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올라오겠어?
집에 있으면서 없는 척
자유를 만끽하려면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로 올라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게
사다리를 멀리 밀어 버려
방 정리하란 엄마 잔소리도
칼싸움하자고 귀찮게 구는 동생도
여기까지 따라오진 못해
여긴 온통 잠자리 날개뿐이야
나를 좀 봐, 벌렁 드러누워
바람의 안마를 받고 있어
노을 영화관에 앉아
구름 감상을 하고 있어
별이 발등에서 깜빡대기 시작하면
온 식구가 허둥대며
나를 찾아 헤매겠지
가만, 그런데 어떻게 내려간담?
<김개미, 어이없는 놈, 문학동네, 2013>
#김개미론 스케치 #주체의 궁핍과 쪼그라든 주체의 전략
1
혼자인 아이. 혼자 남겨진 아이. 혼자 버려진 아이가 여기 있다. 그래서 어떤 아이A는 장롱 속으로 들어간다. “한낮에도 깜깜한/ 밤이 필요해서/ 장롱 속으로 들어간다”(장롱 속으로 들어간다) 또 어떤 아이B는 지붕으로 올라간다. “집에 있으면서 없는 척”하면서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게/ 사다리를 멀리 밀어 버”(너도 올라오겠어?)리고 혼자가 된다. 어떤 아이C는 그림 속으로 숨는다. “내가 그린 코뿔소는/ 귀를 틀어막은 소/ 눈을 꼭 감은 소”(누굴 닮아서)가 되어 그림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김개미 시인은 혼자인 아이가 하고 있는 놀이를 담아낸다.
이는 앨리스 증후군(Alice in wonderland Syn-drome)을 앓고 있는 주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대상이 작아 보이거나(쪼그라들거나), 크게 보이거나(과장되거나), 왜곡되어 보이는 증상을 말하는데, 주ㅡ ㅡ 관 적인 이미지의 변용을 일으키는 증후군(김영도, 2006)이다. 이를 두고 “주체의 궁핍”(destitution of subject)에 의한 증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허기진 주체들의 놀이가 김개미의 작품 곳곳에 드러난다.
2
쪼그라든 시적 주체는 타자와의 교섭이 필요한 현실세계의 바깥,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 미지의 세계에는 엄마 잔소리도, 떠들지 말라는 담임선생님도 없다. 현실의 중력이 사라진 곳으로 간다. <너도 올라오겠어?>에서 화자는 1연에서 “사다리를 놓고 지붕 위로 올라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게/ 사다리를 멀리 밀어 버”린다. 사다리를 밀어버림으로서 지붕의 공간은 타자의 침입을 허용되지 않는 미지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2연에서 “방 정리하란 엄마 잔소리도/ 칼싸움 하자고 귀찮게 구는 동생도/ 여기까진 따라오진 못”하게 한다. 말의 중력을 지워낸다. 이제 원더랜드로 진입한다. 3연에 “바람의 안마를 받고 있어/ 노을 영화관에 앉아/ 구름 감상”한다. 원더랜드 속에서 시적 주체는 4연에 들어서면서 “온 식구가 허둥대며/ 나를 찾아 헤매겠지”라며 자신을 찾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신을 찾아주길 원한다. 쪼그라든 주체의 자기 전략은 자신을 조금씩 지워냄(주체의 부재)으로서 타자를 끌어들인다. 작품의 마지막 연에서 시적 주체는 깨닫는다. 지붕으로 올라올 수 있는 사다리를 밀어버렸다는 것을. 타자가 올라 올 수도 없고, 주체가 내려갈 수도 없는 곤경에 빠졌다는 것을. <너도 올라오겠어?>는 쪼그라든 주체들이 처해있는 곤란함에 대한 하나의 보고서로 읽히기도 한다.
이에 반해 과장된 시적 주체는 타자와의 교섭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이다. 그들의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언어의 중력을 받아들이면서 과장을 전략으로 삼는다. <넌 그런 날 없니?>는 이를 잘 보여준다. “누가 말만 걸면/ 몸을 비비 꼬며 낄낄”거리고 “별일 아닌데/ 원숭이처럼 책상을 두드”린다. 과장된 주체가 노리고 있는 것은 의미체계가 아니다.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느낌의 효과다. “누가 부르기만 하면/ 귀청이 떨어지도록 큰 소리로/ 대답”을 하는 것은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느낌을 효과 있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의미를 원하는 말의 중력에 적극적으로 의미 이전의 느낌의 효과로 개입한다. “알지도 못하면서/ 번쩍번쩍 손을 들”면서 한 마디 덧붙인다. “쓸데없이”. 쓸모에 따라 의미의 논리가 구성되기 때문에 과장된 시적 주체는 쓸모없는 행동이 된다. <넌 그런 날 없니?>는 쓸모 있어야만 하는 세계에 맞선 별 쓸모없는 시적주체들이 처해있는 곤란함을 드러내는 또 하나의 신경질적 보고서로 읽히기도 한다.
3
우리시대에 곤경에 처한 시적주체들에 대한 김개미식 보고서에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슬픔이 세공되어 있다. 시대적 곤경에 유머를 잃지 않고 아이들과 “아픈 눈을 뜬 채로” 마주하겠다는 것이 김개미의 윤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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