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관한 소론

#1 

-난민은 글로벌 자본주의의 동려고가 군사개입과정에서 난민 발생의 원인을 찾는 일이다. 

-청(소)년들은 결코 자율적으로 사회를 바꾸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왜? 기성세대들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들 부유한 나라에서 보이는 또 하나의 특징은 새로운 노예제도의 출현이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장려하는 경제체제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지만 경제 현장의 자본주의 작동방식은 노예 양산일 뿐이다. 노예제는 중세 말 폐지 된 것 처럼 보이지만 근대 초기부터 남북전쟁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에서 더 기승을 부렸다. 비약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가정해보자. 글로벌 자본주의의 새로운 시대는 노예제의 부활이라는 서막을 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탈리아 프라토 중국인 섬유공장 화재 (국제신문) 

-2005년 파리폭동 (한국일보)

파리 근교의 불타는 현장에 그 어떤 정치 프로그램도 없었다는 것은 우리의 정치가 얼마나 빈곤한지를 알려주는 실체의 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선택의 사회라고 자찬하지만 강제된 민주적 합의를 거부할 유일한 대안이 고작 맹목적 행동밖에 없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규칙에의 복종이냐 혹은 (자기)파괴적 폭력이냐를 택일해야 하는 선택이라면 우리가 그토록 숭배한 선택의 자유란 대체 무슨 소요잉ㄹ까? 

-라깡: 행위로의 이행 passage a lacte, 즉 충동적으로 행위로 옮겨짐, 말로 어찌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도 정리할 수 없는 행위로의 이행, 참을 수 없는 무게의 분노를 수반하는 행위로의 이행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행을 낳은 의미를 탐색하려는 유혹에 사로잡힌다.(해석학의 유혹) 그러나 행위로의 이행은 단지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무기력함에 그치지 않는다. 


#2

이탈리아 남부와 발칸반도에 체류 중인 난민들이 더는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독일로 가려고 조바심을 내는 것을 보고 있다. 칼레에서 천막생활을 하면서도 프랑스에 만족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영국으로 넘어가려는 수천 명의 난민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가난, 고토으 위험에 처한 인간은 최소한의 안전과 먹고살 여건만 만련되면 만족할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어렵고 힘들 수록 인간은 절대적 유토피아를 열망한다. 그러나 난민이 배우게 될 뼈아픈 교훈은 '노르웨이는 없다'는 것, 심지어 노르웨이 안에도 노르웨이는 없다는 것이리라. 

-현실에서 꿈을 쫓는 대신 현실을 바꾸는데 집중해야 한다. 


#3

문화는 우리가 실제 믿지 않고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행하는 모든 것의 이름이다.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지만 12월이면 집집마다 심지어 공공장소에도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는 것이 문화가 아니고 무엇일까? 

-난민과의 감상적 연대,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를 유죄로 단죄하는 잘못된 감상적 자기 비하가 그것이다. 우리의 실질적 과제는 오히려 '우리'와 '저들' 노동자 계급 사이에 가교를 구축하여 연대 투쟁을 하는 것이다.



빛보다빠르게미래로달아나라 -이상,삼차각설계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