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개
개가 죽고
감나무 밑에 빈 개집
빈 개집 앞에 개밥 그릇만 놓였습니다
바닥이 반질반질한
개밥 그릇만 놓였습니다
빈 개집을 들여다보던 할머니가
개밥 그릇에 떨어진 땡감을 주워 듭니다
할머니가 빈 개집 안을 들여다봅니다
꼭 꼬리 치며 나올 것 같아서
컹컹 짖으며 드러누울 것 같아서
없는 개는
없는 개지만
없는 채로도
아직 개집 안에 삽니다
<송진권, 어떤 것, 문학동네, 2019>
#예감의 영역 #예감으로서의 부재
1
이 작품의 앵글은 정확하게 한 곳에 집중하면서 롱테이크(long-take)로 담아낸 풍경이다. 한 곳에 서서 오랫동안 지켜보고 있는 그 자리까지도 느껴지는 작품이다. 1연은 개집과 개밥 그릇이 놓여있는 풍경을 묘사한다. “감나무 밑 빈빈 개집” 이미지는 작품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바닥이 반질반질한 개밥 그릇”은 이미지의 해상도를 높여준다. 2연에서 할머니가 등장한다. 할머니는 빈 개집을 두 번을 들여다본다. 한 번이었으면 그냥 지나는 길에 눈길이 스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할머니는 “개밥 그릇에 떨어진 땡감”을 주워들어 “빈 개집 안을” 다시금 들여다봄으로서 “빈 개집 안”의 정서를 담아낸다. 3연에서 할머니의 마음 속 말이 툭, 툭 2행으로 간결하게 진술된다. 할머니가 빈 개집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없는 개”가 나올 것 같고, 드러누울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다. “없는 개”가 있을 것 같은 예감 속에 “없는 개”는 있다. 3차원 속에 “없는 개”는 존재하지 않지만 예감 속에서 “없는 개”는 존재한다. 꼭,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의 방식으로 말이다. 4연의 마지막 진술은 “예감의 존재론”을 잘 보여준다. “없는 채로도/ 아직 개집 안에 삽니다” 없는 개는 있을 것만 같은 예감 속에서 희미하게 살아있다. 예감은 도래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감각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에 ‘앎’이 될 수 없고 오직 ‘감’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할머니의 예감 속에 없는 개는 있다. 자신에게도 다가오는 죽음(없는 개)의 예감을 느끼며, 빈 개집을 들여다본다. 오래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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