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 관한 소론

#1 애덤 코츠코 <소름끼침> (알라딘 링크) 

-소름 끼치는 낯섦이야 말로 오늘날 이웃의 기묘한 본질이라고 한다. 모든 이웃은 궁긍적으로 기이하다. 이웃은 '기이하게' 만드는 것은 이웃이 보여주는 기이한 행동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저런 행동을 하는지 속내를 알 수 없어서다. 


#2 사드 후작의 작품들 

-사드의 작품에서 소름이 돋는 것은 소름끼치는 장면이 나와서가 아니라 '왜 저런 짓을 할까?' 하는 물음이다. 그 변태행위를 통해서 이상하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3 프로이트 

-이웃은 무엇보다 하나의 사물이며,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어떤 침입자이자, 우리를 훼방하며 우리의 익숙한 생활 방식을 혼란에 빠뜨리는 다른 생활방식(혹은 사회생활과 의례에서 드러나는 주이상스jouissance의 방식)을 지닌 사람이다. 그래서 너무 가까이 있는 이웃은 공격적 반응을 촉발시킨다. 우리는 불안한 침입자를 쫓아내려 하기 때문이다. 


#4 이스라엘군의 인도주의 이데올로기 전략 

-2003년 이스라엘 군이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는 한 남자의 집을 파괴했을 때. 군인들은 유독 친절한 티를 내며, 심지어 그 가족을 도와 집에서 가구를 들어내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불도저로 그 집을 깔아 뭉갰다. 

-한 이스라엘 병사가 테러리스트가 숨었다고 의심되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집을 수색했다. 이 때 어머니는 놀란 딸을 진정시키려 딸의 이름을 불렀고, 병사는 겁에 질린 소녀의 이름이 자기 딸의 이름과 똑같아 놀랐다고 했다. 감상에 사로잡힌 병사는 지갑을 꺼내 딸의 사진을 팔레스타인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5 존 포드 감독 <수색자> 

-영화 끝부분의 주요 장면에서 어떻게 타니(곧 이웃)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심연을 뛰어넘는 운동이 일어났는지 설명했다. 

-에단은 오랜 수색 끝에 마침내 소녀 시절 인디언에게 끌려간 조카 데비의 행방을 찾아내고 숙녀가 된 그녀를 구한다. 그런데 영화 내내 에단은 데비를 구출해 집으로 돌려보내려는게 아니라 죽일 생각이었다. 인종차별주의에 사로잡힌 에단은 오랜 세월 인디언과 함께 생활한 백인 처녀는 죽어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마침내 무방비로 쓰러져있는 데비를 발견한 에단은 그녀를 두 팔로 안아 올리고 포옹하며 집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심한다. 이런 태도 변화는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일반적 해석을 마지막 순간, 에단의 마음에 담긴 선함이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핀은 이런 해석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가 보기에 정답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에단의 헝클어진 눈빛에 담겨있다. 

-그 눈빛은 홀연 되살아난 인간적 온기와 동정을 드러낸 것이 아니다. "눈빛은 무엇보다도 혼란, 곧 에단이 불현듯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돌연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혼란을 보여준다." 이 헝클어진 눈빛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틀림없다고 확신한 자신의 원칙이 부분적으로 허구와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깨달음이며, 에단이 백인으로서 품어온 정체성에 대한 회의이다. 우리(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념에 집착하지 않고 마침내 행동에 나설 때에만 비로서 그 신념의 폭과 깊이가 어느 정도였는지 깨닫는다. 

-에단은 데비를 마침내 이해해서 혹은 그녀의 감정 세계를 헤아리고 공감하는 통찰을 통해서 그녀를 살려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수 없다는 깨달음, 자신이 곧 타인이라는 깨달음으로 그녀를 살려주었다. 


#6 이집트의 속담 

"고대 이집트인의 비밀은 이집트인 자신에게도 비밀이다." 

-바로 그래서 이웃과 만날 때면 공감하거나 이해하려 시도하지 말고, 마음에도 없는 존중을 가장하는 대신, 너희나 우리나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구나 하며 낄낄대고 웃어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참고도서

-새로운 계급투쟁/ 슬라보예 지젝/ 자음과 모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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