고 말하며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고 말한다.
2
감각으로만 가닿을 수 있는 사랑이 있다. 인형과 인형을 사랑하는 사이에 존재하는 느낌의 세계 속에서 사랑은 재현된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랑은 조금 이상하다. 그들이 사랑을 나누는 공간은 공간은 “자장가를 아침까지 불러”(6연)줄 수 있는 공간. 아무도 바라볼 수 없는 “푹신한 구름 뒤”(7연)의 공간. 아낌없이 “온종일 인형을 돌볼 수 있”(8연)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어딘가 은밀하고 부드러우면서 폐쇄적으로 보인다.// 단 둘만의 공간에서 중얼거리듯 읆조리는 말은 어딘가 섬뜩하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너를 잘 알아. 너는 나를 꼭 닮았으니까.
3
이 작품의 마지막 연에 도착했을 때 이 사랑의 방향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이 사랑은 인형이라는 타자(대상)를 향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인형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적 ‘자아’(ego)를 향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인 ‘또 다른 자아’(alter ego)를 향하지 않는다. 이 사랑은 자신과 무한히 닮아있는 “비인청적 분신(double impersonnel)”으로 작품 안에 등장한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무서운 말이 가능한 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가둔 “분신”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 이 작품은 우리시대의 사랑에 관한 동시적 스케치처럼 보인다. 이 자폐적 사랑이 요즘 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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